<목회/인물> 정삼수 원로목사(청주 상당교회) 초청 세미나

추천 : 4  |  비추천 : 0  작성자: 관리자  |  2016-09-29 17:33

 

목회자를 위한 학교 FAITH목회아카데미(원장 김기홍목사)1017() 10시부터 12시까지 서초교회(담임목사 김석년)에서 정삼수 청주 상당교회 원로목사를 특임교수로 초청해 목회세미나를 연다.

 

정삼수 목사는 지난해 말 은퇴했다. 정 목사는 청주 상당교회를 중부권에서 규모 있는 교회로 성장시키는 데 힘썼고,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총회를 세 번이나 유치하는 등 교단을 위해서도 봉사했다.

 

그동안 깨끗하고도 강력한 목회를 통해 주위 목회자들의 롤 모델이었던 정 목사는 이번 강의에서 어떻게 목회를 잘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말씀을 전한다. 교회 시작부터 대형교회 성장까지,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쌓은 목회 노하우를 소개한다.

 

세미나는 목회자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참가비는 무료다. 간단한 점심도 제공된다.

 

FAITH목회아카데미는 20139월 시작돼 현재 7기생이 훈련받고 있다. 사도 바울처럼 오직 하나님 한 분으로 모든 것이 풍성하게 공급되는 목회가 되도록 하는 것이 훈련 목적이다. 원장 김기홍 목사는 3개월 12개 세미나와 훈련을 통해 바울처럼 믿고 사고하는 습관이 만들어진다고 강조한다.

 

FAITH목회아카데미 www.fma2.com

록 문의 : 02-591-0573 (서초교회)

 

 

* 정삼수 목사 회고 중에서

 

목회자, 목사는 양을 치는 목동과 같다. 양떼와 같이 살며 양떼를 푸른 풀밭으로, 마실 물이 있는 냇가로 인도하는 일이 목회자가 할 일이다. 목사에게 세상이 주는 명예나 권세는 없다. 또 그런 권세를 가질 필요도 없다. 그러나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무엇이 귀하고, 무엇이 바르며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가 하는 방향을 가르쳐 주는 것이 진정한 목회자의 사명이라고 본다.

      

기회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신학대학은 4년제 대학을 나온 사람에게만 입학의 자격이 주어졌다. 먼저 4년제 대학을 졸업하기 위해 숭전대학교 야간부 영어교육과 편입시험을 치러 2학년으로 입학했다.

 

이때부터 지금의 한남대학교 앞에 방을 얻어 신혼생활을 하면서 낮에는 학생을 가르치고 밤에는 야간대학을 다니는 주경야독의 힘겨운 생활을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직장에 출근하기 위해 버스로 대전역에 도착해 영동발 기차로 갈아탔다. 그리고 영동역에서 내려 역 앞에 보관해둔 자전거를 타고 50분간 달리면 근무지인 영동초등학교 화신분교장에 도착한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오후 3시가 되면 다시 역코스를 밟아 대전에 도착한 다음 끼니도 챙기는 둥 마는 둥 부지런히 서둘러야 6시부터 11시까지 진행되는 야간부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그 무렵 길거리에 뿌리는 시간만 해도 하루에 5시간이 넘었고, 일과를 마치고 12시쯤 집으로 돌아와 예습 복습을 한 뒤 자리에 누우면 새벽 1~2시가 되었다.

 

이렇게 3년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지내며 끼니마저 걸렀더니 영양실조 현상도 나타났다.

 

하루는 대학 교문을 들어서는 데 갑자기 정신이 핑 돌며 아스팔트가 울렁울렁 거리는 것처럼 요동을 치기에 학교 앞 전신주를 붙잡고 정신을 차리느라 한동안 멍하게 서 있었던 적도 있었다.

 

장학금은 받았지만 박봉의 교사 월급으로 교통비와 학자금까지 충당하려니 신혼생활은 참으로 힘들었다. 대전에서 영동까지 출퇴근을 하며 다니는 것도 생각처럼 녹록치 않았고, 잠도 4시간 이상은 자지 못했다.

 

아내는 나의 공부를 도와준다고 낮에는 책에서 모르는 영어 단어를 찾아 주석을 달아 놓는 일도 했다.

 

그러나 당시 내가 목사가 되기로 결심을 하고 힘든 줄 알면서도 신학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자격요건을 갖추기 위해 야간대학을 다니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이를 실천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나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분명한 것은 기회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골의 평교사로 있으면서 도시의 야간대학에 다닌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화신분교에는 2명의 동료교사가 있었는데 그분들의 이해와 격려가 많은 도움이 됐다. 어렵고 힘든 나날의 연속이었지만 야간대학을 졸업함에 따라 신학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어릴 때 시골교회의 목회자들은 쌀 한 말 보리쌀 세말을 받고 목회활동을 했다. 나 역시 아버님의 영향으로 일찍 교회에 다녔는데 당시 목사님들이 생활이 어려워 쌀독에 쌀이 떨어지는 것을 늘 보면서 자랐다.

 

내 경우 지금 경제적 여유가 있는 목사가 되었지만 당시에는 구두 뒤창이 떨어져도 가난이 숙명인 것처럼 여기며 살았다.

 

어린 시절 어려웠던 목회자들의 삶을 보면서도 내가 이 길을 선택한 것은 사명감 때문에 스스로 자처한 일이었으며 지금은 하나님과 같이 하는 나의 생활이 아주 만족스럽다.

 

 

욕심을 버리면 세상이 보인다.

 

984월 과로로 쓰러진 이후 이러다 죽겠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뇌리 속을 스쳤다. 목회활동도 완전히 포기한 채 무조건 쉬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짜여진 프로그램도 없을 뿐 더러, 의사의 처방도 있을 턱이 없었다. 과로는 체력이 부족해서 생기는 병이다. 때문에 무조건 쉬면서 운동량을 늘리고 체력을 보강해야 한다.

 

배터리도 방전이 되기 전에 충전을 시켜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체력을 보강하는 일은 무엇보다도 시급했다.

 

현대인들은 일을 많이 하면서 운동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노동은 운동이 아니다. 노동을 위해서는 운동을 통한 체력을 길러야 한다. 죽음의 문턱을 경험한 나는 이때부터 건강 회복을 위한 피 눈물 나는 노력을 쏟기 시작했다.

 

우선은 한약처방과 가벼운 등산, 그리고 지금까지의 삶과 환경을 당분간 떠나 여행을 병행키로 했다. 당시 나는 사창동에 살 때여서 가장 가까운 충북대학교 병원의 뒷산인 구룡산을 등산코스로 선택했다.

 

처음에는 너무 힘들어 1백 미터도 가지 못하고 내려오는 일이 허다했으나 조금씩 구간을 늘려 나갔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자 운동량이 늘어나면서 나중에는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시간이 날 때면 아내와 함께 휴식을 위한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이렇게 반복적인 운동을 통해 재충전을 시도하자 차츰 기력이 회복되었고 잠도 편히 잘 수 있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하나님 앞에 가기 전 죽음 앞에서 내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새삼 부끄러운 면도 절감했다.

 

그 무렵 죽음의 터널을 빠져나와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내가 느낀 진리가 있다. 그것은 첫째 욕심을 버리면 세상이 보이고, 둘째 교만을 버리면 사람이 보이고, 셋째는 미움을 버리면 하나님이 보인다는 것이었다.

 

 

의식의 전환이 와야 행복을 만들어갈 수 있다.

 

교회는 지역 주민들과 공존할 때에 진정한 교회의 구실을 할 수 있다. 나는 상당교회를 지을 때 청주 시민들에게 유용하게 활용되면서도 배타적인 감정을 갖지 않도록 하려고 세심한 것까지 신경을 썼다.

 

심지어는 외부 간판도 한때 교회 명을 제외한 <행복한 청주>로 붙일까 생각도 했다.

 

청주 시민들이 쉽게 찾아올 수 있기를 바란다는 대전제와 함께, 종교적으로는 저들에게 복음을 들려주어 영혼을 구제해 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에서였다.

 

그리고 가로 10미터 세로 18미터 크기의 대형 외벽에는 의미가 있는 문구를 써넣어 청주 시민들에게 함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두 달에 한 번씩 바꾸어 내걸었던 문구 중에는 사랑하면 예뻐져요.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라는 내용이 있었다. 얼마 전에는 청주 시민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하나님 우리 청주에 복을 내리소서.라는 소망을 담기도 했다.

 

그리고 올 봄부터는  그래도 길은 있습니다. 라는 문구를 내걸을 생각이다. 나는 청주에 사는, 그리고 청주를 찾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노래하고 싶다.

 

대형 현수막 한 개를 써서 내걸려면 수십만 원의 비용이 들지만 이를 통해 교회를 지나는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양식을 제공하고 이들이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생각이다. 무엇보다도 의식의 전환이 와야 행복도 만들어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상당교회의 예배당은 동시에 2천명이 앉아 예배를 볼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예술의 전당처럼 지었으되 단층 구조에, 안락의자를 둔 것도 전국에서 처음이지만 외국인들에게도 교회 구조상의 혁명이라고 불릴 정도로 편리하고 활용도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설교를 전하는 강단도 설교를 듣는 사람들보다 낮추어 놓음으로써 말씀을 전하는 자가 높이 서야 할 이유가 없다는 나의 의지를 예배당 구조에 반영시켰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라면 외형보다는 설교의 내용과 내면의 덕목인 도덕성으로 존경을 받아야 옳다.

 

또한 교회는 지역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 상당교회의 건물 자체를 문화공간으로 꾸민 것도 주변의 학교에 교회를 빌려 주는 등 개방된 건물로 쓰기 위함이었다.

 

인근 일신여고와 수곡중학교에서 요청하면 언제든 전교생들이 동시에 앉아 예술행사를 할 수 있도록 빌려주었다.

 

상당교회는 또한 동시통역 시설도 갖추고 있다. 따라서 외국인들도 러시아어나 영어로 듣고 참여할 수 있으며, 토요일 오후엔 한글학교도 열어 외국인들이 한글을 배울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행복한 청주>라는 의식은 매우 중요하다. 마음의 그릇이 있어야 행복도 담을 수 있으며, 정신적으로 행복을 구축해 나가는 것도 필요하다. 나는 교회 외벽의 <행복한 청주, 상당교회>라는 네온사인을 늦은 시간까지 켜놓는다.

 

청주의 관문에 있기에 교회의 역할을 다하고자 함이다. 청주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행복한 청주>라는 문구를 접하면 얼마나 푸근하겠는가.

 

 

열린 마음, 열린 세상

 

어느 날 경마를 하다가 돈을 날리고 폐인이 된 사람이 친구를 따라 찾아왔다. 그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지는 마당에 "우리 교회에 나오면 술 한 잔 살께."라고 말했다.

 

그 사람이 이 말에 친근감을 느껴 교회를 나오게 됐고, 그 이후 새로운 직장도 구하고 가정도 잘 꾸려가고 있다.

 

나는 이것이 바로 목회자의 열린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돈을 날린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심정을 이해해주면서 그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자 그 또한 교회에 잘 나오면서 새로운 직장도 잡고 다시 일어섰다.

 

설교 또한 마찬가지다. 고고한 율법주의나 외형적인 거룩함보다 현실의 삶을 이해해 주는 멘토와 삶을 나누는 형태이어야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메시지는 곤란하다는 생각이다.

 

경로당 노인들의 귀향 길 관광버스 편에 소주와 맥주 박스를 실어줄 수 있는 것도 목회자가 그들의 입장이 되어 마음을 열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깨끗한 사람들을 모아 깨끗한 사회를 만드는 것은 누구든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교회는 거룩한 사람만 오는 곳이 아니다. 알코올 중독자도 올 수 있고, 파렴치범과 성격파탄자는 물론 마약중독자와 전과자도 올 수 있다.

 

이러한 사람들을 한데 모아 행복한 청주가 될 수 있도록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목회자의 몫이자 교회의 역할이다.

 

우리에게는 음료를 제공하는 상수도 시설도 필요하지만 빗물이나 집에서 쓰다 버린 더러운 물을 흘려보내는 하수도 또한 반드시 필수적인 설비 임은 말할 것도 없다.

 

이처럼 교회는 상수도 역할도, 동시에 하수도 역할도 해주어야 하듯, 때로는 깨끗한 것을 보여주고 더러운 마음도 걸러 주어야 한다.

 

상당교회 성도들과 함께 늘 하나님에게 주문하는 기도가 있다. 그것은 우리 민족에게 긍휼을 베풀어 달라는 것, 청주를 구원해 달라는 것, 우리의 교회에 3만 성도를 허락해 달라는 것, 우리의 가정과 일터에 은혜를 내려 달라는 4가지로 요약된다.

 

이렇듯 우리의 가정과 일터에 은혜를 내려주는 것을 시발로 하여 나는 상당교회와 청주시민들이 다 함께 행복한 청주, 행복한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상당교회는 또한 광의의 형태인 우리 민족으로, 이웃과 함께 하는 열린 교회로 확대해 나가는, 이른바 <열린 마음 열린 세상>을 지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