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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카라구니스 스웨덴 룬트대 신약학 명예교수 “학문·신앙·실천 부조화 때 위기 온다”
조회 818 추천 0 비추천 0 2016-10-22 13:55 작성자 : 함태경 기자

크리스 카라구니스 스웨덴 룬트대 신약학 명예교수 “학문·신앙·실천 부조화 때 위기 온다”

2010/11/12 17:57


“하나님의 말씀, 즉 복음에 대해선 어떠한 타협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스웨덴이 동성애자들의 낙원으로 바뀐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교회 지도자들이 신앙과 진리를 고수하지 않고 하나님의 길을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13일 서울 방배동 백석아트홀에서 개최되는 제3회 개혁주의생명신학회(회장 김진섭) 정기학술대회 주제 강연자로 방한한 세계적인 석학 크리스 C 카라구니스(70·스웨덴 룬트대) 신약학 명예교수는 “하나님은 결코 죄악을 허락하신 적이 없다”면서 한국교회가 동성애차별금지법 제정 반대운동을 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신약석의학자(주석가)인 그는 “성경대로 증거하고 사는 게 크리스천들의 특권”이라며 “인간의 역사 속에 늘 존재해왔던 동성애 문제에 대해 교회는 단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복음을 지키는 데 교회는 최전선에 서야 합니다. 스웨덴 교회는 연약하고 복음의 영향력 또한 약해져 동성애 합법화를 막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숫자는 물론 영향력에서도 강하다고 들었습니다. 힘을 모으십시오. 그리고 동성애 문제를 해결하십시오. 전 세계에 좋은 모델을 보여주기 바랍니다.” 

카라구니스 교수는 “개혁주의 발생지인 유럽이 복음의 생명력을 잃어간다는 건 아이러니”라면서 “신학(학문)과 신앙, 그리고 실천이 조화를 이루지 않을 때 교회와 지도자의 위기는 시작된다”고 설명했다. 그런 점에서 모든 기독교 학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생명력이 있는 관계를 계속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이론적 사유 자체는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바울, 루터, 칼뱅 등 과거의 모든 위대한 기독교인들에게 발견되는 건 사유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 사색이 하나님의 계시된 뜻과 범위 안에서 인도 받는 게 중요합니다.”

신학자는 특히 지식과 믿음으로 온전히 준비하고 그리스도의 영광과 교회를 세우는 일에 자신의 삶을 온전히 드려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최고 수준의 자질을 견지하면서 매일 주님과의 교제 속에서 그분과 성령을 의지하게 해달라는 것이 기도제목이 돼야 한다고 했다. 신학자는 자신의 길을 통해 하나님을 섬기도록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연구능력 못지않게 철저한 경건생활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만이 하나님 말씀의 원 뜻을 제대로 전해줄 수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그는 “진정으로 그리스도께 헌신되지 않은 직업인으로 전락한 신학자들의 많다”며 신학자가 자신의 소명에 충실한다면 교회의 위대한 자산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초대교회가 탁월한 변증가들을 통해 각종 이단, 타 종교 등 외부세력에 대응하며 기독교 신앙을 더 강력하게 전했음도 잊지 말라고 조언했다. 아울러 수많은 성경구절들이 삶 전체를 성경 연구와 해석에 헌신한 사람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교회의 역할 또한 막중하다고 했다. 

‘한국교회 내에서 한글 개역개정판의 오역 문제에 대한 지적들이 있었다’고 하자 카라구니스 교수는 “신약을 기록한 헬라어 역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원문의 뜻을 왜곡하는 것은 전 세계 교회의 공통적인 문제”라고 답했다. 그는 요한복음 15장 1∼6절 중 ‘내가(예수님)가 곧 포도나무요 너희(제자들)는 가지’로 번역한 게 대표적인 오류라고 꼽았다.

“여기서 포도나무, 가지라는 해석은 관련 헬라어 단어를 고전적 의미로 파악한 것입니다. 요한이 그의 복음서를 기록하기 300여년 전 이 단어들의 의미가 이미 바뀐 것을 세계 신학계가 몰랐기 때문에 발생한 오류죠. 예수님은 자신을 포도나무가 아닌 ‘포도밭’, 제자들을 가지가 아닌 ‘포도나무’로 말씀하셨습니다. 이 성경구절 전후 관계는 물론 요한이 기록한 요한계시록 14장 18절을 보면 그의 의도했던 바를 분명히 알 수 있어요.” 

그는 또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쉽다”(마 19:24, 막 10:25, 눅 18:25)는 표현 중 낙타는 밧줄의 오역”이라며 “낙타와 밧줄의 원 발음이 ‘카밀로스’인 것을 모른 데 따른 무지”라고 지적했다. 

카라구니스 교수는 “이 같은 오류는 1528년 에라스무스가 헬라어, 라틴어를 발음하는 법에 대한 책을 출간했는데 이를 받아들인 결과”라며 “특히 신약성경 전체를 고대 헬라어로 이해하려는 것은 난센스”라고 했다.

“에라스무스가 주창한 발음은 매우 부자연스러웠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때문에 고대 헬라어와 현대 헬라어가 완전히 다른 언어로 비쳐졌습니다. 지난 500여년 동안 비 그리스계 학자들이 헬라어의 일부 역사만 첨삭하면서 헬라어를 크게 왜곡시켰습니다. 신약성경은 고대 헬라어와 현대 헬라어의 요소를 모두 갖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에는 헬라어 역사상 처음으로 등장하는 단어들과 구문들이 많이 있습니다.”

카라구니스 교수는 마지막으로 “한국 교회가 왜곡된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잡고 모든 삶의 영역에서 그분의 뜻을 밝히 드러내는 소금과 빛이 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크리스 C 카라구니스 교수는 그리스 출신으로 영국 런던대를 거쳐 스웨덴 웁살라대에서 ‘에베소서에 사용된 신비의 의미와 범위’라는 논문으로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웁살라대, 벨기에 루벵대, 룬트대 등에서 교수로 활동하며 ‘70인경의 헬라어-영어자전’ 편찬 자문위원회 겸 교정자로 참여했다. 저서로 ‘헬라어와 신약의 발전’ 등이 있다. 

다음은 카라구니스 교수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첫번째 한국 방문입니까. 

“그렇습니다. 한국에 대한 이해는 매우 단편적입니다. 한국전쟁 때 그리스군이 참전해 187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한국 기독교가 상당히 부흥했고 몇 개의 대단히 큰 교회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국제적인 사역도 크게 펼치고 있음도 알고 있습니다. 이번 주일이 제 아내의 66번째 생일인데 한국에서 보낼 수 있어 기쁩니다.”

-요즘 한국에서 동성애차별금지법 제정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동성애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스웨덴의 상황을 들어 해법을 제시해주십시오.

“저는 고대와 신구약성경에 동성애에 대해 어떻게 언급하고 있는지 관련 책을 쓴 적이 있습니다. 이 책은 스웨덴어와 헬라어로 출판되었고 네덜란드어로도 출판될 예정입니다. 영어 본문은 나의 웹사이트(chrys-caragounis.com)에서 ‘Scientific-popular studies’라는 제목을 치면 찾을 수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타협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동성애도 이 연장선에서 봐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즉 복음에 대해선 어떠한 타협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스웨덴이 동성애자들의 낙원으로 바뀐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교회 지도자들이 신앙과 진리를 고수하지 않고 하나님의 길을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지키는 데 교회는 최전선에 서야 합니다. 교회는 동성애를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동성애자에게는 회개와 구원이 필요합니다. 스웨덴 교회는 연약하고 복음의 영향력 또한 약해져 동성애 합법화를 막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숫자는 물론 영향력에서도 강하다고 들었습니다. 힘을 모으십시오. 그리고 동성애 문제를 해결하십시오. 전 세계에 좋은 모델을 보여주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권리를 찾으십시오.” 

-원문분석이 성경이해에 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 어떤 번역도, 설사 그것이 아무로 훌륭한 것이라 해도 원문의 의미를 정확하게 옮길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 속에 신학이 있어야 하는 이유들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세계신학계나 세계교회가 혹시 성경의 원뜻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은 없는지요.

“신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성경언어를 공부한 자들이기 때문에 오해의 가능성이 적은 게 사실입니다. 구원과 직접 연관된 교리는 아니지만 신앙에 있어 중요성을 갖는 기독교인의 행위와 소망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는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때로는 구원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에 대해 사람들이 길을 잃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여호와의 증인’ ‘크리스천 사이언스’ ‘몰몬교’ 등입니다. 

최근에 펴낸 책 ‘헬라어와 신약의 발전’에 요즘 오해되고 있다고 제가 생각하는 것을 다루었습니다. 이를테면 마태복음 12장 28절, 요한복음 15장 1∼6절과 21장 5절인데요. 이것들 중 그 어떤 것은 제대로 이해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구원의 교리가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처음의 두 구절은 신앙과 행위에 있어 중요하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마태복음 12장 28절은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가 귀신들을 내쫓을 때 이미 임했으며 하나님의 나라는 그런 기적들 속에 있다는 C H 다드의 주장의 근간을 이루었습니다. 본문이 가르치는 건 하나님 나라가 아직 도래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확실하고, 또 임박했으며, 그것은 귀신을 쫓아내는 것 속에 존재하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6절을 예로 들어볼까요. 일반적으로 예수님은 포도나무, 제자들은 가지인 것으로 해석하고 이죠. 이런 해석은 상당한 혼동을 야기합니다. 이 해석은 헬라어 단어를 고전적 의미로 파악한 것에 그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요한이 그의 복음서를 기록하기 300여 년 전에 그 단어들은 의미가 바뀌었습니다. 새로운 의미에 따르면 예수님은 포도나무가 아니라 포도원이고 제자들은 가지가 아니라 포도나무 자체입니다. 이것이 바로 요한이 의도했던 것입니다. 이는 자세한 본문연구를 통해 밝혀질 것입니다. 이것을 바로 알면 요한이 요한계시록 14장 18절에서 의도했던 바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쉽다”(마 19:24, 막 10:25, 눅 18:25)는 표현이 성경에 나온다. 혹자는 바늘귀가 이스라엘 한 성문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그런 주장을 들은 적이 있으나 정설로 받아들이는 건 곤란하다. 저는 오히려 바늘귀보다 낙타에 더 집중하고 싶다. 전통적인 이해에서는 낙타의 헬라어 원음은 ‘카멜로스’(kamelos)이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동의할 수 없다. 왜냐하면 ‘카멜로스’가 아니라 ‘카밀로스’(kamilos)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낙타’와 ‘밧줄’이 공히 ‘카밀로스’로 발음된다. 따라서 낙타는 밧줄의 오역이다. 따라서 밧줄이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고 번역해야 옳은 것이다.”

-고전헬라어와 현대헬라어의 차이 때문에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요. 

“질문의 의도와 범위를 정확하게 모르겠는데요. 하지만 만약 질문이 뜻하는 것이 신헬라어(Neohellenic, 즉 현대헬라어)가 신약성경의 보다 정확한 이해를 위해 가치가 있느냐는 것이라면 제대답은 ‘확실히 그렇다’입니다. 이에 대한 수많은 예를 앞서 언급한 책 ‘헬라어와 신약의 발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1528년에 에라스무스가 헬라어, 라틴어를 발음하는 법에 대한 책을 출판했을 때 시작됐습니다. 에라스무스가 주창한 발음은 (비록 그 자신은 그것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헬라어를 부자연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헬라어의 오랜 역사를 두 개의 긴 기간으로 분리해 버리고 말았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고대헬라어와 현대헬라어인데요. 이 작업으로 인해 헬라어의 현대적 형태가 마치 완전히 다른 언어인 것처럼 만들어 버리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지난 500년 동안 비(非)그리스계 학자들이 고대, 특히 고전 시대(호머로부터 주전 300년까지)와 헬레니즘 시대(주전 300년부터 주후 300년까지)의 일부를 연구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헬라어의 연속성에 대해서는 상당히 무지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자주 후대의 헬라어(비잔틴시대, 중세시대, 그리고 현대헬라어)는-그 중에서도 특히 현대헬라어는- 상당히 다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들이 후대의 헬라어를 연구하지 않았던 이유입니다. 

이런 식의 전개가 고전 연구, 특히 신약성경의 연구를 위해 불행인 이유는 후대의 헬라어가 그 이전 형태들에 대한 중요한 지식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약에 대해 말하자면 상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헬라어는 미케네(Mycenaean) 시대(주전 1500년)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단일 언어입니다. 그러나 이 3500년의 기간 동안 느리지만 꾸준한 변화를 겪어 왔습니다. 하지만 현대헬라어의 주요 특징은 고전헬라어(주전 500∼300년)의 그것과 동일합니다. 알렉산더 대제(주전 335년)로부터 비잔틴 황제 유스티니아누스(주후 565년)에 이르는 900년의 시간 동안 헬라어는 고대헬라어에서 현대헬라어로 변해 왔습니다. 신약성경은 이 900년의 기간의 중간에 쓰여 졌기 때문에 고대헬라어와 현대헬라어의 문법적 요소들을 모두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 신약성경은 헬라어 역사상 처음으로 등장하는 단어들과 구문들을 다수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단어들과 구문들은 고전 문헌과 비교해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고전 문헌에는 그런 것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 단어들과 구문들은 그런 것들이 많이 등장하는 후대의 헬라어 본문들을 통해 설명될 수 있습니다. 저는 앞서 언급한 책에서 그 예들을 다수 소개했습니다.”

-전 둘로스 단장인 최종상 선교사의 ‘이방인 사도가 쓴 로마서(Paul as Apostle to the Gentiles)’ 추천사를 통해 그 책을 극찬을 하셨더라고요. 추천의 글 중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에 의한 죄책감으로 오늘날 매우 그릇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바울 해석에 직면해 최 선교사가 바울을 제대로 파악했다고 하셨는데 그 의미는 무엇입니까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 이후 이스라엘과 기독교 복음과의 관계는 변화를 겪어 왔습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설교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메시지는 홀로코스트라는 사건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심지어 구원에 이르는 길은 두 개가 있다는 소위 ‘두 길 이론’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한 길은 이방인을 위한 것인데 그것은 그리스도를 통한 것이고, 다른 한 길은 유대인들을 위한 것인데 그것은 다른 방법, 즉 하나님이 족장들과 맺으신 언약을 통한 것입니다. 두 길 이론의 주창자는 미국 하버드 신학대 학장을 지낸 고 크리스티 스탕달 박사입니다. 대부분의 신약학자들은 그렇게까지 과격하게 나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해당 신약 구절들에 대한 주석은 이런 전제들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 문제에 대한 건전한 기독교인의 입장은 다음과 같아야 합니다.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유대인들에게 행해진 모든 폭력에 대해 유감스럽고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달라져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이뤄집니다. 거기에는 예외가 있을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자신들의 실패와 잘못된 행동 때문에 하나님의 진리와 복음을 양보할 수는 없습니다.”

-한국교회가 많이 쓰고 있는 성경 버전 중 개역개정판이 있습니다. 문제는 끊임없이 오역 논란이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 성경(개역)의 바른 번역을 왜곡, 개악한 곳이 800여곳에 이른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고견을 들려주십시오. 먼저 시제가 틀린 것으로 히브리서 7장 10절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아직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라”를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이미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아직’(에티, eti)을 ‘이미’로 번역했다는 주장입니다. 

“어떤 문서를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일은 원래 사용되었던 단어가 어떤 것이었는가를 알아낸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메시지의 전달은 개별적인 단어들뿐 아니라 구문(문장의 구조)을 통해서도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문맥 즉, 해당본문의 주변에 있는 다른 요소들에 의해 영향을 받기도 합니다. 이번 경우의 헬라어 단어는 ‘에티(eti)’인데 그 뜻은 ‘여전히’(still), ‘아직’(yet)입니다. 이렇게 보았을 때 본문의 의미는 레위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즉 아직 그의 조상(즉 증조부 아브라함)의 허리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문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정당한 방법입니다. 

하지만 레위가 아브라함의 세 번째 세대에서 출생했기 때문에 새로운 한글 번역이 비록 레위가 훨씬 후에 태어나기는 했지만 잠재적으로 ‘이미’ 그의 조상의 허리에 있었으며, 따라서 레위 역시 아브라함이라는 인격체를 통해 십일조를 드릴 수 있었다는 뜻으로 원문을 이해했던 것으로 보이네요. 그렇다면 두 개의 번역은 사건의 과정을 보는 관점이 서로 다르지만 같은 생각을 다르게 표현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습니다. 즉 레위가 태어나기 전에 십일조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27절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를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로 번역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헬라어 원어 ‘아폴뤼메넨’은 현재 분사 수동형입니다. 미래시제인 ‘썩을’로 번역한 것은 잘못이 아닐까요. 

“물론 원문은 현재 중간태/수동태 분사를 사용했습니다. 그럴 경우 의미는 “썩는 양식”(the food that perishes)입니다. 어떤 동사들은 현재시제의 모습을 갖고 있지만 실제로는 미래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휘파고’(내가 가다)가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가다’라는 행위는 미래에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이죠. 같은 식으로 현재 시제를 갖고 있고 현재의 의미를 가진 것으로 생각되는 동사들 중 많은 것들이 실제로는 완료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동사들은 그냥 현재형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이다(oida)’라는 동사는 항상 현재형 ‘나는 안다’로 해석되고 있지만 사실 그 의미는 완료형입니다. ‘내가 안다’라는 것은 ‘내가 보았다’(완료형)의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그 의미는 ‘나는 내가 (무언가를) 본 것에 대한 결과로서 알고 있다’입니다. 이것은 ‘오이다’가 ‘에이드(eid)’(더 이전에는 디감마 digamma ‘F’와 함께 사용되어 Feid로 썼다. F는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Feidw에서 온 것이다)에서 파생되었다는 사실에서 쉽게 알 수 있습니다. eid로부터 우리는 ‘horaw’ 혹은 ‘horw’(내가 보다)의 부정과거형인 eidon(내가 보았다)을 얻게 됩니다. 이 Feid가 의미 변화를 거쳐 Foid와 Fid가 되었습니다. 참고로 idwn은 horaw/horw의 부정과거 분사(‘본 후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 단어를 ‘썩는’으로 해석하건 혹은 ‘썩을’로 해석하건 큰 차이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음식은 썩을 수 있는 것이고 이미 썩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음식은 언젠가 분명히 썩을 것이고 영원히 남아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시는 음식은 썩지 않을 것이고 영원히 남아 있게 될 것입니다.” 

-의미가 틀렸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고린도전서 1장 30절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를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로 번역했습니다. 헬라어 원어 ‘아폴로위트로시스’는 속전을 받고 놓아준다는 의미로 구속을 뜻합니다. 구원을 뜻하는 헬라어 원어는 ‘소테리아’입니다. 

“맞습니다. 헬라어 ‘아폴로위트로시스’는 기술적으로 ‘구원’(salvation)이 아니라 ‘대속’(redemption)을 의미합니다. 구원은 보다 일반적인 용어이며 대속은 구원의 어떤 특정한 측면에 초점을 맞춘 개념입니다. 대속에 대해 말하면서 보다 느슨한 용어로 구원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을 수도 있지만 만약 대속에 해당하는 한국어 단어가 있다면 그것을 사용하는 게 더 정확합니다.”

-에스겔서 39장 20절 “내 상에서 말과 기병과 용사와 모든 군사를 배불리 먹을지니라 하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를 “내 상에서 말과 기병과 용사와 모든 군사를 배부르게 먹일지니라 하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로 번역했습니다. 본문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침략한 곡의 군대를 멸하시고 그 시체들을 새와 들짐승들에게 먹이로 주신 것에 대해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이스라엘의 적국인 곡의 군대의 군사들과 말들에게 배부르게 먹여주라고 번역해 중대한 오류를 범했습니다. 

“인용된 본문만 보아서는 17∼20절이 한국어로 어떻게 번역되어 있는지 제가 알 수는 없는데요. 거기에 대한 지식 없이는 ‘그리고 그들이 먹게 될 것이다’라는 번역이 잘못인지 아닌지를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번역자들은 20절, 주님 자신의 말을 인용한 것이 아니라 선지자가 주님의 메시지의 핵심을 요약한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끝에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를 추가함으로써 말입니다. 어쨌든 맛소라 본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말과 기병과 용사와 모든 군사들, 너희는 내 상에서 만족하게 될 것이다. 나의 주 여호와의 말이다.’(And you will be satiated at my table with horse and rider, mighty men and all kinds of men of war, saith my Lord Jahweh.) 칠십인경(LXX)은 정확하게 히브리어 본문을 따르고 있습니다. 저는 맛소라 텍스트나 칠십인경의 본문비평 도구에서 삼인칭 명령으로의 독법(“배부르게 먹일지니라”)의 근거를 찾을 수 없습니다.”

-이번에 학술대회에서 발표할 내용은 무엇입니까.

“신약에 나타난 지식과 신앙이라는 주제에 대해 말할 것입니다. 사실 저는 개혁주의생명신학학회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습니다. 제가 이해하고 있는 것은 개혁주의생명신학이 신학적 사고와 행위에 있어 참된 기독교적 자세를 되살리자는 시도와 표현이라는 점입니다. 그것은 제 마음과 정신에 와 닿습니다. 왜냐하면 저 역시 신학은 기독교 교회라는 배경 속에서 추구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신학이 사변화되지 않고 현실세계에 진정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길은 무엇입니까. 

“모든 기독교 신학자들은 그리스도와 생명력 있는 관계를 계속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론적 사유 자체는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울과 루터 그리고 칼뱅 등 과거의 모든 위대한 기독교인들에게서 발견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 사유, 그리고 사색이 하나님의 계시된 뜻의 범위 안에서, 그것의 인도를 받아 이루어지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신학자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요. 가장 필요한 덕목은 무엇입니까. 이성과 감성, 영성을 고루 갖춘 학자가 되는 길은 무엇일까요.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신약학자들과 구약학자들 그리고 다른 신학자들 중 그리스도께 헌신되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다만 신학을 자신들의 직업으로 삼고 있을 뿐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자신이 실제로 진지한 기독교인이 아닌 이상 신학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신학자가 되려면 그 길을 통해 하나님을 섬기도록 부르심을 받아야 합니다. (가장 넓은 의미의) 기독교 신학자들로서 우리의 임무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역량을 갖추도록 노력하며 열심히 연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결코 충분히 연구한다거나 충분히 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경건한 삶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동행과 함께 진행되어야 합니다. 연구와 경건생활 중 하나 때문에 나머지 하나를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성경을 가르쳐 줄 훌륭하고 헌신된 신학자들을 필요로 합니다. 어떤 면에 있어서 모든 교인은 성경을 읽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구원을 위해 필요한 모든 주요 가르침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성경구절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고 그들의 삶을 성경 연구와 해석에 헌신한 사람들의 도움과 지도를 필요로 합니다. 신학자는, 만약 그가 자신의 소명에 충실하다면 기독교회의 위대한 자산입니다(마 13:52, 그 당시 서기관은 성경주석가였다).”

-혹시 한국인 제자가 있는지요. 

“1992년 독일 튀빙겐에서 다니엘 최(최종상) 박사(둘로스 전 단장)를 만났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는 자신이 1980년대 중반 런던에서 저의 강의를 들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었습니다. 최 박사를 제외하고는 한국 학생을 가르쳤던 기억이 없습니다. 하지만 아시아 학생들을 가르쳐 본 경험은 있습니다. 인도에서 교환교수로 있었을 때 제 강의실에는 인도 티베트 미얀마 베트남 필리핀 몽골 등에서 온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들을 가르치는 것이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매우 열심히 배웠습니다. 가르치는 사람은 열심히 배우는 학생들을 보면 고마운 생각이 드는 법입니다.”

-한국도 다문화가족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다문화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할까요. 

“글로벌화는 전 세계에 걸쳐 감지되고 있습니다. 다문화성의 문제는 많은 부정적 측면을 가지고 있어서 전례가 없는 수많은 문제들을 야기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기독교인으로서 우리의 의무는 모든 기회를 활용해 전도에 힘쓰는 것입니다.”

-유럽의 재복음화가 시급한 실정인데요. 이를 위한 어떤 운동들이 있는지요. 스웨덴이나 그리스 사례가 있는지요. 

“유럽이 점점 더 세속화 되고 있고 복음을 들을 필요가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증대하는 세속화에 대해 깊이 우려하면서 기독교 메시지와 기독교적 가치들을 사회에 소개하기 위해 노력하는 기독교인들도 있습니다. 몇 년 전 스웨덴에서는 ‘클라파민스티투트’라는 단체가 만들어졌습니다. 회원들은 정치인, 의사, 변호사, 신학자, 교회지도자 등인데 모두 신실한 기독교인들입니다. 이 단체의 목적은 한 가지입니다. 논쟁에 참여하고, 세속 신문에 글을 싣고, 신앙과 사회의 많은 문제들에 대해 무신론자들이나 불신자들과 대화를 나눔으로써 기독교신앙을 사회 속에 투영해 보자는 것입니다. 우리의 노력은 결실을 맺고 있습니다. 어떤 정책들은 기독교적 관점에 따라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또 다른 예를 그리스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복음주의교회는 영국 및 외국 성서협회와 협력으로 세워진 성서협회를 갖고 있습니다(1850년경부터). 그런데 약 20년 전부터 그리스복음주의교회가 동방정교회와 가톨릭교회에 대해 문을 열었습니다. 그래서 요즘 복음주의교회, 동방정교회, 가톨릭교회 사이에 협력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어떤 동방정교회 주교들은 성경 책을 그리스 학교, 군대, 그리고 가정집에 전달하는 일에 열심입니다. 이것은 그리스에서는 새로운 현상이죠. 왜냐하면 동방정교회의 전통적인 입장은 ‘(우리가 말하는 것을) 묻지 말고 믿으라’입니다. 따라서 우리 주변에 벌어지고 있는 부정적인 현상에도 불구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빛이 환하게 비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타종교, 특히 이슬람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이슬람 세력이 유럽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점차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교회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저는 원칙적으로 이슬람의 위협에 대처하는 우리의 태도가 사도시대에 이교도들의 삶의 방식에 대처했던 태도와 달라야 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성부 하나님께 이르는 길이 오직 하나밖에 없다고 선포합니다(행 4:12).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협정을 맺을 수 없습니다. 초대교회는 변증가들을 통해 이 도전에 대응했습니다.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기독교인들(Justin, Theophilos, Athenagoras 등)은 글을 통해 이교도들의 가르침을 폭로하고, 기독교 신앙의 우월성을 분명히 드러냈습니다. 일반인들은 기독교와 이슬람을 혼동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두 종교 사이의 커다란 차이점들을 명확히 드러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카라구니스 교수는

그리스 출신으로 영국 런던대를 거쳐 스웨덴 웁살라대에서 ‘에베소서에 사용된 신비의 의미와 범위’라는 논문으로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웁살라대, 벨기에 루벵대, 룬트대 등에서 교수로 활동하며 ‘70인경의 헬라어-영어자전’ 편찬 자문위원회 겸 교정자로 참여했다. 저서로 ‘헬라어와 신약의 발전’ 등이 있다. 

함태경 기자 zhuanji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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