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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카시 머리
조회 648 추천 0 비추천 0 2016-12-08 20:33 작성자 : 서명숙

다시 읽는

영애의 후광을 벗어던져라

"개폼 잡는다는 말이다", 후카시가 무슨 뜻이냐고 묻는 질문에 한 누리꾼이 남긴 대답입니다. 수 백 명의 학생들이 채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죽어 가는 와중에 자신의 올림 머리를 손질했다는 대통령. 속칭 후카시 머리라 불리는 대통령의 이 머리 스타일을 통해 인간 박근혜의 한계를 지적한 글이 있습니다. 서명숙 전 오마이뉴스 편집국장(현 제주올레 이사장)이 2004년 <시사저널>에 게재한 글을 본인의 동의를 얻어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박근혜 표 올림머리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1주기인 2015년 4월 16일 진도 팽목항을 방문해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후 떠나는 가운데, 머리핀 여러개로 고정한 박근혜표 올림머리를 하고 있다.
▲ 박근혜 표 올림머리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1주기인 2015년 4월 16일 진도 팽목항을 방문해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후 떠나는 가운데, 머리핀 여러 개로 고정한 박근혜표 올림머리를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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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여중생 시절, 내가 살던 시골 마을에 스타가 탄생했다. 조그마한 시계수리점 아들이 서울에 있는 유명 대학에, 그것도 신흥 인기 학과로 꼽히는 전자공학과에 당당히 합격한 것이다. 이전에 더 좋은 대학에 진학한 학생도 더러 있었지만 시계방 아들래미만큼 폭발적인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그가 스타로 떠오른 건 순전히 대통령의 영애 근혜양과 같은 대학, 같은 학과 동급생이 되었다는 이유에서였다.

동네 사람들은 첫 방학을 맞아 고향에 돌아온 그에게 근혜양에 대해 묻고 또 물었고, 그는 예쁘고 얌전하고 굉장히 겸손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사람들은 오라 역시 따위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흐뭇해했다. 개학 후에도 아들에게서 새로운 소식을 들은 게 없는지 알고 싶어 찾아오는 손님들 때문에 시계방은 늘 북적댔다.

지난 총선 기간(2004년 4.15 총선 - 편집자말)에 박근혜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편집자말) 대표가 찾은 유세장은 어디나 그때 그 시계방처럼 사람들로 넘쳐났다. 방송 카메라는 그녀의 손이라도 한번 잡아보려고 밀쳐대는 유권자와, 그들의 악수 공세에 시달리다 못해 붕대까지 감은 그녀의 손을 번갈아 보여 주었다.

그녀는 지난 4·15 총선이 배출한 최대 스타였고, 대형 스타답게 대박 흥행을 주도했다. 절제된 언어와 세련된 매너에 부드럽고 서민적인 이미지까지 두루 갖춘 그녀에게 매료된 것은 시골의 노인네들만이 아니었다. 영남권 유권자와 구세대가 그녀에게서 향수와 안정감을 느꼈다면, 신세대는 그녀로부터 신선한 매력을 발견했다. 박 대표 체제가 뜨면서 정치에 염증을 내던 40대 남성 가운데 상당수가 한나라당의 원심력 안으로 들어갔다는 분석도 있었다.

박근혜=여성 대표 주자라고?





이런 가공할 만한 흡인력으로 그녀는 좌초 직전의 한나라당을 위기에서 건져냈다. 오죽하면 한때 정적이었던 최병렬 전 대표가 선거 직후 천막 당사를 찾아가 뭐니 뭐니 해도 당을 구한 건 박 대표라고 경의를 표했겠는가.

치솟는 박근혜 주가를 최대한 활용하려는 야당의 움직임도 벌써 시작되었다. 한나라당 소장파는 박근혜 중심의 당 개혁을 주장하고 나섰다. 막판에 불어댄 노풍(老風)과 박풍(朴風)으로 간신히 위기를 모면했지만, 선거를 치르면서 환골탈태를 못하는 한 미래를 기약하기 힘듦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보수 언론은 모처럼 등장한 슈퍼 스타 박근혜를 띄우느라 바쁘고, 여성계 일각에서도 그녀의 화려한 도약을 고무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치장하고 간수하기 번거로운 육 여사 머리

그러나 나는 아직도 박 대표가 오랜 세월 구태에 물든 한나라당을 개혁하리라는 기대감을 가질 수가 없다. 또 그녀에게 여성의 대표 주자라는 상징성을 부여하기를 주저한다. 어린 시절에 여성이라는 구분을 넘어서는 영애라는 특별한 존재로, 머리통이 굵어진 뒤에는 독재자의 딸로 각인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8년에 걸친 국회 의정 활동에서 그녀가 여성의 권익 향상보다는 당내 권력 투쟁에 더 열중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만도 아니다. 내가 그녀를 가능성 있는 독자적인 정치인으로 평가하기를 망설이는 까닭은,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녀의 머리 스타일 때문이다.

어머니를 본뜬 그녀의 머리 스타일은 속칭 후카시 머리라고도 한다. 이 머리를 완성하려면 하루에 적어도 두세 시간이 소요되고, 하고 난 뒤에도 매우 조심스레 간수해야 한다. 실제로 박 대표는 하루 서너 시간밖에 못 자는 강행군을 하면서도 머리가 헝클어질세라 차 안에서 낮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고 한다. 그녀도 거추장스러웠는지 한때 단발을 시도했지만 주변의 권고로 육 여사 머리로 돌아왔다고 한다.

머리 스타일 하나 제 뜻대로 못하면서, 어찌 당을 뜯어고칠 것인가. 과거를 연상케 하는 머리 스타일로 표를 얻으면서 과거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하루 두세 시간을 머리에 투자하면서 집안살림 하랴 새끼들 키우랴 한 철에 한번 미장원 가기도 버거운 서민 여성들의 삶을 어찌 짐작하랴. 그녀의 후카시 머리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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