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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질문드립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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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 181 | 추천 | 0 | 비추천 | 0 | 2017-01-14 04:11 | 작성자 : 전규성 |
주신 글의 끝부분입니다. 4. 성령의 충만 신약시대의 성도들 특히 천국 안에 있는 성도들은 구약시대의 가장 큰 선지자(세례요한)보다 크다는 그리스도의 말씀(마 11:11)은 신약의 성도가 십자가의 은혜로 충만히 받아 율법의 완성을 볼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될 수 있다(마 5:17-19, 고후 3:6-18, 롬 8:1-4), 따라서 성령의 충만함을 사도시대에 국한 한다든가, 스데반이나 특별한 사람들의 예를 들면서 모든 교인들에게 임할 은혜가 아니라는 주장이 왕왕 있는데(J. Stott)의 경우, 이것은 옳지 않다. 의롭다함을 받는 일에만 차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충만함을 받는 일에도 차별이 없이 풍성하게 받을 수 있다(딛 3:5-6, 엡 5:18, 요 7:37-39, 눅 11:13, 행 2:38-39, 욜 2:28, 행 2:16-21 등). 한국 장로교회는 처음부터(1907) 성령을 충만히 받기 위해 남녀노소의 구별 없이 함께 참여하였고, 또 구하는 자들은 모두 충만함을 입어 크게 성장했음은 세계 교회사에 특기할 만 하고, 이러한 좋은 전통을 버리고, 외국의 메마른 신학에 의존하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장로교단을 포함하여 모든 한국 개신교의 공중기도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한국교회를 크게 축복하였다. 그리고 앞으로도 축복하실 것이다.   위 글을 보면서 감히 심히 안타까움을 느끼는 바가 있어, 답을 예상하면서도 감히 질문 드립니다. 신학에 관계된 사람은 다 아시는 분이시기에 조심스럽습니다.   신약의 성도가 십자가의 은혜로 충만히 받아 율법의 완성을 볼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될 수 있다(마 5:17-19, 고후 3:6-18, 롬 8:1-4),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구속사로 인하여 율법의 완성은 모세율법이 그리스도의 율법(고전 9:21),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대체되었음을 말씀하셨다고 봅니다. 그러하다면, 완전해진 그리스도의 율법, 복음만 효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까? 감히 뭇습니다.       아래는 차영배 교수 님이 쓰신 글입니다. ============================================ 중생과 성령의 세례 및 성령의 충만 항간에 중생과 성령의 세례는 같은 것으로 보고, “성령의 세례와 충만은 서로 구별된다는 것이 개혁주의 신학의 구원론이라”는 말이 떠돌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서로 얽혀있다. 그 문제점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개혁주의 신학의 구원론이란 어떤 특징을 지녀야 하는가? 둘째. 중생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그 정의 여하에 따라 다른 서정(ordo)과의 관계가 달라진다. 셋째. 성령의 세례에 관한 성경적 증거가 무엇이며, 그것들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그에 따 라 중생 및 성령 충만과의 관계가 달라진다. 이 외에도 성령의 충만에 관하여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신약시대의 은사들에 대한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것들은 모두 구원의 서정에 관한 것인데, 오늘날 개혁신학자들 사이에서도 그 의견의 일치를 보기 힘들다는 점에서 이 문제는 더욱 난해하다. 이 짧은 시간에 이러한 문제들이 다 풀려질지 의문이지만, 그럼에도 간략하게나마 풀어보고자 한다.     1. 개혁신학적인 구원론 칼빈주의적 구원론이라고도 할 수 있는 우리의 구원론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이루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인간의 노력이 개입되어 하나님의 은혜는 단순히 도와주는 정도라고 주장할 경우, 세미펠라기안주의나 아르미니안주의로 기울어지게 되고, 전적으로 인간의 노력으로 된다고 하면, 펠라기안주의로 전락하게 되어 이방종교와 다름이 없어진다. 인간은 목석(木石)이나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역사하시면서도 인간의 활동이 활발해져야 하므로, 여기에 서로 함수관계가 생긴다. 이것은 물론 신인협동설(Synergism)이 아니다. “성령의 능력→인간의 능력”이어야 하는데, 여기에서 화살표는 성령의 능력이 인간을 전적으로 사로잡아 사람이 본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그 “이마고 데이”(신의 형상)가 살아나 활성화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오늘날 칼빈주의를 표방하는 교회들이 과연 이렇게 되도록 하고 있는가? 입으로만 “칼빈주의” 운운하면서 성령의 능력에 의존하지 않는 일이 적지 않다. 실제 생활이나 교리가 함께 움직여야져야 하는데, 교리가 바르지 못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없고, 성령의 충만한 역사가 일어나지 않으면, 교리가 그 빛을 발휘할 수 없게 되어 아르미니안주의나 세미펠라기안주의와 다를 바가 없다. 만약 칼빈주의자들이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신다면서 기도도 하지 않는다면(미국과 유럽의 칼빈주의자들은 기도를 게을리 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그 행동으로 칼빈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칼빈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다. 그의 구원론에서 기도에 관한 장(Ⅲ권 20장)은 무려 52절이나 되어 가장 길게 진술되어 있다. 기도하지 않는 칼빈주의 신학자들에게 배워서 한국에 돌아와 그 사상이 마치 칼빈주의 인양 퍼트리는 일이 있는데, 그로 인해 한국교회의 전통(기도하는)을 무너뜨릴 위험이 적지 않다. “외제”라고 늘 좋은 것은 아니다. 사대주의 사상에서 벗어날수록 좋다. 앞으로는 외국에서 한국에 꽃피고 있는 양질의 칼빈주의를 배우고자 줄을 이어 찾아올지 누가 알겠는가?    2. 중생 칼빈이나 도르트신조나 18세기까지의 중생관은 대부분 넓은 의미의 중생관이었다. 이를 루터교식으로 말하자면 두 번째의 중생을 의미한다. 즉 오순절 성령과 같은 권능 혹은 죽은 자를 부활케 하시는 그 같은 성령의 권능으로 중생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칼빈은 기독교강요, 제Ⅲ권 3장(1-25절)과 4장(1-39절)에 중생을 도덕적, 종교적 회개와 같은 것으로 보고 상술하였다. 옛사람이 죽고(moerificatio), 새사람으로 다시 살아나야 한다(vivificatio)는 것이다. 오늘날의 중생관은 이와 다르다. 사도들의 경우로 본다면, 오순절 전에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마 16:16)로 고백한 것은 이미 거듭난 후의 고백으로 본다. 누구든지 나사렛 예수를 구주로 받아들이면, 이미 하나님께로서 난 자 곧 거듭난 자이다(요 1:12-13). 이것은 칼빈의 “신앙”관과 일치한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면서 말씀을 들을 때 일어난다(기독교강요Ⅲ권 2장 1-43), 따라서 실질적 내용은 칼빈이나 우리나 다를 바 없다. 그가 진술한 “믿음”이 곧 오늘날 우리의 “거듭남”이고, 그의 “중생”은 우리의 회개(큰 회개) 또는 성령의 세례나 충만에 해당된다. 중생과 믿음은 직결되어 있다(요 1:12-13, 3:3-16, 벧전 1:3, 23-25, 요일 3:9). 성부께서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시는 것(약 1:18)이 곧 거듭남이다. 마 19:28에는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고 하셨는데, 여기서 “세상이 새롭게 되어”는 “거듭나는 가운데”라는 뜻이므로, 중생에 관한 광범위한 뜻은 첫째, 복음으로 거듭난다는 좁은 의미로부터 둘째, 종교적, 도덕적 중생 즉 회개를 의미하는 넓은 의미 그리고 마지막으로 온 세상(사회)이 새롭게 되어 주 재림시 일어나는 우주적 변화까지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중생이라는 말을 할 때, 조심할 것은 어떤 의미로 사용한다는 것을 먼저 정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거듭난 자(좁은 의미)에게 “너는 거듭나야 한다”(넓은 의미)고 얼마든지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사회의 정화까지 확대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회의 오염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3. 성령의 세례 성령의 세례에 관한 성경의 증거는 성경 곳곳에서 발견되는데, 사복음서와 사도생전에 언급되어 있는 세례 요한의 증거, 베드로의 증거, 예루살렘 교회의 증거, 사도바울의 증거가 있고 기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증거가 있다. 그 밖에도 사도바울의 목회서신과 베드로전후서, 유다서 그리고 요한계시록 등에도 이에 대한 언급이 있다. 이상 언급된 성경말씀을 통해 다음과 같은 정의를 내릴 수 있다. (1) 성령의 불로 말미암는 세례: “하기오 카이 퓨리”= “불같은 성령”이라는 뜻 (2) 생명에 이르는 능력의 회개 (3) 기름 부으심 받은 그리스도의 기름 부으심 (4) 마음의 청결 곧 중생의 씻음 (5) 한 성령을 마심으로 신비로운 연합에 이름 (6) 처음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입음 (7) 오순절 성령을 받음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성령의 세례는 넓은 의미의 중생과 같은 것으로 볼 수 있으나(칼빈, 도르트신조 등), 좁은 의미의 중생과는 구별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령의 충만과의 관계는 적어도 제자들과 사도바울, 사마리아 교인들과 고넬료, 에베소의 제자들 등은 첫 충만 곧 성령의 세례임을 알 수 있고, 고린도교회의 경우도 고전 12:13에 관한 해석여하에 따라서 말이 달라질 수 있다. 성령을 마시는 일이 곧 요 7:37~39에 있는 말씀대로라면, 충만과 성령세례는 같은 의미가 된다. 물론 여기에는 성령을 마시는 일이 곧 성령세례라는 해석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충만한 역사가 없는 성령세례는 종교적 능력이 상실과 회개를 주장할 수밖에 없으므로, 아르미이안 주의나 세미펠라기안주의에 떨어지기 쉽다. 칼빈주의적 회개 곧 넓은 의미의 중생을 주장하려면, 불가불 첫 충만이 곧 성령세례라고 아니 할 수 없다. 반대로 성령 세례 곧 회개가 없는 충만은 종교적인 즐김에만 치우쳐, 신비주의로 기울어질 위험성이 많다.     4. 성령의 충만 신약시대의 성도들 특히 천국 안에 있는 성도들은 구약시대의 가장 큰 선지자(세례요한)보다 크다는 그리스도의 말씀(마 11:11)은 신약의 성도가 십자가의 은혜로 충만히 받아 율법의 완성을 볼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될 수 있다(마 5:17-19, 고후 3:6-18, 롬 8:1-4), 따라서 성령의 충만함을 사도시대에 국한 한다든가, 스데반이나 특별한 사람들의 예를 들면서 모든 교인들에게 임할 은혜가 아니라는 주장이 왕왕 있는데(J. Stott)의 경우, 이것은 옳지 않다. 의롭다함을 받는 일에만 차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충만함을 받는 일에도 차별이 없이 풍성하게 받을 수 있다(딛 3:5-6, 엡 5:18, 요 7:37-39, 눅 11:13, 행 2:38-39, 욜 2:28, 행 2:16-21 등). 한국 장로교회는 처음부터(1907) 성령을 충만히 받기 위해 남녀노소의 구별 없이 함께 참여하였고, 또 구하는 자들은 모두 충만함을 입어 크게 성장했음은 세계 교회사에 특기할 만 하고, 이러한 좋은 전통을 버리고, 외국의 메마른 신학에 의존하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장로교단을 포함하여 모든 한국 개신교의 공중기도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한국교회를 크게 축복하였다. 그리고 앞으로도 축복하실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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