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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있는 성도
조회 23 추천 0 비추천 0 2017-03-27 09:26 작성자 : 산골어부

교양 있는 성도

 

성경공부를 하자는 분위기가 무르익어서 매월 1회 날을 정하여 기독교 교양 강좌를 할 예정입니다. 설교도 전도도 말씀을 듣는 것도 이웃과의 관계도 성도는 교양의 모양과 바탕위에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공부라는 좋은 이름으로 행해진 많은 나쁜 선례들이 있어왔기에 같은 이름을 피하려합니다. 좋은 것을 악하게 쓰는 것도 교양의 문제라는 생각이어서 기독교 교양의 필요와 강조를 자꾸만 더 하게 됩니다.

 

사전에서 교양을 찾아보면- 명사: 학문·지식·사회생활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품위. 또는 문화에 대한 폭넓은 지식. 이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그 설명대로 짐승 아닌 사람으로서 사회인으로서 자신의 품위를 이루어가고 유지하고 지키는 사람은 나쁜 사람 곧 악당이 될 수 없습니다. 나쁜 일, 악한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자신의 사람 된 품위를 다 팽개치고 있는 모양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기품이나 위엄. 품격을 잃는 다면 그것은 곧 짐승으로 전락하는 것에 다름이 아닙니다. 그래서 겉모양은 사람이지만 짐승 같은 사람이 되고 그렇게 불리어지고 외면 받게 됩니다.

 

정부에서는 국무총리나 대통령을 지낸 사람들에게 일정액의 품위유지비를 지급한다고 합니다. 물론 돈으로 사람의 품위 기품 품격이 유지되는 것은 아니지만 다만 한 국가의 최고위 직을 지내면서 국무 국책 국운을 어깨에 짊어졌던 인물이 궁핍의 처지에 들어 곤궁함의 모양 같은 것으로 사람들의 안쓰러움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방지하거나 최소화하려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그러한 그들의 모습에서 국격(國格)의 현재를 정의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듣는 바로는, 영국이나 스페인 같은 나라들은 자신들이 한 때 세계의 패권과 질서를 한 손으로 휘어잡고 호령하였던 나라였다는 사실을 지금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자긍심으로 심어주는 교육들에 대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으로 국가의 위상과 국민의 품격을 높인다고 하지요. 그렇게 볼 때에 이탈리아, 중국, 몽골, 그리스 등도 마땅히 그러한 기품과 품격의 국가 반열에 올라야 하지만 지금은 그저 한 때 영화(榮華)로서의 추억만 남아 버린 경우도 없지 않다고 볼 것입니다.

 

국가나 사람이나 한결 같은 품위를 지킨다고 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우선은 경제 문화 정치 등 모든 면에서 안정되어야 하고 특히 빈궁하지 말아야 할 것이 전제되는데 이는 사람은 일단 배가 고프면-’ 한 없이 추락하면서 물불을 안 가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 ‘생존의 문제 앞에서는 기품과 품위의 소용없는 일이 되어져 버리고야 마는 것인데- 가끔씩은 스스로 기품 있는 죽음으로 가는 길을 기꺼이 택하여 가는 이들도 있어서 숙연함으로 이를 바라보는 이들에게 삶과 지혜의 숙제를 남겨두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지칭되어지는 보통 사람들이 품위를 지키는 모양을 유지하려면 몸부림을 치지 말아야 하고 발버둥의 모양 또한 물리쳐야 합니다. 이를 일으키는 감성을 조절하여야 하지만 또한 이성이 차거와지지 않도록 뜨거운 마음으로서의 온유한 모습을 지녀야 합니다. 감정적 치달음으로 교양이 결코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함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경험하고 습득하여 가지고 있는 폭 넓은 지식이 다만 머릿속 창고의 지식으로서만 쌓여져 있지 않고 그 바르고 마땅한 지식들이 자양분이 되어 온 몸으로 뿜어지며 실천되어지는 모양의 삶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공부가 물론 좋은 것이지만 그것이 머릿속에 지식으로만 쌓여지게 된다고 한다면 성경퀴즈대회 때 외에는 별로 사용되어질 일도 없고 그렇다면 그렇게 꽁꽁 지니고 있어야 할 의미와 필요성도 상실되어버리고 마는 것이지요. 그래서 야고보서는 믿는 바와 배운 바의 실천을 강조하였습니다. 실천되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표적으로도 능력으로도 나타날 수 없고 또 삶의 지혜와 모본으로서 발휘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뿜는 꽃송이로서 피워져야 하며 저는 이것을 그리스도인의 교양이라고 말합니다. 바로 하나님께 사랑 받고 사람들에게도 칭송받는-’ 모양인 것입니다. 믿음은 좋은 것이지만 그 믿음이 누군가와 경계선을 더욱 선명히 하고 또 적과 원수를 만드는 도구로 사용된다고 하면 그 믿음의 유익과 열매가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믿음은 더욱 품는-’ 도구가 되어야 하는 것이지 배척하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악한 엄습과 근접을 막아야 하지만 종국적으로는 그 모든 것들을 녹여내어 새롭게 만드는 것이 목적과 목표가 되어야 함은 새삼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더욱 품기 위하여-’ 서는 배척의 믿음이 아니라 포용의 믿음이 필요하고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교양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손 내밀고 잡아주는 모양이 거기에서 비롯되며 예수님의 원수사랑말씀은 자격 조건의 구별이나 구분보다는 품는 사랑이 우선되어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의 교양 있는 모습은 활짝 열려진 문과도 같습니다. 바로 화평케 하는-’ 힘입니다. 가만히 생각하여 보십시오. 오늘도 사방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다툼의 문제는 법 해석으로 인한 충돌의 경우 보다는 교양의 상실 모양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부정할 수 없지 않습니까...

 

교양의 상실과 없음에 화가 나고 그래서 감정조절을 못하게 되며 또 그래서 순식간에 화()의 결과로 치닫게 되는 것입니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지금도 여전히 돌이켜지지 않는 것 그리고 회복되기 힘든 일이 지금도 여전히 회복되어지지 않는 이유는 상대도 나도 교양의 품격을 다 화딱지로 내려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특히 성도된 이들은 이것을 다시 집어 들어야만 합니다. 교양의 회복입니다. 찬송을 더욱 찬송 같게- 헌신을 더욱 헌신 같게- 봉사를 더욱 봉사답게 하는 것은 믿음을 가진 이들의 교양 있는 모습으로 되어 진다는 것을- 그래서 하시라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산골어부 김홍우 목사 2017-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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