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게시판 > 자유기고
자유기고

<자유기고>는 개인적칼럼, 핫뉴스 리뷰, 개인의 목회적 신학적 의견들을 기재하면 우수한 내용을 선별하여 <뉴스> 자유기고, 뉴스리뷰란에 등재시키며 선별된 분에게는 소정의 선물을 보내드립니다.
쏟아져 내린 땅콩들
조회 18 추천 0 비추천 0 2017-03-27 22:35 작성자 : 산골어부

쏟아져 내린 땅콩들

 

교회마당 끝 쪽에 아홉 평 텃밭이 있어서 고구마를 심어 매년 잘 먹었는데 교회 시설 확장 보완의 일에 내어주고 나니 이제는 한 평 정도- 그나마도 남미의 나라 칠레처럼 가늘고 길쭉한 모양으로 남았습니다.

 

거기에서 풋고추라도 몇 개 따먹어 볼까- 허리를 굽히고 열심히 괭이질 삽질을 하는 중에 오그르르- 앞가슴 주머니에서 떨어져 내려 땅바닥에 구르는 것들이 있어서 보니 땅콩들입니다. 아차, 얼른 허리를 세우고 들여다보니 절반 쯤 남았습니다. 웬 땅콩인가 하면- 텃밭 밭갈이를 하면서 먹으려고 한 스무 알정도 왼쪽 가슴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나온 그야말로 심심풀이 땅콩입니다. 그런데..

 

아하, 허리를 굽히니까 주머니에 들어있던 땅콩이 쏟아져 내리는구나- 무언가 배울 모양이 있는 것 같아서 땅에 떨어진 땅콩들을 바라보며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그래 맞아- 이 모양은 허리를 숙였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숙이지 않았으면 결코 저렇듯 우르르 쏟아져 나오지 않았을 터이니... 겸손으로 낮아지고 허리를 숙이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것을 내어 놓게 된다는 교훈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유익이 될 것 같아.. 조금은 억지로 꿰어 맞추는 것 같기도 합니다만, ‘내 주머니의 땅콩들이-’ 쏟아지는 그 순간 제가 받은 교훈은 그것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님도 누누이 겸손하고 낮아 질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와 성도들 사이에서 겸손하여야 하고 낮아져야 한다는 가르침은 봇물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또한 그저 좋은 말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서 교회는 점점 높아만 가고 목회자와 성도들은 자꾸만 높아만 지고 있는데 아니라고 손사래를 칠 수가 없습니다. 그래요... 꼿꼿이 선 모습으로 허리를 숙일 일이 없는 사람은 내 주머니 속의 땅콩들이 쏟아져 나올 일도 없고 그렇듯 내 것에 민감한 사람은 혹 낮아지는 모양이 필요할 적에도 한 손으로는 주머니를 꼭 막고 허리를 숙이는 것으로 내 땅콩의 안전을 도모하게 됩니다.

 

내 것이 중요합니다만, 그러나 그 내 것이 어디로부터- 어떤 목적으로- 내게 와서 내 것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인지를 아는 사람은 내가 만든 내 것이 아니라, ‘내게 주어진 내 것임을 깨닫고 내 뜻에 따른 용도가 아니라 주신 분의 뜻에 따른 용도를 생각합니다. , 내 것은 내 것이 아니라 내게 잠시 맡겨진 것임을 선명히 알기 때문이지요. 또 그렇기 때문에 내 맘대로 나의 즐거움만을 위해 펑-- 쓸 수 없고 주신 분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쓰여야 한다는 것 또한 알고 그렇게 사용하게 됩니다.

 

우리는 다 적신(赤身)으로 세상에 나왔고 가져 갈 수 있는 것 또한 아무 것도 없으니 태어나면서부터 죽기까지 우리 손에 쥐어지는 것은 모두가 잠시 빌려 쓰는것들뿐일 수밖에 없습니다. 또 빌려 쓰는 것이니까 어디에다가 쌓아놓을 일도 없고 그 적당한 용도를 찾아 부지런히 사용하여야 합니다. 이 세상에 쌓아놓을-’ 용도로 만들어 진 것은 아무 것도 없지만 사람들은 쌓아놓기를 좋아하고 그것 자랑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며 어깨에 힘을 주고 목이 곧아집니다. 창고를 연이어 짓고 바라보며 뿌듯한 미소 짓는 일상이라면 허리 또한 숙일 일이 없어지고 따라서 그 커다란 창고들로 부터는 작은 땅콩 한 개도 새어나오지 않습니다...

 

야고보서는 믿음의 행위 곧 성도의 믿는 바대로의 실천을 강조합니다. 입술로 낮아지는 사람이 아니라 고개 숙이고 허리 굽혀 낮아지는 사람이 되어야 함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기꺼이 나의 땅콩들을 쏟아내어 누군가의 땅콩이 되게 만드는 사람이 곧 믿음의 성도임을 힘주어 주창하는 것이지요. 믿음의 실천이고 사랑의 실천이며 은혜의 나눔이고 기쁨의 공유인데 찬양이 되기도 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처음에는 어린 아이와 같이 나의 것을 나의 것으로만 가지게 되지만 이제 예수그리스도의 은혜 가운데 믿음의 성숙을 더하게 된 사람은 나의 것주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알게 되고 주님의 명령하심과 지시하심에 따라 그것들은 가장 적당한 용처를 찾고 거기에 쓰임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성도라면- 내 주머니는 꼭 막아놓고서 가진 것이 없는 이를 향하여 먹어라, 입어라.”고 하지 말라는 말씀을 필히 떠올려야 합니다.

 

세상은 더 갖고자-’ 하는 다툼과 싸움으로 가득합니다. 이것은 끝없는 싸움이고 앞으로도 그러하기를 세상 끝 날까지 계속할 것입니다. 그러한 속에서 내 주머니 속의 땅콩 몇 개를 내어 놓는 다고 하는 것은 아무도 모를 것 같고 누구에게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고 무슨 영향도 끼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바라보시고 땅콩 한 개를 계기로 하여 회복되고 살아나는 심령이 있는 것이며 그렇게 한 영혼에게 끼쳐지는 믿음 실천의 영향은 한 생명을 온 천하 보다 더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상급을 예비하여 놓은 일이라고 말이지요.

 

... 그렇게 땅에 떨어진 열 개 정도의 땅콩들을 바라봅니다. 상기한 가르침과 깨달음을 얻은 것으로 충분하니- 이제는 다시 주머니에 주워 넣을까.. 마른 땅이라서 더러워지지도 않았고.. 아냐.. 그냥 놔두는 것이 좋겠어.. 지나가는 들쥐나 다람쥐 혹은 지금도 저 나무 위에 앉아서 깍깍 거리고 있는 까치나 아니면 길 건너 전깃줄에 줄줄이 앉아 있는 까마귀들.. 또는 어쩌다 이 곳을 지나게 될 고라니가 주워 먹을 수도 있겠지.. 땅콩 몇 개를 횡재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지금껏 추운 겨울을 어렵사리 지내온 녀석들에게 잠시의 즐거움이 될 수도 있을 터이니까.. 허허.

 

그런데... 나는 좀 더 큰 것도 그렇게 내 주머니에서 쏟아져 나오게 할 수 있을까.. ‘땅콩 몇 개의 가벼움이라는 현재이기에 나는 아주 잠시 잠깐 넉넉한 사람의 모양처럼 되어 꽤 그럴 듯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작은 실천을 훌쩍 넘어서는 큰 실천에도 나는 내 식물을 물 위에 던지는-’ 모양을 견지할 수 있을까... ‘여러 날 후에 다시 찾을 수 있다는-’ 말씀에 기쁨과 즐거움의 기초를 인내함으로 놓을 수 있을까... 주여 도우시옵소서...

 

아무튼, 그 땅콩들은 자신들의 값을 충분히 하고 제 곁을 떠났습니다.

 

산골어부 김홍우 목사 2017-3-27

댓글 (0)

댓글 입력
등 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조회
157 질을 하지 맙시다 산골어부 2017.10.12 0 20
156 약수터의 바가지 산골어부 2017.10.11 0 21
155 곤경 속에서의 재발견 산골어부 2017.10.07 0 17
154 귀신들의 옳은 소리 산골어부 2017.08.14 0 23
153 100점의 모습으로 산골어부 2017.08.14 0 24
152 땅속... 산골어부 2017.08.08 0 31
151 죽음과 부활의 맛보기체험으로 산골어부 2017.08.07 0 32
150 흰둥이의 자유만끽 산골어부 2017.08.03 0 48
149 성도의 서열의식 산골어부 2017.08.01 0 42
148 고로쇠 물을 마시며 산골어부 2017.07.23 0 35
147 변화하였습니까? 산골어부 2017.07.21 0 35
146 송촌장로교회의 정직운동 산골어부 2017.07.20 0 16
145 유토피아의 꿈 산골어부 2017.07.19 0 19
144 예배당과 화장실 산골어부 2017.07.18 0 20
143 다윗의 물맷돌 다섯 개 산골어부 2017.07.14 0 96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