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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 해설
조회 758 추천 0 비추천 0 2017-05-26 22:33 작성자 : 진리트루
주기도문 해설!


1. 기도의 뜻


1) 빌다

히브리어로 " 아탈 "이라고 합니다

(출 8:30)모세가 바로를 떠나 나와서 여호와께 기도하니

이 말은 아람 방언에 " 희생을 드리기 위해 살육한다 "는 어근에서 출발되어진 말이라고 합니다.

구약 시대에 속죄제를 드릴 때 소나 양을 잡아 불로 태워서 그 향기를 여호와께 드리고 마음의 죄를 회개한 것처럼 신약 시대의 우리의 기도는 제물을 태우듯 간절한 기도를 드릴 때 이는 영적 향기가 되는 것입니다

(레 1:9)그 내장과 정갱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단 위에 불살라 번제를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레 5:8)제사장에게로 가져 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 속죄 제물을 먼저 드리되 그 머리를 목에서 비틀어 끊고 몸은 아주 쪼개지 말며


2) 속삭인다

(사 26:16)여호와여 백성이 환난 중에 주를 앙모하였사오며 주의 징벌이 그들에게 임할 때에 그들이 간절히 주께 기도하였나이다

" 간절히 기도했다 "는 말은 귀속말로 하다, 속삭인다는 등의 뜻을 지녔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중심으로 기도한다는 의미입니다.


3) 간청하다, 구하다

걸인이 손을 내밀어 무엇을 구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부족한 것이 있으므로 얻기를 구하는 태도입니다. 결코 부요하다고 생각하는 중에는 기도할 수 없습니다. 눅18:에 과부의 요청과 같은 것입니다.

 

4) 대화한다

간구함은 말로 합니다. 곧 영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영적 대화입니다.

(딤전 4:5)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 짐이니라

헬라어로 " 엔륙시스 " 라는 말은 대화한다, 회견한다, 동행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히브리어로는 다발인데 이는 말한다는 뜻입니다.

(수 10:21)모든 백성이 평안히 막게다 진으로 돌아와 여호수아에게 이르렀으나 혀를 놀려 이스라엘 자손을 대적하는 자가 없었더라


5) 교제나 친교

태초에(창3:) 하나님께 범죄한 인간은 영적 교제를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와 화목케 해 주셨습니다. 믿음으로 이제 하나님과 교제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제 관계를 갖는 것입니다.

(요 15:14-15)너희가 나의 명하는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롬 8:15)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2. 기도의 3대 요소


1) 성부 하나님께

엄격히 말해서 기도를 들어 응답하실 자는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니까, " 예수님... "보다 " 하나님... "으로 호칭하는 것이 옳습니다.

(요 14:13)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요 16:23)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2)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요 16:24)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3) 성령으로

말로써나 묵상으로써 기도하는데, 성령의 도움으로 기도할 때 비로소 기도가 온전해 집니다. 하나님이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롬 8:26-27)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3. 기도의 표현


1) 말

2) 묵상(삼1:13)

3) 방언(고전1414)

4) 찬송 (엡5:19)


4. 기도의 자세


1)서서(대상23:30.요17:1) 2)눈을 뜨고(요17:10) 3)머리 두 다리 사이에 넣고(왕상18:42) 4)꾸부려서(왕상18:42,단6:10)


* 꾸부려서 기도한 사람들 *

(1) 솔로몬

(대하 6:13)솔로몬이 이왕에 놋으로 대를 만들었으니 장이 다섯 규빗이요 광이 다섯 규빗이요 고가 세 규빗이라 뜰 가운데 두었더니 저가 그 위에 서서 이스라엘의 회중 앞에서 무릎을 끓고 하늘을 향하여 손을 펴고

(왕상 8:44)주의 백성이 그 적국으로 더불어 싸우고자 하여 주의 보내신 길로 나갈 때에 저희가 주의 빼신 성과 내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전 있는 편을 향하여 여호와께 기도하거든

(2) 에스라

(스 9:5)저녁 제사를 드릴 때에 내가 근심 중에 일어나서 속옷과 겉옷을 찢은대로 무릎을 꿇고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손을 들고

(3) 엘리야

(왕상 18:42)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4) 다니엘

(단 6:10)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5) 베드로

(행 9:40)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어 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가로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6) 스데반

(행 7:60)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7) 바울

(행 20:36)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저희 모든 사람과 함께 기도하니

(8) 예수님

(눅 22:41)저희를 떠나 돌 던질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5) 앉아서 기도

 

6) 누워서

(아 5:2)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 열어 다고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하였다 하는구나


7) 낯을 벽으로 향해

(왕하 20:2)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8) 얼굴을 땅에 대고

(마 26:39)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9) 두 손을 들어서

(출 17:12)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로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하나는 이편에서 하나는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10) 꾸부려 두손들어

(대하 6:13)솔로몬이 이왕에 놋으로 대를 만들었으니 장이 다섯 규빗이요 광이 다섯 규빗이요 고가 세 규빗이라 뜰 가운데 두었더니 저가 그 위에 서서 이스라엘의 회중 앞에서 무릎을 끓고 하늘을 향하여 손을 펴고


5. 기도 장소와 시간


1) 성전

제자들은 습관적으로 하루 3번씩 기도한 것 같습니다. 기도도 습관적 생활이 되도록 정한 시간에 기도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무시로 기도해야 하나 우리는 나태할 수 있기 때문에 의지를 규칙에 맞추는 것이 구속되는 것같으나 참된 자유를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행 3:1)제 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2) 방

물론 정신적 은밀을 뜻하나 고요히 기도할 수 있는 골방이 있으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왕하 20:2)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3) 골방에서

(마 6:6)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4) 빈들

(마 14:23)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5) 산

산은 고요하고 성경상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로 등장합니다.

(눅 22:39)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좇았더니


6) 길가

소경 거지가 길가에서 예수께 부르짖는 것은 단순한 고함이 아니라 기도하는 심정으로 부르짖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곳에서도 이렇게 간구하면 주께서는 응답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막 10:46-47)저희가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았다가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7) 고기 뱃속

요나는 고기 뱃속에 들어갔지만 그곳에서도 하나님께 아뢰어 구원을 얻었습니다. 호랑이에게 물려 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는 말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간구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욘 2:1)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8) 굴 속( 다니엘 )

 

9) 한적한 곳

도시는 소음이 많아 하나님을 고요히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예수께서는 간절하고 진솔한 기도를 올리기 위해 한적한 곳을 찾아 기도하셨습니다.

(눅 5:16)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10) 시간

기도는 주야간 공백의 시간은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시간에도 활동하는 시간이면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고 기도의 효과로 승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눅 18:1)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눅 21:36)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롬 12:12)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살전 5:17)쉬지 말고 기도하라

(엡 6:18)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단 6:10)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대로 하루 세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시 55:17)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

(눅 22:39)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좇았더니


11) 기도의 환경( 상황 )

우리 인간은 환경의 지배를 잘 받습니다. 하나님을 평온할 때는 잘 찾던 사람도 위급하고 난리가 나면 엉뚱한 소리를 합니다. 하나님 보다 인간의 힘과 세력을 믿고 따라 가려는 습성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신앙이 있다는 자에게도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기도는 바로 이럴 때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무슨 일에든지 기도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능력의 범위에서도 더욱 잘 되도록 기도하고 잘 할 수 없거나 불가능하게 보이는 상황에서도 간구 해야 합니다.

(빌 4:6)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6. 기도의 종류


1) 개인 2) 중보


중보기도의 예

(창 19:29)하나님이 들의 성들을 멸하실 때 곧 롯의 거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

(출 32:32)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주옵소서

(욥 1:5)그 잔치 날이 지나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케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사가 항상 이러하였더라

(골 4:3)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것을 인하여 매임을 당하였노라

(엡 6:18)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중보기도를 할 수 있으려면


자신은 구원받고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희생적인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자신보다 그를 더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3) 공중 기도

예배 및 단체를 위한 기도로서 먼저 기도를 할 사람은,

자신이 회개가 충분히 되어 있어야 합니다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공적임을 의식할 것입니다

모든 자들의 마음과 합하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교훈을 하거나 판단하거나 지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4) 특별 기도


(1) 새벽 기도

새벽은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나 홍해를 건너 구원을 얻은 때며, 새 날의 시작으로 정신도 새롭고 공기도 맑고 고요해서 하루를 시작하는데 있어서 기도로 시작하기 위해 매우 적절한 시작 인줄 압니다. 새벽 기도를 비판하는 자는 새벽 기도를 하지 못합니다. 아니 새벽이 일어나지도 못합니다.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새벽마다 일어나 기도하면 그것이 습관이 되어 기도하지 않고는 하루를 살아 갈 수가 없어서 아침에라도 기도하고 일과를 시작하게 됩니다.

(시 46:5)하나님이 그 성중에 거하시매 성이 요동치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출 14:27)모세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어 밀매 새벽에 미쳐 바다의 그 세력이 회복된지라 애굽 사람들이 물을 거스려 도망하나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을 바다 가운데 엎으시니

(시 5:3)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마 28:1)안식일이 다하여 가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

(시 119:147)내가 새벽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2) 금식 기도

(마 6:16-18)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 저희는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외식하지 말라

슬픈 기색을 하지 말라

(사 58:5)이것이 어찌 나의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그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 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얼굴을 흉하게 하지 말라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 평소에 바르지 않는 자는 바르지 말고 )

(삼하 12:20)다윗이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고 궁으로 돌아와서 명하여 음식을 그 앞에 베 풀게 하고 먹은지라

사람이 보이지 않는 곳

은밀히(잘 알려지지 않을 곳에서 소문 없이)

 

금식하는 이유

금식은 강요에 의해서나 모험도 아니고 주님께 참으로 헌신적 기도를 할 이유가 있을 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험될 수 있습니다. 자랑하면 하지 않는 것보다 못합니다. 금식을 성경대로 잘 하였으면 은총을 받을 것입니다.


회개

뜨거운 회개를 하기 위해 금식 기도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삼하 12:20)다윗이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고 궁으로 돌아와서 명하여 음식을 그 앞에 베풀게 하고 먹은지라

준비(마4:1-)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시기 전에 40일의 금식 기도를 가지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우리가 얼마나 기도하여야 할 것을 예표하신 것입니다. 무슨 일에든지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시작하여야 함을 뜻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기도의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때

모세 - 시내산에서 40일 금식

바울이 3일간 먹지 못함


금식의 결과


(사 58:6-12)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주며 유리 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 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을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발하여 네 어두움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수보하는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결박에서 풀어짐 죄의 결박에서 해방

모든 멍에의 줄을 끊으며 사랑이 넘치고

압제에서 자유를 응답을 받는다

주린 자에게 식물을 주며

빈민을 내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입히며

숨는 두려움이 없어지며

부르짖는 대로 응답 받게 됨


(3) 산상 기도

(마 14:23)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둘 이상이 기도함

(눅 22:41)저희를 떠나 돌 던질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 산 *

(1) 하늘과 가깝다

(2) 산 아래가 작게 보인다 ( 맘의 여유 )

(3) 군중이 있다 ( 인본주의가 없는 사색이 생긴다 )

에덴동산과 아담 ( 창 2:-3: )

아라랏 산과 노아

(창 8:4)칠월 곧 그 달 십칠일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으며

아브라함과 모리아산

(창 22:2)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 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호렙산과 모세

(출 3:1)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더니 그 무리를 광야 서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시내산과 모세

(출 19:20)여호와께서 시내산 곧 그 산꼭대기에 강림하시고 그리로 모세를 부 르시니 모세가 올라 가매

엘리야와 갈멜산

(왕상 18:19)그런즉 보내어 온 이스라엘과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 바알의 선지 자 사백 오십인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인을 갈멜산으로 모아 내게로 나오게 하소서

예수님과 헐몬산 ( 변화산 )(마17:)

 

(4) 철야 기도( 밤을 새우는 기도 )

밤에 시간이 많은 관계도 있겠지만 고요하고 은밀한 시간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잠을 자지 않고 하나님께 간구할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의 목표가 뚜렷하지 않으면 밤새우며 기도할 수는 없습니다.

(눅 6:12-13)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맟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 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주기도문 해설


(마 6:9-13)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문은 모든 기도의 표본이 됩니다. 주기도문을 주님의 기도와 구별하여야 합니다. 주님의 기도는 요한복음 17장에 있습니다.

교리의 표본은 사도신경이고 윤리의 지침은 십계명이며 우리의 기도의 표본은 주기도문입니다. 주님은 본문을 통하여 기도의 내용에 대한 원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기도를 배운다는 것이 이상스럽게 들리지만 기도도 배워야 함을 말씀하셨습니다.

(눅 11:1)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주기도문을 요약하면 꼭 십계명의 순서와 같은 내용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십계명은 1-4계명이 먼저 하나님을 위한 것이며, 다음 5-10번째의 인간을 향한 윤리적 계명이 그것입니다.

 

[ 주기도문 요약 ]


서론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본론 : 1. 하나님을 위한 간구


1)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2) 나라이 임하옵시며

3)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2. 우리를 위한 간구


1)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 옵시고

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결론 :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 아멘 .


1.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1) 하늘에 계신

이 하늘은 공간적 하늘(天)이 아니라 영적 하늘을 말합니다. 하늘은 높고 거룩하며 영광스러움을 상징합니다. 영어로는 sky가 아니라 heaven입니다.

(사 6:1-3)웃시야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전 5:2)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

(딤전 6:16)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지어다 아멘

여기 " 계신"이란 단어는 현재 진행형으로 하나님의 생존적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2) 우리 아버지여

우리라는 말은 공동체 의식과 하나님의 우주적 주(主)되심을 의미합니다.

(롬 3:29)하나님은 홀로 유대인의 하나님 뿐이시뇨 또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뇨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그리스도를 불신하는 상태의 영혼은 마귀가 지배합니다. 그것이 사회적인 죄를 동반하는 것이 아니라도 그러합니다. 사람이 보기에 선한 일까지도 마귀의 영역에 속합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부인하려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단정합니다.

(요 8:44)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 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 아버지" 라는 말에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1)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의 관계는 친 부자(父子) 관계입니다

(눅 2:48-50)그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 모친은 가로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양친이 그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2) 우리 성도들로서는 양자(養子)가 되어 부르는 칭호입니다

(롬 8:15)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3) 하나님은 철학의 대상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살아 계신 아버지이 십니다

(고후 6:18)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갈 4:4-6)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요 16:23-26)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이것을 비사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 비사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 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

(롬 8:39)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마 7:11)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롬 8:17)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요 1: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일 3:2)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1. 하나님을 위한 간구


1)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기도를 한다는 것은 개인의 요구를 신께 아뢰는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사실 성경에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기도의 시작으로 나타납니다. 물론 문제를 해결 받기 위한 개인 기도를 하겠지만 기도의 출발은 하나님을 감사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을 위한 감사와 찬양으로서의 기도인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도 성경적으로 알고 거룩하게 불러야 합니다.

(레 22:32)너희는 나의 성호를 욕되게 말라 나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거룩하게 함을 받을 것이니라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요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경망스럽게 부릅니다.

말세에 거짓 선지자들은 주의 이름을 난발하면서 유혹할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마 7:22)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 아멘 " 이란 말도 주님의 다른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계 3:14)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에서 거룩은 히브리어로 코데쉬 ( )로 끊다, 자르다라는 뜻입니다. 세속에 구별되었다는 것입니다. 성소,성민,성시,성산,성경,성일,성령,성성(城),성직,성찬,성례,성미,성의,성가,성막,성전,성회,성역)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신학적으로 정리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면 이방인들이 비슷한 단어를 사용하면서 성경의 하나님으로 오해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칭호에 대한 이해( 야훼)


1. 성경에서 표현된 명칭

(1) 구약 : (가) 엘, 엘로힘 : 주(主)되심, 권능자, 높으신 분. (나) 아도나이 : 재판자, 통치자. (다) 샤다이, 엘샤다이 : 축복, 위안자. (라) 여호와 : 자존자. (마) 만군의여호와 : 만왕의 왕

(2)신약 : (가) 데오스 (하나님) : 지극히 높으신 분. (나) 큐리오스(主) : 지배 자. (다) 파테르 : 아버지.

 

2. 언어학적 고찰, 종교적 유래

(1) 고 양주동 박사 : 천의 원언은 "한  "이었는데 음형의 변화에 따라 "하 늘" 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2) 천도교 박세명씨 : 하나님, 하느님, 하늘은 같음

(3) 고 홍의석 교수 : 하늘, 하나님은 하늘님에서 온 개념

(4) 우랄알타이어에 속한 " 한 "은 간, 찬, 한 등의 접미어가 관직 명칭에 사 용( 법흥왕 7년,17관급 중 제 1급 )

(5) 몽고족 왕의 이름 "징기스칸, 이루칸국, 킵차칸국, 차카타이칸국, 오코타이 칸국.

(6) 옥스포드 사전: " 한 " = 위대한 통치자, 왕, 왕자, 주(主)

(7) 고대 동부 아시아에 사는 존귀한 자에게 붙임


1) 단군신화

환인의 서자 환웅이 천부인 인을 거느리고 " 태백산 " 산당수(개울가)에서 신시(神市)를 베풀었는데 웅녀와의 사이에서 단군(박달나무)이 출생, 이를 하나님이라 하였다고 했습니다(Halbert).

이 학설을 감리교 신학대학 윤성범 교수는 인정하고 유교나 불교에서 다같이 하나님의 존재 인정 .샤머니즘의 환인, 환웅, 환금(단군)은 성부, 성자, 성령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최남선씨는 단군은 무당이라고 했습니다. " 단 " = 박달나무, 단군=무당, " 태백산 " = 클 태(太),  산(白山) = " 큰  산 ".

백두산, 소백산, 백월산, 백운산, 백산 등의 높은 산에는 신이 있다 하여 신산(神山)으로 이해, 단군의 아버지가 환웅인즉 환국(桓國)이 되었다고 합니다.


2) 샤머니즘 ( Samanism ) : 세상에서의 신명(神名)

퉁구스족 언어 샤먼에서 유래, 뜻은 흥분한다 .

모든 물체에는 정령(Spirit)과 혼백(souls)들로 차 있다고 함. 샤머니즘에서는 사제직, 의좌직, 예언직을 함. 그 중재자가 무당인데 귀신과 교통하고 계시함.


여러 최고 신들의 유형

(가) 바벨론 : 이스라, 말둑 (나) 가나안 : 바알 (다) 힌두교 : 다야우스, 피라 (라) 그리스 : 제우스 (마) 로마 : 쥬피터(제우스+피터) (바) 아랍 : 알라


샤머니즘의 우주관

상계 - 선한 영들

중계 - 인간, 생물

하계 - 악령의 처소


3. 이방인들의 신명(神名)과 인식의 길


(1) 일본 : 야호요르즈노가미( 8백만 神 )에서 " 가미사마 "

(2) 중국 : 상제 - 3황 5제중 최고 중 최고 신

(3) 영어 : God( 하나님 ) god(s)( 잡신들, 귀신들 )

(4) 한국 : 1939년 9월 8일 제 28회 평양 신학교 총회 때 "하나님"으로 규정

(5) 윤성범 교수는 히브리어 발음 상, 아브-아버지, 애미-어머니가 비슷하다고 한국은 본래 하나님을 믿었다고 주장.


참 하나님( 성경적 하나님 )


1) 성경을 통하여

(롬 10:14)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요 5:39)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요 17:3)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 6:69)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 줄 믿고 알았삽나이다


2) 성령으로

(고전 2:11)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고전 12:3)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3) 행함으로

(시 119:71)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요 7:17)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2) 나라이 임하옵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고 그 나라를 들어가고자 하는 것이 기독교의 근본 목적입니다.

(요 6:40)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천국( 天國 하늘 나라 )과 신국( 神國 하나님의 나라 )은 같은 말인데 유대인들은 하나님이라는 단어 쓰기가 정신적으로 어려워 마태복음서(유대인을 위한 복음서)에는 하나님 나라라는 말은 피하였습니다(하늘 나라). 다만 이 말을 직역하여 풀이하면 천국은 장소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신국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영역(領域, 靈域)을 말합니다.

천국은 우리의 목표이자 인생의 감동입니다. 이 감동 때문에 죽음을 각오하고라도 삶에 충실 할 수 있고 내세의 확신 때문에 모든 것을 참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천국의 소망을 모든 기도의 중심이요 시작이요 원인이 되어야 합니다. 천국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이렇습니다.


천국(天國)


기독교에 가장 큰 소망이자 인간에게 알려지지 못한 세계입니다. 이는 약간의 민간 신앙이나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세계입니다. 불교의 극락과는 다른 개념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우선 기독교의 천국은 장소성이 있으며 교주의 거처 지로 소개되고 있다는 것이 특이합니다. 게다가 신자들의 영원한 삶의 장소라 함에는 여간 경이롭지가 않은 사상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4대 중심으로 보는 회개의 역할과 기도의 특권 그리고 증거 생활에 이어 천국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는 성경이 강조한 빈도 수가 그러합니다. 천국은 부활에 대한 가르침의 결과이자 모든 신자의 활동이 보장되는 현장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의 생활은 지상에서 그 완전함을 나타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약간의 맛을 볼 수는 있을지 모릅니다. 신자의 생활이 유쾌하고 소망 가운데서 즐거워 할 때 우리는 천국 같다고 이해할 뿐입니다.

기독 신앙자가 이 천국에 대한 관심의 정도에 따라 신앙의 정도를 판단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내세의 천국에 대한 성경적인 믿음이 없이는 세상의 모든 일에 대한 신앙적 판단으로 처리해 나갈 수가 없습니다.

왜냐면 천국에서 이 세상의 모든 삶에 대한 판단을 받아 그 영광대로 상을 받아 천국에서 영원히 누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상 신자의 생활은 천국의 영생에 대처하는 삶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천국에 대한 구체적인 모양과 삶의 방식에 관하여는 성경에 상세히 나와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어떤 종교의 내세관보다 명확합니다.


기독교의 강조 점이 천국이 아니고 삶의 과정에 관설하여 집중한다면 세인들의 철학에는 호응을 많이 받겠지만 성경적으로는 미약합니다. 성경에 예수 그리스도의 목표가 그러하고 신약이 구약과 다른 점이 바로 내세에 관하여 궁극적 목표를 두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신앙은 어쩌면 다른 이방인들이 기대하는 기복적 신앙 사상에는 상통한 점이 많은 것을 봅니다. 구약 성경에는 천국이라는 낱말이 없듯이 정통 유대인은 내세의 천국을 믿지 않습니다.


구약의 완성인 예수 그리스도의 사상은 천국으로 종결지으려 하는 성경 사상을 우리는 역력히 알 수 있습니다. 억지로 사람의 요구에 충족키 위한 신학을 만들어 상황론적 신학, 즉 상황윤리 신학이라는 것 등을 발표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의 근본 목적을 흐리게 하고 종교적으로만 가능케 하는 신앙자로 만들게 될 것입니다. 기독교는 종교 그 이상의 무엇이기에 우리는 종교적 색채로 잘 소개 해 주는 세속을 위한 가르침에 속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를 성경에는 초등 학문이라 했으며 예수의 가르침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천국은 보통 사람이라면 상상의 세계로 알 것뿐입니다. 그러나 엄연히 사람이 가서 살 곳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곳에 가셨습니다. 우리가 그의 재림 시에 부활되어 그곳에 가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만약 이것을 믿지 않는다면 신앙의 전면적 활동과 사상이 헛되고 말 것이라 하며 중심이 되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구태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 난 자들의 천국에 대한 간증으로 그 세계를 이해하려 하는 자들도 있겠지만 자칫하면 오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경험이 다르고 설명 또한 규칙적이지 못한 것을 듣게 됩니다. 성경에서 천국을 이해 할 수 있도록 한 여러 증거가 있습니다. 다만 난해하기 때문에 학문적 이해와 아울러 천국형 인격과 감동을 힘입어 깨닫는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에는 천국에 대하여 추상적이지 않고 보다 소상히 그 모습을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자적 해석만으로는 완전한 이해가 불가능할 것입니다. 다만 확실히 존재한다는 것과 모양을 말하려는 자는 성경에 일치할 것을 우리는 주장할 뿐입니다. 천국은 육감과 이성적(理性的)지식으로 이해될 수 없는 성령의 감각 지대이기 때문에 지상의 언어로 표현하기에는 한계를 지닙니다.


영광스럽다든가 환하다는 말들은 실로 이해하는 자에게 그 실체를 느끼게 맡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어떤 지나간 사건의 감동적인 실록이나 과학적 물체나 수학적 이치를 표현하는 것과 감정을 이야기하는 것, 이를테면 시적 감각을 형용 할 때는 듣는 이로 하여금 감정까지 필요로 하는 언어의 전달이 있는 것입니다. 천국이란 단어는 세상의 지형을 말하듯 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존재하는 곳이며 의식하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현세에서 완전한 증명을 할 수도 바랄 수도 없다는 결론입니다. 우선적으로 부활의 신체적 조건과 감각에 대해 생각하게 되면 천국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지상에서 부활하신 몸으로 사람들과 땅에서 40일을 생존하시고 음식을 드신 것으로 부활의 몸은 영이 아니라 몸이라는 것을 증거 하셨습니다(눅24:).


그런 몸으로 부활하게 될 것이라고 했기에 우리는 인간으로서 바랄 수 있는 최대의 선물로 보는 것입니다. 부활, 그것은 모든 신앙의 조건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입니다. 현대 신학자 중에는 예수의 역사적 부활이나 우리들의 부활을 불신하는 자도 있습니다(불트만). 또는 부활이 강조 될 것이 아니라고 하는 식의 신학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강조하는 것은 시대를 초월하여 절대적으로 증거 되야 하는 진리는 천국 그것입니다.


성경이 시대적 산물 같은 철학 도서나 이스라엘의 국지적 종교의 이상이라면 우리는 분명히 역사를 바로 이해 할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진리이며 진리는 역사를 관통하는 완전의 저력을 갖춘 것입니다. 진리는 시대 역사에 호응하기 위해 자신을 개혁하지 않습니다. 단지 인간이 개혁해야 할 것이다.


천국은 어린이들에게 들려주는 동화의 한 장르가 아니라 어른 신자에게 더욱 강조되어야 하는 기독 신앙의 궁극적 목표입니다. 설교에 있어 전도에 있어 부활과 천국이 없다면 그것은 성경 사상자들의 행위가 아닙니다. 성경은 종교의 서적이 아니라 내세에 가야 할 인간의 역사에 대한 안내서입니다. 이것이 예언이고 희망입니다. 짤막한 이생의 삶을 위한 숱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허무를 솔로몬처럼 외치고 있습니다. 사회의 비리와 정치가들의 죄 그리고 여러 가지로 이데올로기에 대한 철학적 비판과 개혁을 해 왔지만 아직도 우리는 문제 속에서 거듭나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을 느낍니다.


일생을 연구하고 개혁하고 또 변화를 추구하여도 우리는 스스로 이생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갈급한 심령으로 생을 마치게 됩니다. 그러나 천국이라는 소망 가운데서 살다가 간 자들의 유언과 그들의 실록에는 만족과 기쁨이 내재했고 듣는 이로 하여금 감동케 했습니다.

천국은 교회가 가진 가장 큰 소망의 노래이며 전도의 최종 목표입니다. 이것을 빼놓고는 아무런 활동의 근거가 없는 것입니다. 단지 이 세상에서 아름다운 삶의 한 모습을 위해 기독 신앙이 존재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천국이 있기 때문에 믿고 목회하고 전도하며 순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경에서 천국에 대해 많은 비유와 교훈으로 소개하셨습니다. 그리고 복음 사역의 목표가 곧 천국의 소개임을 밝히셨습니다.


천국의 조직


왕은 하나님( 예수님 )

(계 1:5)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국민은 성도들

(빌 3:20)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국토는 신천신지

(벧후 3:13)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국법은 성경

(요 1:1)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 1:1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국가( 國歌 )는 찬송

(계 5:9)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계 8:3-4)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나라의 전통은 영원함

(단 7:14)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시 145:14)여호와께서는 모든 넘어지는 자를 붙드시며 비굴한 자를 일으키시는도다


천국의 비유(씨 뿌리는 비유)


씨를 뿌림 ( 천국의 선포 ,예수님이 오심, 복음 전도 )

씨가 자람 ( 믿음의 성장, 교회의 부흥, 선교의 활동 영역이 넓혀져 감 )

씨가 열매를 맺음( 주의 재림으로 완성 )

(고전 3:6-7)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 뿐이니라

(엡 4:13)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

(롬 8:30)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엡 5:26-27)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3)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나님의 통치를 신뢰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섭리를 찬양하는 것이며 믿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모든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진행됨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전 11:5)바람의 길이 어떠함과 아이 밴 자의 태에서 뼈가 어떻게 자라는 것을 네가 알지 못함같이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

(롬 11:33)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막 1:15)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행 2:23)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대로 내어 준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마 26:54)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 하시더라

(눅 22:42)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고전 15:3)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벧후 3:7)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2. 우리를 위한 간구


1)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매일의 양식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는 신앙입니다. 양식은 땅에서 구하는 것이고 땅은 하나님의 것이니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시인하지 않는 것이 사람의 정신입니다. 남의 것을 빌려서 사용한다면 그것으로 자기 것인 양 자랑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것을 우리가 얻어 사용하므로 자랑할 것이 없다 하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으로부터 일용할 양식이 주어진다는 것을 믿는 것이 옳습니다. 인간은 노력해야 하고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얻으며 살지만 그 모든 것이 근원적으로는 하나님으로부터 오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정신은 부족합니다.


(출 16:17-20)이스라엘 자손이 그 같이 하였더니 그 거둔 것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나 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기 식량대로 거두었더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아무든지 아침까지 그것을 남겨 두지 말라 하였으나 그들이 모세의 말을 청종치 아니하고 더러는 아침까지 두었더니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난지라 모세가 그들에게 노하니라

(출 16:26-27)육일 동안은 너희가 그것을 거두되 제 칠일은 안식일인즉 그날에는 없으리라 하였으나 제 칠일에 백성 중 더러가 거두러 나갔다가 얻지 못하니라

(출 16:35)이스라엘 자손이 사람 사는 땅에 이르기까지 사십년 동안 만나를 먹되 곧 가나안 지경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만나를 먹었더라

영육간 양식을 하나님이 갖고 계십니다.

(학 2:8)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 간구하는 자에게 이 양식들을 주십니다

(마 21:22)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준 것같이

죄에는 원죄(原罪)와 도덕적인 본죄( 본죄, 本罪 )가 있습니다

원죄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 주심으로 속죄되었으나(믿으면) 자범죄(본죄)는 형제를 용서함으로 얻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물론 하나님께 사죄를 구할 뿐 아니라 형제에게도 사죄를 구할 수 있어야 하고 형제의 죄를 용서할 수 있어야 하나님으로부터 사함 받을 수 있다 하셨습니다.

(마 6:5)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마 18:35)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마 5:23-24)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마 6:15)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원죄 용서 본죄 용서


* 마 18:21-35의 빚진 자의 비유 *

금 일만 달란트(6000 데나리온 : 16,500,000 달러)-용서받은 우리의 죄

백 데나리온 ( 1/600,000의 차이 ) - 용서해야 할 타인들의 죄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회개의 3대 요소


지적 인식

죄로 규정하는 것은 관점 따라 다를 수도 있습니다. 성경에서 죄라 규정하면 죄로 시인 할 수 있어야 회개와 구원이 가능해 집니다.

(롬 7:7)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죄를 죄로 여길 수 있는 인식은 구원을 얻는데 가장 귀한 깨달음입니다. 죄를 죄로 여기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회개의 중요성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 1:10)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훼방하는도다 또 저희는 이성 없는 짐승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


정적 아픔

죄를 인정하나 그에 대한 정서적 동요가 없으면 회개할 수가 없습니다. 죄를 시인할 뿐 아니라 그 죄 때문에 가슴이 아파야 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바른 정서에서 울어 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세의 사람은 죄를 거듭하여 심령이 둔해져서 애통하지 않을 것이라 했습니다.

(딤후 3:3)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마 26:75)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시 34:18)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의지적 결단

회개의 완성 단계로서 죄를 시인하고 아파하고 그 죄에서 돌이키는 것입니다. 아무리 죄를 시인하고 슬퍼하며 통회하여도 순간뿐이지 그 죄를 거듭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인간은 죄를 다시 지을 수 있으나 회개하였다는 사람이 거의 같은 시간에 똑같은 죄를 짓는다면 그것은 회개가 아니라 단순한 인간의 감정일 따름입니다.


[ 회개의 마무리 ]

그 죄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공간적인 것도 따를 수 있습니다(죄의 장소를 떠남).

갚을 수 있는 것은 다시 갚습니다( 삭개오처럼,눅19: )

갚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하나님께 그저 회개하고 또한 어려운 문제라면 교역자와 상의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온전히 새로운 생활과 새로워 진 자로서 받을 하나님의 은총을 위한 것입니다.


[ 형제의 죄에 대한 간섭에 대하여 ]

형제라 하는 자가 내게 대하여 잘못했을 때 용서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나를 용서하신 것에 비교하여 당연히 행할 의무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형제라는 개념은 넓은 의미에서 모든 상대들입니다. 협의적 의미로는 육친의 형제가 아니라 신앙자 사이를 말합니다.

(마 18:23)이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회계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갈 6:1)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마 18:15-18)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첫째, 형제가 죄를 지으면 개인적으로 권고할 것입니다

(눅 17:4)만일 하루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둘째, 개인적 권유를 받지 않으면 두세 증인을 세워 권유할 것입니다

(마 18:16)만일 듣지 않거든 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


셋째, 그래도 안되면 교회에 말하라 하셨습니다( 공개 석상에서 )

(딤전 5:20)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람 앞에 꾸짖어 나머지 사람으로 두려워하게 하라

(딤후 2:25)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갈 6:1)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넷째, 교회의 권면도 안들으면 교회에서 추방하라 하셨습니다

(마 18:17)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히 12:7-13)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 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늘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하라


형제의 죄를 위하여 용서하고 기도해 줄 것이나 어떤 일에는 불간섭의 원칙이 있습니다.

(요일 5:16-17)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마12:31-32)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히 6:4)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회개와 반성의 차이를 잘 알고 있는지 의문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반성하는 양심적 기능이 있기 때문에 혹 이를 회개로 착각하는 수가 생길 것입니다. 이를 구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인 줄 압니다.


진정한 회개( 悔改 )


진정한 회개(悔改)가 바로 이해된다고 하는 것은 기독교의 구원과 그에 따르는 수많은 논증에 적합한 사고력을 얻게 되고 온전한 기독교인으로서 인격적 수양을 통하여 거룩히 성화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 나는 회개하였노라 "고 하는 고백의 자각과 의식을 무엇으로 인정할 것인가가 문제입니다. 단순히 사람들 앞에서 말로 고한다고 해서 그것을 성경 구절에 연결하여 확증할 수 있는 것인가? 특히 세례를 베풀어야 할 목사로서는 올바른 신학적 검토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세례를 받는 본인으로서도 성경적인 바른 이해가 요구됩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신자의 생활에 걸쳐 이 회개는 지속되고 성경적으로도 신앙생활의 기초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회개에 대한 바른 성경적 이해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진정한 회개가 없이는 진정한 기독 신앙을 전면적으로 바르게 이해하고 이행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1) 회개와 반성


우리는 회개라는 말 대신 반성(反省)이라는 말에 더 익숙해 있습니다. 이것은 종교적 영향권을 입지 않은 상태에서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 살아도 일어나는 양심의 동작으로, 언행심사(言行心事)에 대한 도덕적 가치의 재고(再考)이자 인간의 고결한 정서에 대한 애착에 비롯되는 영적 활동입니다.

물론 이 반성은 기독교의 구원이라든가 영생으로 이어지는 동기 유발로 해석될 수 없는 인간의 양심적 활동입니다. 그러나 반성으로 얻어지는 양심적 정신적 기쁨 그리고 육체적 쾌활함이나 성경적 회개를 통한 것과 큰 차이는 느낄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점에서 우리는 비기독교인에게 어떻게 다른 점을 객관적으로 학문적 정신적 공감을 얻게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경험적으로나 타인의 모양에서 느낄 수 있는 바 반성 후의 감정과 그 태도는 기독교의 회개자와 별 다를 바 없음을 봅니다. 눈물로 잘못에 대한 자각의 표현, 그후 곧바로 얻어지는 양심의 모습으로 밝은 눈빛과 목소리 그리고 가능한 타인에 대한 겸손의 말과 태도 또한 노래까지 곁들어 질 수 있는 것 등입니다. 이런 현상과 기독인의 회개 후에 따르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하나님을 부르짖기 때문에 구원이라는 큰 상이 따르는 것일까? 아니면 반성이라는 양심의 움직임과 회개의 양심이라는 다른 정서적 혹은 역사에 없는 주관적 양심의 세계가 있단 말인가? 하는 것을 정리해야 하겠습니다.


2) 진정한 회개


성경에, 죄를 회개하라는 말씀에 반성과 다르게 하라든가 어떻게 하라는 식으로 구체적 요구를 한 적은 없습니다. 그저 죄를 회개하라고만 했을 뿐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에게 있어서의 죄란 가식적 종교 행위와 명분상 이스라엘이라는 것만으로 교만한 선민(選民)의식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또한 사회와 정치적인 면에서는 부도덕과 불법 등에 대한 고발입니다. 이는 어느 사회에든 있을 수 있는 지적입니다. 그러면 기독교식의 죄는 무엇이며 회개가 반성과 어떤 차이를 가진다는 것인가?


이것이 정립되지 않으면 소위 선량한 사람의 자력(自力)구원에 대한 일반인의 이해를 명쾌하게 비판해 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기독교인이 회개한 후에 가지는 정서가 일반인의 반성 뒤에 가지는 것보다 절대적으로 다르다면 또 죄를 짓거나 거듭되는 나약한 정서에 대한 답변을 어떻게 할 것인가? 성경은 한번 죄를 회개하면 언제나 죄와 상관이 없다고 한 것은 아니고 계속 그 회개한 양심을 보유하고 강하게 하기 위해 성령의 충만을 받을 것을 권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절로 양심의 상태를 보유할 수 없는 것은 같은 처지입니다.


우리가 어떤 죄를 회개할 때 특별한 기준이 없어도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양심의 발로로 잘못하였음을 스스로 시인하게 됩니다. 불신자로서 반성할 때 죄명에 따라 부모나 어떤 사람을 대상으로 떠올릴 수 있습니다. 기독인은 예수님을 연상으로 떠올리고 동시에 사람에게도 죄의식을 갖습니다.

그러면 불신자의 반성은 예수님이 아니기 때문에 구원이 없고 기독인은 예수님을 연상했기 때문에 구원이 주어지는 것인가?

예수님이 전도하시고 제자들이 전도하고 회개를 권유할 때 이방 나라에서도 그 때 그런 시간에 이곳 저곳에서 죄를 반성하고 뉘우치는 생활들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들도 눈물을 흘리며 다시는 범죄치 아니하리라고 다짐하면서 새로운 각오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불행하게도 기독교를 전도 받지 못한 관계로 하나님께 혹은 예수님께 직고할 것을 육친의 아버지 혹은 죄지은 대상에게 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적으로 그들에게는 구원이 없고 성경의 사람들은 구원(영생)이 주어지는 엄청난 기회의 차이가 역사적으로 연속되어 오고 있었습니다.


성경의 사람들은 성령(聖靈)의 기쁨을 말할 때 일반인은 단지 착한 심정의 변화 그것을 스스로 맛볼 수 있었습니다. 인생의 양심이라는 넓고도 큰 진리같이 여기는 법 앞에서 스스로 혹은 타인으로부터 반성을 통해 죄사함에 대한 인정을 받아 왔습니다.

결국 기독인의 회개와 일반인의 반성과의 차이점은 성령이라는 명제에 대한 해석을 필요로 합니다. 이것이 아니면 회개와 반성의 차이점을 어떻게 논할 뚜렷한 상식이 없는 것이 아닌가?


성경에 나타나는 장면들은 유대인들의 회개 혹은 유대인의 하나님을 알고 있는 이방 사람들의 회개입니다. 따라서 그들에게 죄를 회개하라고 권유할 때 하나님께 죄를 회개하라는 말로 자연스레 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방인으로 다시말해서 한국 사람에게 죄를 회개하라고 할 때 하나님께 대한 회개로 이해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신은 하늘님 정도인데 성경의 인격적 신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그런 신앙은 없었으니까.

성령에 관해서도 들어보지도 그런 낱말에 대한 종교적 언어 영역도 없는 나라였기에 성령의 충만이라든가 성령의 세례 등은 반성으로 얻어진 양심의 영역에서 찾아내기 힘든 전혀 새로운 세계가 됩니다.


우리는 전도 중에 이런 생소한 언어 영역을 비기독교인에게 전하고 권유할 때 새로운 양심의 영역에 대한 신비로운 관념의 세계를 안내하게 됩니다. 그런 영역을 인식시키기 위하여 부흥회의 분위기와 기도원 등에서 혹은 평범한 예배 시간에 동원하여 지도하게 됩니다. 어떤 이는 이 종교 영역의 세계를 광신적이라든가 선택의 자유에 속한다고 단정하고 회피합니다.

감동, 깨달음의 극치, 새로운 가르침의 성경 상식 등으로 관심 하여 기독인으로까지 발전해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교인이 되었다 라고 표현하게 됩니다. 그리고 어느새 성령의 감동에 대한 지각이 있고 지식도 갖추고 나면 소위 불신자에게 성령을 운운하게 됩니다. 잘못 전달되는 경우도 있는데 성령의 은사 면에서만 강조한 나머지 기적과 능력으로 성령에 관한 지식을 대신하게 될 때 이단 내지는 불건전한 신앙자로 전락하게도 됩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성령은 인격적이고도 양심적이며 도덕적인 인간의 내면적 존재에 대한 작용이 더 중요하게 취급되어야 할 사역(事役)이있으며, 어떤 면에서는 성령을 직접으로 전하는 것보다 성령의 사람으로서 감화를 그리고 능력이면 능력으로 대처하게 될 때 새로운 세계 곧 성령의 세계라는 것을 인정하는데 자연스러운 이해력을 동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들은 성령의 작용을 알지도 깨닫지도 못한 상태이어서 명제보다 성령의 나타남에 대한 인격적 혹은 권능적 감화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런 것이 일반적 이성의 태도보다 더 강하고 더 귀할 때 관심을 유발케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본원으로 돌아가 반성과 다른 기독교의 회개란 진정한 의미에서 무엇인가? 반성의 감정을 교회라는 장소에서 표현하면 회개이고 다른 곳이면 반성 그 자체뿐인가? 죄를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든가 사후(死後)의 심판에 대한 깊은 관심이 없는 자들이 죄를 뉘우치고 새로운 심정으로 각오하며 사회에 적응하고 살아가고 있을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어떤 역사가 계셨던가? 물론 그들은 영생도 지옥도 모른 체 그냥 한 생을 마감하고 갔다. 성경상 복음의 역사(歷史)는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 섭리되고 진행되어 가고 있기 때문에 구원 여부가 인간의 고민 동기에서 시도될 수 없으므로 이런 유의 사념은 불가지론적(不可知論的)으로 결론하기에 이릅니다.


우리가 여기서 사고(思考)하고자 하는 바로는 당면한 현실적 과제로 우리가 회개하면 구원을 얻는다는 희소식 앞에 보통 반성이라는 이방인의 것과 명약관화(明若觀火)한 특이성을 어떻게 논증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경상 우선적으로 죄의 규정이 일반적 이해와는 다릅니다. 예컨대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부터가 죄가 된다. 물론 이것을 처음부터 죄로 알고 회개하였으므로 성도가 되었다는 기록은 있을 수 없습니다. 도의적 죄감은 일반인과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나머지 기독신자가 되고 난 뒤에 더 첨가된 죄라면 신앙의 불충분한 점들에 대한 회개가 일반인과 다른 영역일 것입니다.


신학자들은 예수의 제자 가룟.유다는 성령의 사람이 아니었다고 하며 때문에 회개가 불가능하였다고 진술한다. 물론 교의적(敎義的)으로 유능한 표현이지만 그 사람이 스승을 팔고 뉘우친 최소한 인간 양심에 대한 소위 반성의 감정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유다 예찬론처럼 기독 복음 사상을 의심하자는 것이 아니라 어째서 성령의 사람과 그래서 회개하여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사람과 반성으로만 그치는 일반인으로 나눌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가룟.유다는 유대인으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충분할 것이고 저 혼자 우리처럼 하늘님이나 용왕님을 부르짖던 사람은 아닐 터이니 말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성령의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회개 - 구원에 이르게 하는 반성을 못했습니다. 그런즉 일반 이방 나라에서 반성하는 사람에게야 성령의 회개란 있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죄를 회개하는 것은 새사람으로 착하고 바르게 살겠다는 각오를 갖게 하는 것입니다. 그 삶의 방식이 신앙으로 온전하겠다는 것과 신앙이 없는 자에게는 그저 선량한 사람으로 살겠다는 것으로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성경상 진정으로 회개한다는 것은 반드시 하나님께 죄를 통곡하는 것이어야 하고 따라서 구원으로 접목되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어차피 당시 상황이 유대땅 주변이자 그 신앙 영역권이기 때문입니다.


초기에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겠지만 한국에 복음이 전해질 때 신의 존재가 다르고 문화 영역도 다른 입장에서 전하고 이해되어지는 인식의 교착은 매우 황당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의 성질은 오늘처럼 그 때도 창조주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 등을 통하여 인간의 죄에 대해 호소했습니다.

어른 앞에서 혹은 일반 사람 앞에서 죄를 고백하고 잘못을 빌고 용서를 받던 지난 양심의 작용이 성경의 신 앞에서 이행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구원을 얻었다고 단정하게 됩니다. 즉 성경의 신이 전달되지 않는 곳에서는 어떠한 반성과 화목의 눈물겨운 상황이 있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아무런 가치를 지니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고 마는 인간의 삶의 한 형태로 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없는 곳에서의 반성은 인간이기에 울어나는 양심이라는 짐승과 다른 도덕성의 한 면이 작용하는 것으로 단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이기에 자연스럽게 가지는 반성이라는 고결한 감정을 성경에서 말하는 종교적이고 구원에 관여하는 차원으로 비길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아니라면 양심은 아름다울 뿐 그 이상의 종교적 효과를 논할 차원이 아니라고 판단되어집니다. 그 가치면에서 존경스러운 것은 신앙에로 곧 정진(精進)해 나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반성과 회개라는 차이는 예선과 결성의 차이요 구원의 도상에서는 그 차이를 함께 관찰 할 수 없는 입장이 되고 맙니다. 냉정하지만 사람의 반성이라는 것은 종교가 될 만큼 숭고한 것이 아니었음을 일축합니다. 만약 그것이 성경에서 일컫는 성령의 사역(事役)같았다면 인류 역사에 양심의 세계가 공헌한 바가 위대하되 종교처럼 확보되고 어느 곳에서나 찬양의 대상이 되어 여러 사상들을 제압하기까지 하는 힘이 있어야 했었습니다. 그러나 매냥 보통인들은 그 양심의 일을 아름답게는 보아 왔으나 기독 신앙 양심의 저변만큼으로 여기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기독 신앙의 회개의 결과에 대한 국면으로 집중하여 논증하고자 합니다.


3) 회개의 결과


반성의 결과와 회개의 결과는 다를 바가 없을 것이나 의지의 방향 차이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이미 일반인의 반성 즉 양심의 단순한 죄의 뉘우침은 그것으로 만족할 뿐이었으나 기독교의 회개는 단순한 양심의 교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 신 곧 하나님께로 돌이켜 행동과 삶의 방식을 바꾸는데 심혈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때로는 인식 불가능한 의문에도 불구하고 순종이라는 성경의 미덕으로 따르기까지 합니다. 어떤 이는 맹목적으로 행함으로 광신자라는 비평을 받든가 신앙의 불균형을 이루는 자도 있겠지만 대개 참된 회개를 한 직후에 나타나는 현상으로는 건전한 순종의 태도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구원에로 이르는 회개를 한 자는 성령의 즐거움에 참예하게 되고 한 동안은 그 즐거움을 찬송과 감사의 기쁨을 표현하게 됩니다. 물론 계속 될 수도 있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은 영이시므로(요4:24)감각의 영역이 소위 신령해집니다. 영감의 소견을 좇아 행동하라는 성경대로(갈5:16)성령의 인도를 받으려고 간절하고 조심합니다. 이것은 성경의 가르침대로 우선 일반적 신앙 규범을 따르며 동시에 기도하여 적응하는 이념적 의지를 키우게 됩니다. 이를 신령한 삶의 방식이라 하고 신학 용어로 성화(聖化)되어 가는 삶이라 합니다.


회개의 일반적이고 공통적인 외적 표현은 눈물을 동반합니다. 일생 일대의 큰 통곡도 있는데 보통 반성하는 양심으로는 느끼지 못하는 죄감이요 통곡입니다. 이를 혹 중생의 시기에 한다고도 하나 보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깨닫게 되면 감격과 감사가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사람마다 감성의 차이는 있으나 적어도 신에게로 귀의한다는 정도에서는 모두가 크게 회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죄를 뉘우침에 젊잖을 수 있는 의지는 없습니다.


회개의 결과를 나열하면, 첫째가 용서받음에 대한 심적(영적) 쾌유의 감사하는 눈물이며, 대체로 입술로 주님의 용서를 시인하며 감사하는 말을 하거나 사람들에게 증거 합니다. 그리고 찬송할 수도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에 따라 예배의 정상적 생활과 충실한 신자의 임무를 다하려는 겸허함이 충만합니다.

봉사적이며 협력하고 화목합니다. 존경하며 사랑하며 성령으로 축복하고 빌기를 다합니다. 기독교적 반성이라고 표현할까 이 회개는 일반인의 반성에서 나타나는 심적 변화와 의지와는 비길 수 없는 작정이 일어납니다. 기독 역사에서 그 차이점을 여러 각도에서 입증하였으니 기독교의 문화는 대단하고 일꾼들의 사적(事蹟)은 매우 영광스러웠으니 회개한 자들의 결과였습니다.


회개와 반성의 차이는 그야말로 인심적(人心的) 논란의 선상의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이 동원되는 사건적 형편이었음을 입증하여 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독교의 회개의 결과로 보건대 반성의 차원과는 전혀 다른 입장임을 밝힙니다.

따라서 기독교의 회개는 반성과 다르게 구원과 연결되는 것을 보게 되고 신에게의 귀속을 함께 인정하게 됩니다. 다만 복음 사상이 전달되지 않은 곳에서 반성하는 자의 양심이 그것으로 그친다는 것이 서운할 뿐인데 우리가 전도하는 대상자에게 그들의 반성된 감정과 구원 얻는 회개와의 연결을 어떻게 이루어 나갈 것인가가 소위 선교이며 복음 사역입니다.





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시험에는 두 가지로 선한 시험과 악한 시험이 있습니다.


(약 1:12-15)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이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1) 선한 시험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잘되게 훈련하시는 시험입니다


(신 8:3-5)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사십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느니라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신 8:11-18)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게 되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건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물을 굳은 반석에서 내셨으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므로 이런 시험을 받습니다

(히 12:7-8)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 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사랑하시므로

(히 12:6)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 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 하심이니라 하였으니

거룩케 하시기 위해

(히 12:10)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생명의 면류관을 위해

(약 1:12)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이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믿음을 주시려고

(약 1:2-3)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겸손케 하시려고

(신 8:2-5)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사십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느니라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줄 마음에 생각하고

약한 가운데서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하기 위하여

(고후 12:9)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주의 율례를 깨닫도록 하기 위해

(시 119:71)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연단하여 영적 평강을 주시기 위해

(히 12:11)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안한 열매를 맺나니

영광스럽도록 하기 위해

(밷전 1:6-7)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함이라

자신의 믿음의 정도를 알게 하시기 위해(욥1:2:)

결국 복을 주시려고

(신 8:16)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시험하실 때



불같은 시험을 하시고

(뱃전 1:7)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함이라

(유 1:22)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죽지 않을 만큼

(욥 2:6)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지니라

(시 118:8)여호와께 피함이 사람을 신뢰함보다 나으며

이길 수 있는 시험을 주십니다

(고전 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 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2) 악한 시험

마귀가 주는 시험으로 이 시험된 삶에서 이길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고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합니다.

(욥 1:7)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땅에 두루 돌아 여기 저기 다녀왔나이다


[ 예수님이 마귀에게 시험받아 이기신 것과 첫 아담의 실패 차이 ]


이 악한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서는


항상 기도할 것입니다

(마 26:41)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말씀을 의지해야 합니다

(딤후 3:16)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예수께서는 40일 금식 후 마귀의 시험을 당하실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기셨습니다.

(마 4:4)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마 4:6)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 내리라 기록하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 대개 " = 지당하게, 만 아니라, 헬라어 오티( , for ) 조건 접속사 로 "앞에 간구가 이루어지면 " 이란 뜻입니다.

모든 권세가 하나님 아버지의 것이라는 신앙고백입니다. 찬양입니다.


(롬 13:1)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바라

(사 62:11)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반포하시되 너희는 딸 시온에게 이르라 보라 네 구원이 임하느니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느니라 하셨느니라

" 아멘 " = 진실로, 그대로 믿습니다는 뜻입니다.

이 아멘은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의 속성입니다.


(사 55:16)여호와께 연합한 이방인은 여호와께서 나를 그 백성 중에서 반드시 갈라 내시리라 말하지 말며 고자도 나는 마른 나무라 말하지 말라

(계 3:14)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요일 5:7)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주기도문을 다시 정리하면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올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함에 대한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주의 뜻대로 되어지는 것을 믿고 기다리겠다는 것을 아뢰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룁니다

먼저 사함 받기 전에 형제의 죄를 용서해야 합니다

시험에 이길 수 있도록 영적 힘을 달라고 해야 합니다

주님의 은총과 영광을 찬양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기도의 본이 되셨습니다


1. 복음을 전파하시기 전에 기도하셨습니다


마4:1-11에서 예수께서는 복음을 전파하시기 전에 금식으로 기도하시고 준비하셨습니다.


2. 제자들을 택하시기 전날 밤에 기도하셨습니다


(눅 6:12)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3. 이적을 행하실 때에도 기도하셨습니다


(요 6:11)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4. 죽은 자를 살리실 때


(요 11:41-43)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5. 죽음을 준비하시기 위해


(마 26:36-41)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 쌔 고민하고 슬퍼하사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6. 십자가 위에서 기도하심


십자가 상의 7언 (일곱 말씀, 기도)


(1) 눅23:34 " 아버지여 저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

(2) 눅23:43 "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

(3) 요19:26 "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

(4) 마27:46 "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

(5) 요19:28 " 내가 목마르다 "

(6) 요19:30 " 다 이루었다 "

(7) 눅23:46 "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

 

7. 부활 승천하신 후에도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


(롬 8:34)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히 7:25)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시 121:4)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응답 받는 기도는 어떤 것인가?


1. 회개한 양심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것은 우선적으로 죄를 회개하고 사함 받기 위함에 있습니다. 하물며 자신의 필요를 얻기 위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가 죄를 회개치 아니하고는 감히 기도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의인 10명보다 회개하는 죄인 하나를 기뻐하십니다.


(사 59:1-2)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시 51:17)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시 34:18)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잠 28:13)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요일 3:21-22)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2. 개인 욕망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것


우리가 무엇을 구하든지 그것은 하나님이 보실 때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모든 모습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야 하기에 구하는 바가 하나님 앞에 의로운 것이어야 합니다. 모든 것이 선하고 아름답게 쓰이도록 간구해야 합니다.

(요 14:13)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고전 10:31)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약 4:3-4)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3. 믿는 기도( 의심하는 기도는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


믿음을 가지고 기도한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우리는 흔히 기도해 보고 하는 식의 시험된 기도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응답도 못 받고 하나님을 우롱하는 처사가 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항상 그를 찾는 자들에게 응답하시는 살아 계신 분으로 믿어야 합니다.


(마 21:23)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 쌔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가로되 네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뇨 또 누가 이 권세를 주었느뇨

(히 11:6)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약 1: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4. 간절한 기도


간절하다는 것은 겸손의 자세이며 애타는 자세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식의 자세로 기도한다면 하나님은 듣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간절히 찾는 자 그리고 간절한 태도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마 5:6)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욥 8:5)네가 만일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며 전능하신 이에게 빌고

(신 4:29)그러나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게 되리니 만일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그를 구하면 만나리라

(욜 2:12)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눅 22:44)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더라


5. 응답 받을 때까지 기도하는 인내심을 가질 것


기도의 응답은 각각 다른데 곧장 이루어 주실 경우가 있는가 하면 몇 세기를 지나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기도는 끈질기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반드시 이루어 주실 것으로 믿고 계속하여 기도하면 응답하실 것입니다.


(눅 18:1-8)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가라사대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주께서 또 가라사대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합 2:3)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찌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기도의 응답은 어떻게 확신하는가?


1. 응답은 마음의 평강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기도의 응답은 마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마음이 불안하기에 기도했고 마음이 편하기 위해 기도했다면 먼저 마음으로부터 평안한 심정을 얻어야 할 것입니다.

(빌 4:7)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고전 14:33)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2. 그 제목의 기도가 계속되어지는 힘이 있습니다


(마 7:7-8)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3. 환상이나 꿈을 조건적으로 구하지 않아도 그로 통하여 응답하실 때도 있습니다


이 꿈과 환상 때문에 시험을 많이 받습니다. 대개의 경우 신비로운 것만을 추구하는 자들이 경험하는 것인데 순수한 것은 자랑도 아니하고 사람들에게 덕을 끼치며 은혜로운 것입니다. 반드시 겸손하여야 하며 환상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유별나게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는 자들은 신앙의 전체 생활에 균형이 없고 이단적 색채가 농후함을 보게 됩니다.


(렘 23:25-26)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에 내가 몽사를 얻었다 함을 내가 들었노라 거짓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이 언제까지 이 마음을 품겠느냐 그들은 그 마음의 간교한 것을 예언하느니라


4. 가장 중요한 것은 응답의 결과가 성경적이어야 하고 적이어야 하고 기독교 상식적이어야 함


물론 상식이라면 꼭 이성적(理性的)이다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에서 인정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적도 있고 환상도 있으나 이방 종교에는 더 많은 환상적 이야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적인가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교역자에게 응답에 대한 바른 이해를 교육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역자는 그 성도를 영적으로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고 그런 영적 일에 전문직으로 경험과 듣고 본 지식이 성도를 가르칠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 8:20)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 빛을 보지 못하고


기도에 대하여 다시 한번 정리합니다.


기도( 祈禱 )


기도는 종교적일 때 발생하는 정신적 의뢰입니다. 대상이 있고 간구하는 의도적 목표가 있습니다. 기도를 들어줄 대상은 인간이 아닌 신(神)이라고 하는 정도에서 존재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대상의 신이 없거나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 소위 모르는 신에게 기원하는 것은 허공에 먼지 날리기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세상에는 기도하는 자들이 많은 대신 바른 신, 즉 확인된 신은 별 없는 것같습니다. 기도의 정성에 대한 변론보다 기도 받을 신에 대한 존재의 이해와 그 신의 권세에 관한 신빙성 있는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가끔 얼굴이 닮은 관계로 웃지 못할 일들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가령 대통령을 닮았다든가 하여 여러 사람들로부터 각하 소리를 듣게 된다든가 수색 중인 범인의 상을 닮아 어이없이 연행되어 조사를 받게 되는 일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은 잘 아는 것 같아도 모르고 오해하는 면이 많습니다. 신에 대한 오해는 실로 엄청난 재난과 인생 전체를 망하게도 하는 일까지 불러옵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이 믿고 의지하는 신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갖지 않고는 진정한 기도를 할 수가 없습니다는 것입니다.


참 신이 아니 것을 모르고 그에게 일생으로 기도하고 헌납하고 숭배했다면 얼마나 분하고 괴롭겠는가? 마치 대통령인줄 알고 추대했다가 나중에 알고 보니 닮은 얼굴과 체격으로 속았다고 한다면 어디에서 보상받겠는가? 그러므로 참 신을 먼저 찾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속고 있는지 모릅니다.


기독교는 참 신이신 하나님께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대로 기도하여 얼마든지 응답 받아 복될 수 있습니다. 놀라우신 하나님의 허락이며 믿을 수 있는 안전한 지식들로 우리에게 가르치셨습니다. 적어도 우리는 속지 않고 있습니다는 것만은 우선적 복입니다. 어떻게 기도의 응답을 받을까요?


1) 응답의 형태


기독교의 회개는 축복과 연계되는 수가 많은데 회개 자체가 복을 받는 도구로서 그 전부는 아닙니다. 그러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새로운 사람으로 달라진 상태로부터 자기에게 시도되는 모든 생활에 새 바람이 일게 되고 여러 가지로 은혜스런 복된 일들이 연출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성경에 하나님을 아는 자로서 기도할 때 첫 관문이 죄를 회개하여 마음 정리를 먼저 할 것을 권고하셨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들어주시지 않으신다는 조건이 주어졌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기도의 중심이 하나님의 선하시고 아름다운 목적을 띤 것이어야 할 것을 지적하셨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이고 단순한 것도 들어 응답하십니다

기도의 응답은 여러 가지의 형태를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기도가 계속되고 간절한 이상 반드시 응답된다는 것이 생존하신 하나님을 참 신으로 신뢰케 합니다. 응답이 없다면 죽은 신이요 이방 사람들이 그 신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부르짖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기도는 어느 특정인의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응답 받을 수 있음을 허락하셨기 때문에 가장 위대한 처세입니다. 이것을 게을리 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신자입니까?


기도의 응답 형태로서 가장 흔한 것은 자신의 심정으로부터 오는 확신인데 최면화 된 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분명하게 심령으로부터 응답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마치 전화로 소식을 들은 것과 마찬가지이며 신문을 읽고 사실 확인을 한 것 같은 심경이 됩니다. 자칫하면 자기 도취에 빠질 염려도 있으나 마음에 확신을 갖고 나면 근심과 의심을 버리게 되고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같에 가볍고 밝고 환해서 찬양과 감사를 드립니다. 그것은 찬송과 헌금 외에 여러 가지로 봉사하는 태도입니다. 그런즉 기도한 바가 곧장 이루어지고 맙니다.


다음으로 환상이나 꿈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신비주의적인 면을 지녔으므로 대단히 조심을 요합니다. 그러니까 이단들의 견해는 거의 꿈과 환상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꿈과 환상의 응답 방식이 여러 경우에서 나타나 있으므로 우리에게도 그와 같은 현상을 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런데 꿈과 환상을 기대하며 무엇을 간구하였다 하면 더욱 조심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응답 방식을 구하지는 않았는데 환상이나 꿈으로 응답될 때도 있으니 이것은 전자보다 혹 안전할 것입니다.


하늘로부터의 직접적인 영음이 있습니다. 영적 소리를 듣는다 함에도 여러 논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서 귀신의 유혹된 소리를 들을 수도 있을 것이고 외부의 소리를 잘못 착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영음은 잠을 자다가도 듣고 기도 중에도 듣고 평범한 충성을 하는 일터에서도 들리게도 됩니다. 심령으로부터 하늘의 음성임을 인식할 수 있고 하나님의 음성으로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뚜렷이 들리므로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2) 기도로 얻게 되는 은사( 恩賜 )


기독교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힘으로 복음을 전하는 기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받아 전도에 가미하고 증거하게 하십니다. 따라서 이 특색을 부정할 수가 없고 성경에 역력합니다.

소위 은사(恩賜)인데 이는 기도로 얻어지는 것입니다. 경험한 자들의 의견으로는 기도할 때 사모함으로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쨌던 복음 전파의 효과를 위하여 사용할 목적이 분명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 가지 은사가 있는데 성경에 있는 은사들을 모두 구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신학적 논란이 있습니다. 다만 성경에 은사의 무엇을 구하지 말라는 말은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특이한 - 성경의 방식의 예가 아닌 능력으로 발휘할 수도 있습니다. 새로운 방식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전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할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그런 새로운 형태의 능력 발휘가 보고 듣는 자로 하여금 미혹스럽고 건전하지 못하여 복음사상에 적합치 못하게 여겨질 때 우리는 이를 경계할 것으로 여깁니다.


병든자를 고치는 예에서도 병자가 매우 곤혹스럽게 된다거나 치유하는 과정이 은혜스럽지 못하고 도리어 보는 이로 하여금 위압감이 조성되고 신앙의 본질을 곡해하거나 회피할 때 그것은 부당할 뿐 아니라 신의 능력이 아닌 것이 많을 것입니다. 예언하는 일에도 그 예언에 적중되지 않았을 때 그것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다른 전도의 입장마저 부정하게 만들고 우리는 그의 예언을 미혹된 귀신의 가르침으로 단정합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예언은 일점일획이라도 틀림이 없고 반드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혹시라도 천에 하나 만에 하나의 실수를 인간적으로 이해하자고 한다면 하나님에 대한 신뢰에 혼란을 빚게 될 것입니다.


병든자를 고치는 것에도 마찬가지인데 아주 확실히 나아야지 그렇지 못할 때는 주로 본인의 믿음이 적다느니 하는 전가하는 태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을 수 없게 만들뿐입니다. 물론 본인의 믿음이 중요하겠지만 스스로 할 수 없는 자가 와서 고침을 받겠다고 할 때 고쳐 줄 수 있어야지 잘 되면 능력 받은 종처럼 기세를 올리고 못 고치면 딴 소리로 마감하는 자가 되어서는 곤란할 것입니다.


최종적으로 무슨 은사에서든지 교만이 따르면 못하는 것보다 더 못한 것입니다. 은사는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한 자료이지 개인의 인기를 위한 어떤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이와 같이 하여 멸망 받는 이가 있을 수 있음을 예시하였습니다(마7:21-).


3) 가장 빠른 기도의 문을 여는 법


기도를 하려고 하면 별로 할 말이 없을 때 딱해집니다. 물론 믿음의 고백 형식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한 말을 하고 그 다음은 목표 있는 간구가 시작되는데, 요구 사항의 내용은 아주 단순한데 기도는 밤새도록 혹은 금식으로 몇 일씩 채워야 하는 것은 왜일까요?


평소에 우리의 심령이 온전치 못하여 깨끗이 청소하는 시간이 들기도 하고 우리의 믿음의 기도를 하나님께 상달치 못하도록 하는 마귀의 방어 때문에 응답의 감동이 늦어질 수도 있습니다.


가장 빠른 기도의 문을 열고 계속 주께 청할 수 있는 정신을 얻는 방법은 역시 죄를 회개하는 것입니다. 입으로 시인하여야 빠르다. 하지만 남이 들어서 같이 감동 할 수도 있고 오해가 될 수도 있을 것인데 초대 교부(敎父)들은 공중(교회)앞에 회개를 권유했다고 전하여 집니다.

마치 어떻게 아프다는 말이 진찰 받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언제 어떻게 먹었다는 것을 상세히 일러 드리는 것이 치료에 유익한 것과 같다. 따라서 죄를 기억해 내어야 하고 묵상하며 아주 깊이 자아에게 철저한 진단을 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소위 하늘의 검찰청에 스스로 들어가 조사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발견이 되고 죄로 시인하면서도 마음이 아프지 않을 때 실로 슬픈 일인데 마음이 아플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마치 환자가 의식 불명을 회복 받을 때를 기다리는 것처럼. 죄를 누적하고 죄를 자주 지음으로 죄에 대한 부끄러움과 아픔이 상실하고 감정이 둔해지는 것만큼 무서운 일이 없습니다. 말세의 사람이 이럴 것이라 예언되어져 있습니다(딤후3:1-)


그래서 어쩌면 기도는 곧 회개인지도 모릅니다. 회개한 자의 가슴에는 성령이 계시고 성령이 계시니 성경대로 성령을 따라 기도하라는 말씀을 이룰 수 있습니다.

죄를 알고 잘못을 빌고 있는데 상대가 용서하지 않을 때 끝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용서를 기다림은 얍복강가에서 기도하며 씨름하던 야곱의 심정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한번으로 안되면 두번 열번으로 같은 얘기지만 계속 용서를 빌 뿐입니다. 그리고 드디어 사해 주시는 심정을 주시고 확신을 주시면 무엇을 구하고 충성스런 증인이 되겠노라고 작정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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