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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의 예정론과 성화론관계
조회 197 추천 0 비추천 0 2018-01-22 18:00 작성자 : 칼빈스
. 칼빈의 예정론과 성화론

 

칼빈의 예정론의 신학적 기초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있다. 인간의 어떤 가능성도 배제하고 하나님의 능력과 뜻 안에서만 인간 구원이 가능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 초판(1536)에서 제 Ⅱ장 "신앙에 관하여"에서 교회를 정의하기 위해서만 예정교리를 사용하였다. 그는 맨 처음 예정론을 신학적인 주제로서 개별적으로 취급하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계속 보충하여 최종판에 이르기까지 예정교리를 보충하여 갔다.
칼빈은 그의 기독교 강요에서 예정은 "하나님께서 인류, 즉 개인의 형성에서 그 원하시는
바를 결정할 때 준거하는 그의 영원한 칙령이다. 모든 사람이 다같은 운명으로 창조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어떤 사람은 영원한 저주에 미리 작정되어 있다. 그러
므로 각 사람은 이 둘 중에 어느 하나를 목표하여 창조되었다. 곧 생명이나 사망에 예정되어
있다." 고 서술하고 있다. 그의 기독교 강요 3권 24장 1절에 어떤 자는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예정되었고, 어떤 자는 영원한 파멸에 이르도록 예정되었다 고 한다. 버리는 것
없이 선택도 성립될 수 없다. 이를 가르켜 이중예정설이라고 한다.
모든 사람이 다같은 운명으로 창조되지 않았다고 하는 이러한 예정은 아담과 이브의 타락
전에 하나님께서 미리 계획하고 예정하셨다는 타락전 예정설을 믿고, 창세전에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도록 예정하셨다고 칼빈은 믿었다.
그런데 칼빈은 구원에 있어서 인간의 어떠한 가능성도 배제시킨다.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만 인간 구원이 가능함을 강조한다. 그래서 칼빈에게 있어서 인간의 의지는 노예적이다.
그런데 칼빈의 예정론은 자신의 고유한 사상이라기 보다는 바울, 어거스틴의 사상적 지표아래
좀 더 첨가된 것임을 알 수 있다. 16세기 카톨릭 교회의 권위와 압제 앞에 무력해 질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말씀 과 인간의 구원 을 하나님의 주권적 공의를 내세워 더 이상 카톨릭
교회의 권위에 종속되지 않으려는 성서적이며 신앙적인 도전이 예정론의 깊이를 더해지도록
만들었다. 
칼빈은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통치를 말하면서도 "행동주의적 성화신앙"을 강조한다. 누가
구원을 받았는지, 누가 하나님의 예정에 들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구원의 확신을 얻기
위하여 선행을 실천해야 한다는 행동주의 신앙이 나오게 된 것이다. 이것은 바로 직업의식
으로 이어진다. 세속직업이 하나님이 내게 주신 소명인줄 알고 그 직업 속에서 확신을 얻으
려고 하였다. 또한 그 직업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뿐 아니라 그 직업을 천국으로
만들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금욕주의적인 직업생활은 자본주의를 발전시켰다.
칼빈의 성화는 사회적 성화운동으로 까지 발전한다. 즉 제네바 시를 하나님의 뜻이 실현된
신정정치의 사회로 만들고자 하였다. 많은 시련과 역경을 겪으면서 인내를 갖고 사회적  
성화운동을 실천했다.
칼빈의 기독교 강요 전체를 읽어보면 예정론보다 성화론이 더욱 강조되고 있음을 보게된다.
즉 그의 기독교 강요 전체에 흐르는 구원의 확신, 경건한 훈련, 자아 죽음의 생활, 등 성화가
강하게 강조되고 있음을 알게된다.

 

2. 칼빈의 예정론과 성화론의 문제점과 적용

 

존 웨슬리에 의하면 칼빈의 예정론은 하나님의 절대권을 주장하는데는 도움이 되지만은   
하나님의 보편적인 사랑과 그의 공로와 지혜 그리고 그가 창조한 자유적인 인간관이 크게
위배되고 계시 자체에도 모순이 된다고 하여 이를 배격하였다. 칼빈이 믿음에서의 완전에  
강조점을 둔 반면 웨슬리는 온전한 구원은 사랑과 순종의 완전이라고 가르친다. 사랑의  
행위와 신실성 면에서의 믿음의 이해에 있어서 칼빈은 정적이며 웨슬리는 역동적이라고 할
수 있다. 믿음의 최종목표가 아니라, 하나님께로 흘러나오는 사랑으로 인간을 회복시키려는
목표를 위한 수단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인간들의 모든면이 예정에 의하여 결정된다면, 성결에 대한 윤리적인 요구는
그리스도의 삶에 아무런 관련이 없게 된다. 웨슬리는 이 예정론은 그리스도인의 윤리생활을
불필요하게 만들며 신자양성에 심각한 장애물이 된다고 역설하였다. 그리고 예정론자들은
성경에 몇몇 구절만을 통해 이 주장을 고집하나 성경 다른 곳에는 이를 반증하는 구절들이
많이 있으며 성경전체의 흐름이나 사상은 예정론을 뒷받침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칼빈의 예정론은 구원에 있어서 인간의 어떠한 가능성도 배제하고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만
인간 구원이 가능하다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강조한다. 여기에서의 하나님은 창조주이면서
영원한 통치자, 보존자이시다. 이것은 신중심적인 칼빈의 관점을 제시하는 것으로서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거리가 확고히 유지되는 느낌을 갖게한다. 반면에 복음적 신인협조설을 주장한
웨슬리의 성화론은 칼빈의 이러한 한계-거리를 넘어선다. 성화의 실천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칼빈은 성령의 역사로서의 선행, 곧 인간의지의 노예신세를 주장한다. 하지만 웨슬리의  
주장은 신인협조론적 성화론으로서 거듭나는 순간에 순간적으로 성화가 주어지지만 계속적
으로 점진적인 성장과 변화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칼빈의 성화론은 그리스도의 성장과 완전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봄으로써 성서와 역사적인
성화와 완전에의 추구를 공허한 것으로 오해하는 결점을 지니고 있다. 또한 그것은 비관적
인 인간론을 주장함으로써 인간의 성장가능성을 배제하며 또한 그리스도의 무한한 구속의
은혜를 축소하는 오류를 낳게된다.

칼빈의 사상에서 선민으로 예정에 든 사람인지를 확증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행동하고 영적
으로 훈련받는 경건한 생활을 강조하는 성화론이 그의 구원론의 핵심을 이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성화사상은 어디까지나 수동적인 성화, 곧 하나님의 은총으로 수동적으로 주
어지며 인간의지는 성화의 과정에서 노예의 신세임을 강조하는 성화이다. 결국 칼빈이 말하
고 있는 성화는 극히 수동적인 성화, 즉 옷 입혀지는 성화에 불과하다. 즉 인간의 적극적이
고 사회적인 행위로 나타나고 있는 칼빈의 성화는 인간의 자유의지와는 상관없이 노예상태
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인간의 의지는 인간의 타락이후에 죄의 속박을 받아 죄의 노예상태
에 있다. 죄에 지배받고 있어 죄의 종이 된 인간이 본성적으로 죄를 짓는 다는 것은 필연적
이라는 부정적인 인간이해를 갖게되는 문제가 있음을 보게된다.
칼빈의 예정론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총을 기억하게 하고 또한 성도를 겸손하게 하는 나름대
로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 칼빈의 의도 역시 기계론적인 숙명론이나 인간의 책임성을 간과
하는 것이 아니지만 실제적인 경험에서 그것은 적극적으로 성화를 추구해야 하는 성도에게
수동적인 요소로 작용할수 있는 인식을 제공해줄수 있다. 성도는 예정이라는 뜰 안에서  
은총에 대해 감사보다는 오히려 자만하거나 나태하기가 쉽다. 그래서 그의 예정론은 은총의
예정론이 되기 보다는 수동적인 예정론의 성격을 띈다고 볼수 있다. 특히 한국교회에서는
이러한 요소가 강하게 나타난다고 볼수 있다. 한국교회에서의 예정론의 역할을 살펴보면 
그것은 순기능보다 오히려 역기능을 더 많이 지니고 있음을 보게된다. 따라서 기독교인의
책임성이 희박해지며, 또한 이것은 더 나아가 숙명론적인 태도로 나타나기도 한다.

칼빈은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통치를 말하면서도 행동주의적 성화신앙을 강조한다. 누가  
구원을 받았는지 알수 없기 때문에 구원의 확신을 얻기 위해서는 선행을 실천해야 한다는
행동주의적인 신앙을 강조하는데, 그래서 칼빈의 기독교 강요의 주요내용을 보면 예정론보
다 성화론이 더욱 강조되고 있음을 보게된다.
칼빈의 성화는 사회적 성화운동으로 까지 발전하게 되는데 그는 제네바 시를 하나님의 뜻이
실현된 신정정치의 사회로 만들고자 하였다. 많은 시련과 역경을 겪으면서 인내를 갖고  
사회적 성화운동을 실천했음을 보게 된다. 이러한 칼빈의 사회성화는 웨슬리의 사회성화와
더불어 적용가능한 것임을 보게된다. 오늘날과 같은 개인주의적이며, 인간의 소외를 경험하
고 모든 억압된 형태와 도덕적 헤이를 경험하는 것 속에서 사회성화를 통하여 보다 나은 
지상의 천국(?)을 이루려 했다는 점은 중요하다고 본다. 이러한 점은 오늘날의 시대에서도
적용되어질수 있다고 셍각한다. 이는 하나의 정적인 상태로의 머무름이 아니라 역동적인 
과정을 수행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그의 예정론의 소극성에 대한 이해를
재해석을 통하여 보다 적절한 사회성화를 위한 적용을 위해 재해석하고 적용해야함을 말하
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회적 성화를 말할 때 그 의미는 단순히 사회봉사를 의미하는 것임을 알아야할
것이다. 여기에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정신에 따라 이웃과 사회를 위한 봉사와, 이러한 봉사
를 통하여 예수가 봉사자로서 삶을 살았던 것처럼 우리도 그러한 삶을 산다는 그러한 보다
폭넓은 의미로 사용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성화를 통하여 이 세상의 삶을 재형성하여 
세상 속에서 구별되고 성별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 그의 인간책임의 부분에 있어서 예정론을 통하여 약화된 인간의 책임의 부분을
보다 재해석을 통하여 강화되어질 필요가 있음을 보게된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문제가 바로
여기에서도 생기고 있음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나친 예정교리는 복음의 전파, 내지는 선교에 있어서 장애를 줄수 있는 여지가 많
다. 역시 이러한 부분에 관해서도 재해석되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칼빈의 예정이론은 성경해석으로부터 유도된 것이 아니라 교회의 권위에 대항하는 하나님의
절대적 권위를 수호할 논리적 필요성에 의해 요구된 교리이기 때문에 다소 시대적인 특성을
많이 지니고 있음을 보게된다. 우리는 그의 신학적 이해를 다시금 재평가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칼빈의 사회성화는 많은 열정을 가지고 그들의 사회를 정화해보려는 그의 의지로
인해 오늘날에도 제네바가 스위스 내에 가장 도덕적으로 경건한 도시가 될 수 있었음을   
그 사람의 역할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복음전도와 성경말씀으로, 믿음과 기도로, 그리고 사랑의 친교로 이루어
지는 경건주의의 운동의 실천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결운동이 필요하고,
무조건적인 영혼구원만을 강조하기만 하고 성결한 삶을 사는데 있어서는 무관심했던 것에
대해 다시금 새로운 방향을 설정해야 되지 않은가 생각한다. 한국교회의 교인들의 사회성화를
위한 성결한 삶을 실천하는 노력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할 때 지금의 교회와는 다른  
모습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담당하는 교회의 모습을 사회에 보여주게 될 것이다.

출처/정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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