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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원의 영적 기도
조회 107 추천 0 비추천 0 2018-03-13 20:26 작성자 : 최 수혁
제1장. 기도의 자세

기도는 하나님과 사귀는 것이며,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것이며, 하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행위이며, 하나님과 사랑을 나누는 시간이며, 하나님께 사랑을 고백하고 감사하는 시간이며, 우리의 삶에서 가장 깨어있는 시간, 하나님의 소리를 듣는 시간이며, 나를 치료하는 시간이다.

1. 소극적(수동적) 기도

1). 의무감에서 하는 기도
2). 형식적, 기계적 기도
3). 기도 시간에만 하는 기도
4). 바쁜 일이 있으면 소홀하는 기도
5). 생각나는 부분을 기도
6). 답답함 때문에 하는 기도
7). 문제가 생기면 하는 기도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소극적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은 기도에 관한 훈련을 전혀 받지 않았기 때문이거나, 기도의 기본보다는 기도의 방법론에 대해서만 훈련받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응답받는 기도의 비결’과 같은 것들이다. 즉 진정 하나님 앞에 의미 있는 기도보다, 오직 나를 위한 응답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기도훈련만을 받았기 때문이다. 기도는 내가 원하는 응답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기도 그 자체가 의미를 가지는 적극적 기도이어야 한다.

2. 적극적(능동적) 기도

1). 자발적으로 하는 기도: 자신도 모르게 하는 기도, 기도와 내가 일체화가 되는 기도.
2). 인격적인 교제를 위한 기도: 하나님과 나와의 인격적인 교제를 위한 기도.
3). 기도하는 시간이 즐겁다: 기도는 크리스챤에게 가장 즐거운 단어이다.
4). 기도가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
5). 마음으로 깊이 하나님과 만난다.
6). 항상 기도한다: 이성과 영성의 분리, 머리와 마음의 분리된 상태에서 영으로, 마음으로 늘 하는 기도.

3. 기도는 신앙생활의 활력소이며 삶의 원동력이 된다

기도는 영의 호흡이다. 공기중의 산소를 호흡함으로 육체가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영적인 기도는 영-혼-육을 늘 새롭게, 강건하게 유지하게 하는 활력소이며, 삶의 원동력이 된다.

1). 신앙의 생활화

요17:16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
신앙은 삶이다. 신앙과 삶은 분리되어서는 안된다. 크리스챤은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속하거나, 영향을 받으면 안된다. 오히려 빛과 소금으로 세상에 영향을 미치며, 세상을 변화시키며 살아야 한다. 그렇지만 세상에서 살면서 세상의 영향을 받지 않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러한 세상의 좋지못한 영향력은 점점 더 강해진다. 세상은 점점 더 세속화되고, 더 추악해지고 있다. 그러므로 많은 크리스챤들이 현세적이며, 물질적이며 감각적인 세상에 살다가 자신도 모르게 세상에 끌려들어가서 비 신앙적 마음, 생각, 삶의 방식을 따르게 된다. 크리스챤이 하나님으로부터 세상으로 마음을 빼앗기게 됨으로 그들의 마음이 굳어지고 신앙과 삶이 서로 다른 2중적인 삶을 살게된다.
이처럼 크리스챤이 세상의 영향력을 받게 되는 이유는 이들이 기도로 하나님의 은혜를 끊임없이 받아들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기도는 세상의 영향력을 밀어내는 힘이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통로이다. 기도로 하나님이 주시는 삶의 활력소를 끊임없이 받음으로 삶의 모든 부분에서 힘과 용기를 북돋고, 소망과 삶의 의욕과 의미와 가치가 풍요한 삶을 살아야 한다. 기도는 껍질뿐인 종교인을 풍성한 삶의 신앙인이 되게 한다. 현대 교회의 가장 절실한 문제는 기도의 문제이다. 기도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는 것은 마치 호흡이 잘못된 것처럼 그것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부분에 치명적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이다.

2). 성직, 직분의 수행

직분자에게 기도는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해져야 말씀도 전하고, 봉사도 하게 된다. 삶의 모든 구석구석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간섭과 인도함이 있어야 한다. 삶이 하나님과 일치되어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을 믿으며,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마음이 하나님과 일치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알지만 하나님의 마음은 모르는 상태에서는 하나님의 일을 할 수가 없다. 기도를 많이 한다고해서 하나님의 마음과 일치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하기보다 바르게 하는 것이 중요하고, 깊이 하는 것이 중요하다. 바르게 하고 깊이 하는 기도를 해야 내속에서 올라오는 인간적 생각과 수단을 다스릴 수 있고, 그래야 직분을 제대로 감당할 수가 있다. 이것은 오직 올바른 기도로써만 가능하다. 기도는 이땅에서 하나님과 연결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기도를 통하여, 오직 기도로 속에서 솟아오르는 이성과 육성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뜻을 쫓아갈 수 있다.

3). 마음의 평안과 기쁨

영의 기도를 통해서 내면의 세계에 존재하시는 성령님을 만남으로 평안, 위로, 기쁨의 마음을 소유하게 된다. 영적기도로 우리에게 가장 먼저 찾아오는 것이 바로 이 마음의 평안이다. 세상이 요동쳐도 내 마음은 세상과는 차원이 다른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으로 평안하게 된다. 크리스챤은 세상에 살지만 세상과는 다른 차원, 즉 천국이라는 차원이 다른 세계에서 오는 영적인 힘을 가지고 세상의 파도를 제압하며 사는 사람이다. 몸은 세상에 있지만, 마음은 차원이 다른 곳, 즉 하늘에 두고 살아야 한다. 땅은 흔들리고 변하고 파도치지만 하늘은 그렇지 않다. 몸은 땅에 두고 살지만, 심령은 하나님과 연결되어있어야 한다. 제자들은 세상의 파도롤 보고 마음도 흔들렸다. 마음에 세상의 파도를 담았다. 그래서 그들은 현실의 파도에 빠져들어갔지만, 예수님은 마음의 평안함으로 이러한 현실의 파도를 제압하셨다. 세상을 이기는 큰 능력은 고요함, 평안함 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러한 영적인 힘이 우리에게 오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바로 마음의 평안과 기쁨이다. 이를 위해서 기도해야한다. 기도로 하늘에서 오는 것, 즉 하나님의 평안으로 마음을 채워야 한다. 이런 사람이 세상을 이기고 세상의 파도를 제압한다.

4). 하나님의 능력

능력과 은사는 하나님께서 믿는 자에게 주시는 신령한 선물인바, 우리는 이들을 기도로 받는다. 그러나 우리는 능력과 은사를 달라고 기도해서는 안된다. 은사와 능력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으로부터 흘러나온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씨앗이 되어 열매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럴 때 이렇게 나타나는 은사가 아름답게 나타난다.

5). 영성의 발전

영성은 우리 내면에 있는 그리스도의 성품, 성령의 성품이다. 영성은 성령께서 우리안에 충만하시며 그의 지배에 따라 나의 본능, 본성, 육신, 자아가 다스림을 받아서 사는 것이며, 또한 영성이 충만한 삶은 이러한 다스림을 받는 삶이 억지가 아니라, 기쁨으로 자연스럽게 되는 삶이다. 세상은 점점 이성이 강조되고 있다. 이성이 강조될수록 영성이 사라지고 비인간화되어간다. 미래의 사회는 더욱 기계적, 비인간적, 조직적이 되고, 더욱 복잡해지고, 막중한 스트레스에 시달림으로 인간관계는 더욱 거칠어지게 된다. 이러한 현실에서 영성은 너무나 중요하다. 크리스챤에게 영성은 생명력이다. 영성이 없다면 죽은 크리스챤이다. 이제 세상이 비인간화될수록 더욱더 영적인 삶을 추구하게 될 것이다. 영성을 공급해주고, 발전시키고 성장시키는 길이 바로 기도이다. 기도는 우리를 깊은 영적인 세계로 이끌어준다. 오직 기도로 영성이 개발되고 발전되며, 이를 통해서 하나님의 지배를 받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우리에게 들어오게 된다. 세상은 쉴새없이 파도가 치고 있다. 이 파도를 이기기 위해서는 주님 계신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그것은 오직 기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오늘날 사람들은 육성은 음식으로, 이성은 교육을 받아서 발전시키고 있으나 영성은 무시하고 있다. 영성도 이성이나 육성과 마찬가지로 발전하고 성장시켜야 하는데, 그것은 오직 기도로만 가능하다.


제2장. 기도의 정의

1. 주님이 제자들에게 시키신 기도훈련

마6: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기도는 훈련이다. 믿음과 구원은 거저 주시는 것이지만, 그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모두 훈련을 필요로 한다. 예배, 찬송, 봉사, 헌신, 기도 등등 이 모든 일들은 훈련이 필요하다. 그중에서도 기도의 훈련은 모든 크리스챤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예배나 찬송은 늘 하는 것이 아니지만, 기도는 영혼의 호흡으로서 늘 하여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호흡이 잘못되면 몸의 어느 한 부분도 강건할 수 없는 것처럼 기도가 잘되지 못하면 믿음생활의 어느 부분도 제대로 될 수가 없다.

한국 기독교의 문제는 기도가 잘못된 것으로붙 비롯된 것이다. 무속신앙에 근거한 기도, 돌무더기 앞에서 허리를 굽히고 손비비며 기도하던 그대로 무릎을 꿇고 손비비며 그저 자꾸 무엇인가만 달라고 기도한다. 이런 기도가 바로 5절의 외식하는 자의 기도요, 7절의 이방인의 기도이다. 돌무더기가 사람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돌무더기와 사람 사이에 아무런 관계도 없고, 마음의 통함도 없고 감정도 없이 그저 형식적으로 허리만 굽히고 손만 비벼 무엇을 얻어내려는 것, 이것이 바로 외식하는 자의 기도요, 이방인의 기도이다. 이런 기도를 통하여 무엇을 얻어내려고 하는 자세로부터 교회의 모든 문제가 생긴다. 삶이야 어찌되었든 복만 받으면 된다는 기복신앙, 질질 끌려 다니는 수동적 믿음, 권위주의 교권, 신앙과 생활의 분리등이 생겨난다. 그러므로 한국의 크리스챤들이 기도는 많이 하지만 세상을 변화시키거나 이기지 못하고 있다. 잘못된 기도를 하기 때문이다.

히5:13-14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제대로 된 기도의 훈련을 받으라. 주님의 기도훈련을 받으라.

1). 아버지에게 하라.
기도는 어린 자녀가 사랑하는 아버지에게 나아가는 것이다. 품에 안겨 사랑을 느끼고, 사랑을 주고 받는 것이다. 이러한 기도에 형식이나 틀에 박힌 언어나 표정이 있다면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마19:14에서 천국, 즉 하나님의 임재는 어린아이와 같은 자의 것이라고 하시는 것이다. 여기에는 계급이나 높낮이가 없다. 함께 딩굴고 함께 사는 것이다. 주님의 기도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 기도하는 것이었다. 아버지에게 나아갈 때 중요한 것은 마음이지 외모, 외형, 표정, 목소리가 아니다. 아버지를 사랑하고, 존중하고 인정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편한 자세로 기도하라.
우리가 기도로 하나님께 가까이 가지 못하고 기도가 자꾸 막히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을 무겁고 두렵게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참 사랑의 아버지는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다. 세상의 아버지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잘못된 개념, 나를 이용하고, 일시키고, 부려먹는 아버지의 개념을 버려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 상에 따라 기도가 틀려지고 삶이 틀려지고 설교가 틀려진다. 두려운 하나님의 개념으로부터는 정죄하는 메시지, 두려워하는 기도, 두려워하는 삶이 나온다. 바리새인들의 문제는 그들이 가지고 있던 잘못된 하나님 상이었다. 하나님 상이 잘못되었으므로 기도가 막히고 믿음생활이 잘못되었던 것이다. 두려운 하나님 개념을 가지면 아무리 기도해도 성격이 거칠게 되는데, 그 이유는 평안하지 못한 하나님을 만나고 기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하나님은 너희의 좋으신 아버지이다. 끝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분, 용서하시는 분, 보살피시는 분이다’ 하고 우리에게 살아계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의 개념을 넣어주시는 것이다. 기도 속에서 이렇게 좋으신 아버지를 만남으로 편안함이 있어야 한다. 기도를 통하여 평안한 하나님을 만나라. 이를 위한 기도 훈련의 첫단계는 좋으신 아버지를 자꾸 부르는 것이다. 왜 좋은지, 그 이유를 자꾸 발견해서 그 이유를 입에 담아 고백하는 훈련을 하라. 목자가 되셔서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는 분, 병을 고쳐주시는 분, 머리털 까지도 헤아리시는 분, 산성처럼 보호하시는 분 등등. 그리고 그 품안에 안기는 훈련을 하라.

2). 하늘에 계신 분에게 하라.
여기서 말하는 하늘이란 대기중의 하늘이 아니라, 물건이 아닌 하늘, 문제와 어려운 현실이 아닌 곳을 말한다. 즉 지금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 문제속에 갇히거나, 환경속에 갇히신 분이 아니라는 뜻이다. 문제와 어려움의 현실을 벗어난 곳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계신 그 하늘은 어디인가?
눅17:21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하나님이 계신 하늘은 바로 나에게 접촉한 곳, 즉 나의 속이다. 다만 우리의 마음에 계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마음으로부터 문제와 답답함을 분리시켜야 한다. 우리의 마음에서 어려운 현실이 주는 걱정, 근심, 두려움, 답답함을 씻어내야 하늘에 계신 하나님, 즉 우리의 마음에 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하시는 것이다. 깨끗하고 평안한 마음속으로, 하나님이 계신 깊은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우리는 기도를 밖으로 하지 말고, 안으로 해야한다. 주님이 가르치시는 기도는 구약 선지자들의 기도처럼 하늘을 향하여 외치고 부르짖는 기도가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을 향하여 안으로 하는 기도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골방으로 들어가라고 하시는 것이다. 즉 내 영혼안에 계신 하나님을 만나라는 것이다. 내 영혼속에 하나님의 임재,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인식하라는 것이다. 내 영혼안에 계신 하나님과 만나고, 연합하고, 도움을 받으면, 그것이 즉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게 되는 것이며, 여기서부터 시작하여 하나님의 손을 잡고 점점 밖으로 나가서 현실속에, 문제속에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멀리, 밖에서부터, 높은 하늘에서부터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기 때문에 기도가 어려운 것이다.
히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단지 하나님이 계심을 믿는 믿음만으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귀신도 이를 믿고 떨기 때문이다.(약2:19) 그러면 어떤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인가?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심을 믿는 믿음이다. 왜냐하면 이런 믿음이 바로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를 포도나무와 가지와 같은 실제적인 관계, 만남의 관계로 만들어 가는 것이요, 이런 믿음이 주가 내안에, 내가 주안에 있는 관계로 이끌어 가는 것이요, 그럴 때,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우리 안에서 우러나오는 하나님의 은혜로 풍성한 열매를 맺게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나와 함께 내안에서 살아가시는 주님을 발견하게 될 때, 내가 주안에, 즉 보좌에 계신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내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을 만나고 발견하지 못하게 되면 보좌에 계신 하나님도 발견하지 못하게 된다. 내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을 만나는 기도를 하지 못하면, 그런 훈련을 받지 못하면 우리가 드리는 예배도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요, 삶에서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내안에 하나님을 모시는 사람이다. 내안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모시는 것이 바로 살아있는 예배이다. 내안에 계신 하나님이 일하실 때, 내가 일하는 것이요, 내안에 계신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나도 덩달아 영광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본질이다. 하나님이 그냥 막연하고 피상적이기만 하면, 나의 삶도 역시 막연하고 피상적이다. 왜 사는지, 어떻게 사는지도 모르고 뜬구름 잡다가 끝나고 마는 것이다. 피상적인 하나님은 피상적인 나의 삶을, 구체적인 하나님은 구체적인 나의 삶을 만드는 것이다. 피상적인 하나님 체험은 피상적인 나의 삶의 체험이 된다. 그러므로 기도를 통하여 내안에 살아계신 하나님과 교제하고, 만나고 느끼고, 사랑하고 사랑받으라. 그런 훈련을 하라.

3). 중언부언하지 말라.
말을 많이 하지 말라. 하나님을 설득하려고 하지 말라. 과대광고하지 말라. 말만 많이 하다가 기도 끝내지 말라. 말로 하나님을 이해시키고, 하나님과 따지려고 하지 말라. 아버지는 구하기전에 우리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아신다.
하나님은 비록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깊은 곳(4차원의 세계, 영의 세계)에 계시는 분임을 인식하라. 세상의 인식은 이성, 감각으로 하지만, 깊은 곳에 늘 함께 하시는 아버지는 이성이나 감각이 아닌 마음으로 만나야 한다. 아무리 이성이 바쁘게 회전하더라도, 세상이 바쁘더라도, 복잡하더라도 마음이 깨어있으면 우리는 마음으로 늘 아버지와 대면할 수 있다. 마음으로 하는 기도를 하도록 하라. 그런 훈련을 하라.
기도를 말로 하려고 하지 말고, 마음으로 하려고 하라. 영적기도를 하려고 하라.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마음으로 하는 기도에 귀를 기울이신다는 의미이다. 마음으로 하는 기도 훈련을 하라. 하나님은 마음의 소리를 들으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말을 듣고 응답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말에 담긴 마음을 보시고 응답하신다. 유창하지 못해도, 길지 않아도 마음이 담긴 기도를 하라. 마음의 기도가 아닌 기도는 아무리 말이 유창해도, 성경을 많이 인용해도 허공을 치는 기도이다.
시107:9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영혼으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모하고, 그 사모함을 고백하라. 마음으로 송축하고 찬양하라. 육체의 접촉과 생각이 분리될 수 있는 것처럼 생각과 마음도 분리될 수 있다. 마음은 생각, 느낌, 감정, 의지, 상상이 아니다. 이런 것 밑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언부언하는 말이나, 생각이나, 느낌이나, 감정이나, 상상과 같은 것들을 최대한으로 중지시키라. 분리시키고 가라앉히라. 아무것도 생각하거나, 느끼려고 하지말고 오직 마음 속 깊은 곳에 계신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라. 그 하나님을 느낄 것을 사모하고 기다리라. 감사함과 사랑의 고백을 하라. 아무것도 느낄 수 없더라도 계속 훈련하라.
빌4: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그리하면 무엇인가 새로운 평강, 하나님의 평강이 마음을 가득채우게 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것이 그 어떤 응답보다 더 귀한 것임을 알라. 그리고 감사하라. 기뻐하라. 계속 훈련하라.

4). 드리는 기도를 하라.
마6:8 구하기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구하는 것을 기도의 주제로 하지 말라. 구하다가 시작하고 구하다가 끝내는 기도를 하지 말라. 기도는 사랑하는 아버지를 만나는 것, 아버지와 관계를 맺는 것, 교제를 하는 것, 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아버지에게 감사하고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 주제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 아버지가 원하시는 것을 아는 것,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내 마음을 드리고, 내 목숨을 드리고, 내 뜻을 드리고, 내 힘을 드리는 것이 주제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나라이 임하옵시고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고, 뜻이 하늘과 땅에서 이루어지옵소서’ 하는 것이다.
무엇이 있어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 없는 것을 드리라. 무엇인가 있는 것, 강한 것을 드리기보다는 없는 것, 연약함을 드리라. 그래서 거기에 하나님의 것으로 채움받으려하라. 하나님의 것으로 채움받기 위한 드림, 이것이 드리는 기도이다.
단지 이러한 드림은 하나님의 것을 담을 수 있는 거룩한 드림이 되어야 한다. 가난하나 거룩한 심령에 거룩하신 하나님의 축복이 채워질 수 있는 것이다. 연약하나 거룩한 몸, 성별된 몸을 드릴 때, 강건함이 임하게 된다. 우리의 생명은 거룩함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의 부요도 거룩함에서 나오는 것이다. 가난하지만 거룩한 심령을 드리라. 거룩하고 청결한 마음을 드리라. 그리함으로 거기에 하나님의 것으로 채우심 받으라.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주시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받을 그릇이 준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그릇이 바로 우리가 드리는 것이다. 마음을 드리는 곳에 하나님의 마음, 평강, 능력이 임하게 되는 것이다. 감사를 드리는 곳에 감사할 조건이 임하고, 찬양을 드리는 곳에 찬양할 조건 즉 승리가 임하는 것이다.

2. 기도란

기도는 보혈의 공로로 하나님의 자녀된 자가 성령의 교통하심 가운데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면서 사랑의 고백, 찬양, 감사, 예배, 봉헌, 순종, 신뢰, 통회, 간청 등의 심정을 구체적으로 표명하는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께 마음을 올리는 것이다, 하나님에게 마음의 채널, 영적채널을 맞추는 것이다. 하나님을 나의 채널에 맞추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말에 넘어가지 않으신다.
기도는 좋으신 하나님,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을 부르는 것이다. 위로의 하나님, 소망의 하나님, 용서의 하나님.. 등등 자꾸 이 좋으신 하나님의 성품을 부르는 것이다. 그러면서 점점 기도가 깊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품을 자꾸 부르라. 하나님 좋으신 나의 아버지, 하나님.. 나의 아버지... 그러면서 심령의 변화가 무엇인가, 어떤 변화가 있는가를 느껴보라. 이러한 기도는 안에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하나님을 깨닫고, 그분이 좋으신 나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분에게 향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분을 향하여 사랑의 고백, 찬양, 감사, 예배, 봉헌, 순종, 신뢰, 통회, 간청 등의 심정을 구체적으로 표명하는 것이 기도이다. 그분을 향한 찬양이 기도이고, 그분에게 드리는 예배가 기도이고, 봉헌도 기도의 한 표현이다.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를 나타내는 것, 나와 하나님과 연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가 변해야 이 모든 것, 찬양도, 예배도 변하게 된다.

1). 마음으로 하고 영으로 하는 하나님과의 깊은 대화.

2). 하나님과의 친교,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 우리의 믿음생활은 누구와 친하게 지내는가가 중요하다. 부모와 친한 자녀는 결코 탈선하지 않는다. 신앙은 하나님과 깊은 관계, 생명의 관계를 가지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삶의 목표, 기도의 목표, 신앙의 목표요, 신앙의 핵심이다.

3). 하나님을 향하여 애정으로 가득한 움직임이며, 자녀가 부모를 찾고, 안기는 사랑의 행동이다.

4). 하나님의 현존을 의식하며 하나님과 대화하면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행위이다. 자꾸 입술로 시인하고 하나님의 현존을 느끼려고 노력하면 하나님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이 기도이다. 초대교인들은 늘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느끼며 살았다. 그러므로 모든 위협을 이기고 신앙을 지키고 승리할 수 있었다.

5).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이다. 하나님을 마음으로 느끼고 만나라.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 위로를 받으라.

6). 세상과 분리되어 현세적인 것은 잃어버리고 하나님께 마음을 집중하는 행위: 예수님의 광야에서의 기도의 모습을 기억하라.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내 앞에 오직 하나님만을 만나는 것이 제1계명이며, 이것이 바로 기도의 기본적인 자세이다. 이렇게 하나님과 만나는 것은 은혜요, 은사이다. 이러한 은사는 사모해야한다. 사모하지 않고 그것을 향하여 열려있지 않으면 하나님의 은혜는 임하지 않는다.

7). 하나님과 하나가 됨: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가 되는 것이다. 기도롤 통하여 무슨 일을 하려고 하지 말라. 그냥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8).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사랑의 고백: 기도시에 이러한 고백을 반복하라. 기도에서 감사와 사랑을 반복의 주제로 삼으라. 핵심으로 삼으라.

9). 기도는 의무로 하기보다 흥미, 기쁨으로 즐겨야 한다. 억지로 하는 노동은 피곤하게 하나, 즐거이 하는 운동은 힘이 나게 한다. 기도를 즐거운 운동을 하듯, 호흡하듯 몸에 익혀야 하며, 자연스럽게 해야한다. 마치 무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듯 그렇게 되어야 한다. 호흡이 힘들면 병자이다.

10).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를 아시고 이해하시며 염려하시고 응답하시는 사랑하는 아버지의 목전에 우리와 다른 사람의 무력함과 약함을 펼쳐놓는 것이다. 다른 것을 드리려하지 말고, 우리의 연약함을 드리려 하라. 기도는 우리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11). 목마른 사슴이 물을 찾듯 하나님을 찾는 영혼의 숨결이요, 헐떡임이다.

12). 하나님이 원치 않는 것을 억지로 빼앗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기 기뻐하시는 것을 구하고 받는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주시게 만드는, 받아내는 기술이다. 하나님이 주고싶어서 어쩔 줄 모르게, 즉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이다. 그러면 자꾸 하나님께서 나온다. 자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라. 기도를 통하여 무엇을 받으려고 하지 말고 내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려고 하라. 드리려고 하라.

13). 하늘의 영광가운데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훌륭하고 웅장한 하나님의 방송, 전능하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의 방송에 주파수를 맞추는 것이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가는 것이다. 내 뜻을 하나님에게 아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뜻을 내 마음에 받아들이는 것이다. 겟세마네의 예수님의 본을 받으라. 광야에서의 예수님의 기도는 귀신쫓는 능력을 간구하시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알려는 기도였으며, 육신을 입으심으로 말미암아 생겨나는 욕망을 끊어내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담는 기도였고, 세상에서 삶으로 말미암아 더러워지는 심령의 때를 씻어내는 기도였다. 내 방송에 하나님을 맞추려고, 끌어들이려고 하지 말라. 내가 그분에게 말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시게 하라. 내 뜻을 자꾸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자꾸 받아들이는 것이 기도이다. 그러므로 기도는 쉽기도 하고 또 어렵기도 하다. 내 주장을 하려면 어렵지만, 하나님의 뜻을 받으려면 아주 쉬운 것이다. 하나님의 주파수는 무엇인가? 오직 믿는 이만 하나님의 주파수를 알고 맞출 수가 있다. 하나님이 믿음을 가진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은 하늘에서 오는 것을 받아서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우리 안에 계시는 것이다.
기도는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가는 것이며, 나의 무력함을 그분에게 내어놓고, 그분의 강건함을 받는 것이다. 나의 답답함을 내어놓고 은총을 받는 것이며, 짐을 가지고 가서 그분앞에 내려놓고 그분의 평안함을 가지고 오는 것이다. 이러한 일은 오직 하나님을 믿는 자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다. 이처럼 기도는 내가 하나님께로 나가고, 하나님이 내게로 오시게 하는 것이다.
이 시대는 참으로 바르게 기도하는 사람을 필요로 한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을 쓰시려 하신다. 하나님께 쓰임받으려는 사랑은 기도로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안된다. 기도에 있어서 바른 방향을 잡으라. 깊은 차원의 기도, 하나님과 연합되는 기도를 하는 사람이 되라. 그러면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을 붙드시고 쓰신다. 기도로 마음이 하나님과 연합되는 사람을 하나님은 결코 버려두시지 않으신다. 반드시 들어 쓰시며, 이러한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다. 그러므로 끝까지 기도의 맥을 놓치 말라. 하나님께 쓰임받으려면, 바른 기도로 시작해서 바른 기도로 끝내라. 기도로 살다가 기도로 끝마치는 사람은 세상을 다 가진 사람이다. 기도로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은 지혜, 능력, 평안, 담대함등 모든 좋은 것을 다 가진 사람이다. 처음에는 내가 기도하다가, 나중에는 기도가 기도를 하게 하라. 그렇게 되도록 기도의 훈련을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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