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elite)에 대립되는 말은 ‘대중’(mass)이다. ‘정치는 대중이 아니라 엘리트가 해야 한다’는 생각은 엘리트에 의해 대중의 머릿속에 당연한 것으로 각인됐다. 스파르타의 엘리트 정치를 이상적 모델로 제시한 소크라테스, 그의 제자이면서 철인정치를 주장한 플라톤, 그의 제자이면서 민주주의를 열등한 정체로 여긴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엘리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알렉산더왕의 스승이니 그들은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학벌의 최대 수혜자이기도 했다. 조국 법무장관 후보를 둘러싼 정치 드라마는 그가 장관에 임명돼 1막이 끝난 것 같지만 주요 역을 맡았던 인물들은 무대에서 내려갈 생각이 없다. 세계 정치·언론사에 유례가 없을 만큼 선정주의가 난무한 드라마의 출연진은 어떤 이들이었나?
서울법대 출신 상당수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은 무엇인가? 첫째, 초·중·고에서 대부분 일등을 놓친 적이 없을 만큼 머리가 좋고 성취욕구가 강하다. 이런 이력은 지고는 못 배기는 경쟁지상주의와 자기가 주역이 되지 않으면 친구도 끌어내리는 자기중심주의를 키우는 토양이다. 나경원과 원희룡이 조국에게 퍼부은 독한 말들은 여느 대학 동기 간에는 나오기 힘든 것이다. 둘째, 선민의식에 빠져 남의 고통에 무관심하거나 공감능력이 떨어진다. 태극기 집회에서 세월호 유가족의 상처를 후비는 말을 한 김진태 의원 같은 이들이 많은 이유다.
셋째, 학교 공부가 다라고 생각한다. 대학시절 서울법대에 다니는 친구 하숙집을 방문했다가 고시과목 말고는 책이 전혀 없어 “왜 이렇게 책이 없냐”고 물은 적이 있다. “다른 책은 사시의 방해물일 뿐”이라는 그의 대답에 “죄짓지 말아야지, 너한테 재판받을까 겁난다”고 대꾸했다. 예전에는 인문학자인 목민관이 재판장이 되고 법전문가는 형방의 지위에 머물렀지만, 이젠 법전문가가 법조는 물론 정치까지 장악했다. 넷째, 학벌 등 기득권을 자식에게 물려주려고 편법도 불사하며 무한 노력을 기울인다. 부르디외가 말한 ‘재생산’의 핵심 기구가 학교라는 사실을 신봉하는 건데 조국도 나경원도 예외가 아니다. 학벌은 정·관계를 언론과 재벌로 연결해 공고한 기득권동맹을 형성한다. 그나마 조국은 “금수저는 반드시 보수로 살아야 하느냐”며 “사회개혁에 기여하겠다” 했으니 싸잡아 말할 수는 없겠다.
다섯째, 이들은 대개 검찰주의자다. 판사 출신 나경원조차 조국을 법무장관으로 임명하자 ‘역린을 건드렸다’고 했다. ‘역린’은 ‘임금의 노여움’을 뜻하는데, 대통령이 검찰의 역린을 건드렸다 한다.
이 글을 읽은 독자는 ‘일반화의 오류’가 심하다고 지적할 수도 있겠다. 서울법대는 직무에 충실한 법조인은 물론 황인철, 홍성우, 조영래 등 인권변호사를 대거 배출했고, 민주화 운동에 자신을 희생한 이도 많다. 그러나 한 전공, 한 대학 출신이 일국의 정치와 사법체계를 과점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명문대 출신은 현 체제의 승자이기에 대개 보수적이고 불평등에 관한 문제의식도 희박하다.
민주주의 요람인 영국도 명문 학교 출신이 요직을 과점하면서 브렉시트라는 엘리트 정치의 파탄을 겪고 있다. 예전에는 중졸인 캘러헌과 고중퇴 학력의 메이저 총리도 나왔으나, 이젠 이튼과 옥스퍼드 출신인 캐머런, 메이, 존슨으로 이어지며 극우 총리까지 등장했다. 불평등에 분노한 노란조끼 시위로 몸살을 앓는 프랑스에서는 엘리트 정치인의 산실인 국립행정학교(ena) 폐지론이 대두했는데, 제안자가 그 학교를 나온 마크롱 대통령이다. 우리도 국공립대학 통합 등 획기적인 교육체제 개편이 절실한 시점이다. 대중의 각성도 중요하다. 선거할 때도 사회를 위해 살아온 이력이 아닌 학벌이 선택 기준이 돼서는 안된다.
이봉수 |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