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적 설교로 돌아오라! 남서울교회 화종부 목사님 편

추천 : 26  |  비추천 : 0  작성자: 관리자  |  2016-03-17 20:15

한국교회는 침체의 터널을 지나 쇠퇴의 내리막을 지나고 있습니다. 의식있는 여러 목사님들과 기관들이 어떡하든 대안을 찾으려고 애를 쓰지만, 대세의 물줄기를 막기에는 버거워 보입니다. 오랜 동안 청년사역에 헌신하셨고, 복음적 강해설교로 강단의 개혁을 주장하는 남서울교회 화종부 목사님과 한국교회의 현안에 대해서 말씀을 들어보겠습니다.


 

 (남서울교회 화종부 목사님)

 

1. 작년 11월 합동교단에서 개최한 <총회교육부 목회자 세미나>에서 한국교회 위기는 강단의 위기에서 왔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또한 교회만의 메시지를 선포할 때 세상이 반응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강단의 위기교회만의 메시지가 무엇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가장 중요한 것이 지금 한국교회의 강단에서 선포되는 대부분의 메시지가 성경에 충실한가, 복음에 충실한가입니다. ‘강단의 위기라는 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를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주님에 대한 설교를 하는 빈도수가 얼마나 될까요. 제가 볼 때 대부분이 윤리설교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예수님과 복음이 선포되지 않은 상태에서 윤리설교를 하니까 너무나 자연스럽게 일반윤리를 전하게 되겠죠. 기독교만이 가지고 있는 그 독특하고 특색있고 그러면서도 굉장히 현명한 그런 윤리가 안 나온다는 말입니다.

 

복음이 선포되어야 자연스럽게 그 복음의 사건에 근거해서 복음적인 윤리 설교가 나오는 것입니다. 일반론적인 윤리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덕을 끼친다든지, 모범이 된다든지 이런 규범을 넘어서지 못하는 보편적 윤리를 자꾸 설교하게 되는 것은 문제가 됩니다. 복음을 가르쳐줘야 복음적인 윤리가 선포되는 것입니다.

 

광범위하게 말하면 성경적인 것 같지만 복음에 충실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본문에 대해 충실한 설교가 지금 너무 적은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런 면에서 본질적인 내용이 너무 약한 설교들이 많습니다. 이것이 결국은 한국강단의 위기를 초래했고, 윤리의 부재를 만들어내고, 윤리의 부재가 결국 조국교회가 비난의 대상이 되게 하는 것으로 너무나 자연스러운 수순을 밟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성경의 본문을 열지 못하니까 성도들이 말씀에 순종한다기보다 그저 목회자의 말에 순종하는 것이 신앙인 것처럼 믿게 되지요. 목회자 자신이 말씀에 충실하지 못한 것도 한국교회에 윤리부재의 핵심이라고 생각됩니다.

일부 대표적인 목회자들이 윤리적인 타락이라든지 비난받을 만한 행위를 한 것뿐만 아니라 교회 보편이 말씀과 본질에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게 한국교회 문제의 핵심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그런 부분을 다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서울교회 예배전경)

 

2. 저도 어렵다고 느껴지는데 강단의 문제는 신학의 문제와 연결됩니까? 어떤 신학을 어떻게 배우고 어떻게 수용하는가에 따라 강단의 문제에 실마리가 풀릴 수 있지 않습니까?

 

강단의 문제와 신학이 긴밀한 관계가 있지요. 신학을 바르게 배워서 정직한 목회와 신학을 하는 것이 정말 선결과제라고 봅니다. 교단이 중요한 만큼 신학적인 정직성, 교단이 표방하고 있는 것과 실제로 목회자들이 그것에 따라 목회를 하고 개인뿐만 아니라 성도들을 그런 관점에서 길러내는가도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저도 신학교를 졸업했지만 그 기간 안에 다 배울 수는 없는 거라고 봐요. 졸업을 하고 목회를 하면서 충실하게 신학적인 연구를 하면서 목회를 해야 되는데, 연구가 너무 모자라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표방하는 신학의 문제만이 아니라 신학을 충실하게 담아낼 수 있도록 연구하고 개인경건을 갈고닦아내야 어느 순간에 빛이 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과정이 너무 지금 많이 없지요.

 

삶으로까지 전이되지 않는 신학, 그 이유가 뭘까요?

 

어떤 면에서 우리 한국적인 문화도 영향이 좀 있다고 보이죠. 우리 한국은 실제와 표방이 다른 게 참 많은 것 같지 않습니까? 정치를 보나 사회 일반을 보나 모든 중요한 결정은 다 윗선에서 이루어지고 형식적인 프로세스가 굉장히 많은 경우를 봅니다.

 

영국에서 목회를 하는데 한 교수님이 목사님, 학회를 갔더니 진짜 학회를 하더군요.”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무슨 말이냐, 자기들은 학회에 가면 학회는 형식적으로 하고 뒤에서 음식을 나누는 자리에서 진짜 무슨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죠. 모든 구조가 이중구조인 겁니다.

 

신학도 제가 볼 때는 앞에서 말하는 내용에 비해 정말 실제로 자기가 고백하고 살아내는 것에 있어서의 치열함이 결여돼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가 정말 신학을 상고(詳考)하고 정직하게, 치열하게 하나님 앞에서 그 주제들을 다루어내야 합니다.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우리를 보고 계신 하나님 앞에 정직하리라는 자세들이 필요할 것입니다. 말하자면, 신학은 너무 정통적으로 표방을 하는데 바깥으로 말은 은혜롭게 하면서 불의를 눈감아주자 하는 식의 가면을 써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에서 표리부동을 버려야 하지요.


  

3. 목사님은 강해설교자로 알려져 있으십니다. 옥한흠 목사님을 비롯해 복음주의 목회자들은 거의 강해설교자들이었습니다. 강단에서 설파되는 강해설교가 잘못 전수될 때, 사회와의 소통단절, 성도들의 사회성에 문제를 줄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설교와 상황과의 연결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전혀 동의할 수 없는 전제라고 생각해요. ‘성경에 충실한 메시지를 한다그럴 때, 목사님이 얘기하신 것처럼 상황이해가 부족할 것이다라는 생각이 너무 쉽게 들어와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성경이 개인적인 삶을 가르치는 책이 아니고 인생의 질고와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보여주지 않습니까. 이것보다 더 사실적으로 상황에 대한 문제를 다루어내는 책은 없는 것이죠.

 

강해설교에는 성경을 충실하게 강해하면 사회의 현상, 혹은 일상과 대비가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밖에 없지 않을까이런 전제가 벌써 들어있다는 거예요. 성경이 이런 인생의 문제를 다룰 때 어떤 방식으로 다루고 있는지 눈이 열려야 합니다.

 

목사로서 어줍지 않게 세상문화를 섭렵하려고 하면서 우리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범위가 흐려졌습니다. 목회적인 성경 전문가로서의 보이스를 거의 못 내고 있습니다. 저는 사회학을 공부했던 사람으로서 너무나 충격을 받았던 일이 있습니다. 고신측의 정근두 목사님이 유학을 마치고 오셔서 설교를 하는데 나름 정치학을 배워서 식견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저보다 더 탁월한 정치에 대한 강의를 하셨을 때, 굉장히 쇼크를 받았어요.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 결국은 말씀이 그렇게 열어주는 거거든요.

 

강해를 충실하게 한다고 할 때는 이것이 정말 지혜와 진리이기 때문에 제일 실용적이고 사실적으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어떤 좁은 종교의 세계에 갇히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실존적이고 삶 자체를 관용하게 만드는 진리가 된다는 것이죠.

 

하나님의 말씀을 꾸준히 강해한 설교자들은 굉장히 실용적이에요. 사실적이고 삶의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저 같은 경우는 전세금 같은 것을 설교하거든요. 설교를 하면서 2년 계약에 전세금을 5천만원 올리는데 이게 가능한 것이냐, 대한민국에서 두 부부가 다 직장생활을 하며 2년 동안 모아 5천만원을 만들 수 있는 부부가 몇이나 되느냐, 당신들은 달라야 된다고 말합니다.

 

그런 설교를 마치고 나니까 한 성도가 왔어요. “목사님, 내가 신앙생활에 우선순위를 두기 위해서 집을 이사를 왔어요. 여기 집에 올 때 임대인이 5천만원을 올렸습니다. 그래서 저도 어쩔 수 없이 원래 집에 전세줄 때 5천만원을 올렸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렇게 살면 안 되지.” 성도가 다시 말하기를 제가 어떻게 해야 됩니까?” 제가 말하기를, “5천만원 올려달라고 들었을 때 당신이 얼마나 난감하더냐, 그게 감당할 수 있는 액수가 아니지 않냐, 그럴 때 당신은 이쪽에서 올렸으니까 어쩔 수 없이 5천만원 올렸다고 하지만 왜 자꾸 이런 어리석은 악의 구조들이 반복되게 하느냐, 당신이 그렇게 고통을 겪었으니 나는 상대에게 덜 고통을 겪게 해야 되게 할 게 아닌가, 당신이 2천만원만 올리십쇼.” 했습니다.

 

제가 그렇게 애기를 하니까 성도가 목사님, 그럼 제가 3천만원을 어떻게 합니까?” 제가 말하기를 “3천만원 은행 융자를 내고 이자를 내라. 그 정도 수고도 안하고 이 땅을 살라고 해서는 안 된다.” 저는 그런 현안들이 실질적으로 진리와 본문과 연관되어 있다고 믿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아주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할 수가 있어요.

 

죄송하지만 제가 정치를 보면서도 답답해서 한 번씩 설교를 합니다. 저는 여당편도 야당편도 아니지만 지도자는 모든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유익하고 사랑하고 자기희생이 되어야 지도자다라는 말을 하면서, 우리는 언제나 그런 지도자를 가져서 이 조국 땅에 있는 수많은 에너지가 건강하게 흘러가도록 만들까 염원하며 본문을 다룰 때 같이 말합니다.

 

성경이라는 것이 종교적인 영역이라거나 사람의 관념의 영역을 다루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물론 출발은 거기서부터 하는 것이지만 그런 진리를 근거로 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인격과 삶을 다루어냅니다. 우리의 사람 됨됨이도 가꾸어내고 가꾸어진 됨됨이를 갖고 바뀐 삶을 만들어내는 것이지요. 삶이 중요한 것 이상으로 사람이 바뀌어야 되고 바뀐 삶과 바뀐 행실이 중요한 것입니다.

 

설교의 내용과 본질이 약하면 그런 것들을 묶어내지 못하는 거예요. 분절돼 있는 것이죠. 신학적인 치열함, 본문적인 정확성 이런 것들이 많이 결핍되니까 굉장히 종교적인 것 같지만 성경과 동떨어져있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입니다.

 

제가 주식투자하는 성도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여러분이 주식투자하면 우리교회에서는 직분 못합니다. 투자야 얼마든지 좋죠. 회사와 기업이 그런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인데, 그거 자체를 어떻게 반대하겠습니까. 그러나 한국사회처럼 단타위주로 대박을 꿈꾸며 주식투자하는 것은 안 된다, 그런 거리감들을 분별할 수 있도록 합니다. 신앙과 진리라는 것이 삶과 그대로 연결되어 있는 것인데 이것을 분절시킬 수 없는 것이죠.



  

4. 목사님께서 교회사를 전공하셨기에 질문을 드립니다. 한국교회의 문제는 강단의 문제도 있지만, ‘역사와의 문제’(한국근대사)도 분명 있다고 생각됩니다. 신학교 가시기 전까지 정치인, 대통령이 꿈이셨다고 들었습니다. 젊은 시절 1970-80년대 어두운 한국정치사 한가운데를 지나셨는데, 그 가운데 교회의 모습도 생각하셨으리라 짐작됩니다. 어떻게 보시는지요?

 

사실 처음에 복음이 한국 땅에 왔을 때는 모두가 평양감사를 가기 싫어할 만큼 성도들이 너무 정직하고 타협하지 않았지요. 초창기에는 빛처럼 소금처럼 아름답게 신앙이 반짝거리며 드러났는데, 신사참배를 거치면서 비참한 굴곡을 경험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되니까 고난이 없는 기독교라는 참 어리석은 기독교가 이 땅에 자리잡게 되었죠. 사실 기독교는 어디나 피의 종교거든요. 어디나 고난을 통과하게 됩니다. 그러나 조국교회는 고난이라는 주제가 없었어요.

 

신사참배 때, 코스트를 지불해야 되는 결정적인 때에 변절된 거죠. 그래서 6.25를 거치며 많은 피를 쏟았습니다. 순교적인 피라기보다 강제적인 피였습니다. 그때라도 잘 서면 좋았었는데, 레드 콤플렉스가 또 생겼어요. 북한에 대한 끝없는 분노와 미움, 사랑하는 사람들이 총칼에 맞아 죽었으니까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죠. 그래서 어떤 면에서 군부가 독재할 때 친정부적이고 친우파적인 그런 조국교회가 연관선상 하에 계속 반복됐다고 봅니다.

 

경험적으로 공산주의를 겪은 사람들로서는 비난을 할 수 없는 부분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어쨌든 저희들 세대는 좌든 우든, 친정부든, 반정부든 이런 게 다 어리석은 개념이라고 봐요. 정말 말씀이 가르치는 것을 정직하게 여에 있는 분이든, 야에 있는 분이든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교회에도 국회의원으로 계신 분이 있지만 제가 어느 누구를 놓고 지지하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 성도기 때문에 교묘하게 지지하는 것도 절대로 안 합니다. 이분들이 어쨌거나 좋은 성도로서 좋은 정치가로 자라주기를 원합니다. 여도 있고 야도 있고, 충분히 개인적으로는 지지하지만 교회이름을 걸고는 절대로 안합니다. 성도들의 양심을 믿는 것이지요. 성도들을 잘 일깨워서 그런 부분들을 잘 분별하는 사람들이 되도록 만들어내고 싶어요.

 

제가 특별새벽기도에서도 말합니다. 고향사람이라고 찍고, 같은 대학이라고 찍어주고 그러면 안 된다, 이제 그런 시대는 끝내야 된다. 하나님 앞에 딱 서서 정직하게 양심으로 투표하고,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분별하고 사회와 사람을 정말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을 세워야 된다. 그런 개념들을 가르치고 성도들이 결정하게 하죠.

 

교회는 사실 사람을 아첨하거나 사람이 듣기에 좋은 말만 하는 공동체가 아닌데, 한국교회는 그런 면에서는 마음 아프지요. 정치가들을 축복하고 정치가를 길러내면서 정치가들을 통해서 세상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잖아요. 교회는 그런 것으로 힘을 갖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교회는 약한 사람들과 같이 있고, 눈물 흘리는 사람 옆에 서서 그 눈물을 만져줘야 교회다운 힘을 갖게 되요. 지난 30년 동안 조국교회는 그런 면에서 볼 때 가진 자, 강한 자, 힘있는 자, 정권에 아첨하면서 정말 가난하고 약하고 아픈 사람들 옆에 못 있었던 거죠. 그러니까 지금 딱 당연한 대가를 지불하는 겁니다. 지금이라도 제대로 가야되는 것이죠. 지금이라도 자꾸 달라져야죠.

 

저는 북한사역을 하고 싶은 목사거든요. 북한을 전공하는 게 제 원래 정치학 공부할 때의 꿈이었기 때문에 이 교회 올 때 제가 참 기뻤어요. ‘아 북한사역 마음껏 해도 되겠구나.’ 늘 바램이었죠.

 

이 시대가 얼마나 다른지를 우리 대통령께서 너무 모르는 것 같아요. 이 시대는 민과 관이 같이 일을 해야 될 때예요. 그래서 관에서 닫으면 일부 뒤에서 민이 일하는 걸 열어주고 믿어주고 지지하고 해야 합니다. 그래야 관이 가지고 있는 획일성과 신속성, 민이 가지고 있는 창의성과 자발성이 다 살아나야 나라가 확 피어날 텐데 말입니다. 북한이라는 주제를 붙들고 계속 획일성과 신속성만 주장하려고 하는 모습이 안타까워요. 저는 목사에 불과하지만 시대가 달라지고 있고 젊은 세대들이 완전히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 보이거든요.

 

5. 청년 세대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현 상황에서 여러 진단들은 나오지만 특별한 대안은 없습니다. ‘속절없다라고 표현하면 정확한 표현일 것입니다. 오래도록 청년사역을 감당하셨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똑같은 주제라고 생각해요. 제가 30년 동안 청년사역을 했거든요. 군부독재 시대 때 제가 신학을 했고, 많은 청년들이 그때 5.18 광주사태를 보면서 절망하고 교회를 떠났지요. 아이들이 교회가 왜 그렇게 소극적이냐며 교회를 비난하고 했는데, 저는 아이들의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계속 말씀을 강해하고 성경에 근거한 충실한 성도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지금 단칼에 사회를 바꾸기보다 때가 될 때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을 길러내야 된다고 몸부림쳤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갖고 있는 확신은 여전히 변함없습니다. 말씀을 본질적으로 바르게 가르치고 성경을 바르게 가르치면 아이들로부터 우리가 생각지 못한 전혀 다른 큰 그림이 나옵니다. 제가 청년사역 30년을 하면서 제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애들 데리고 사회참여를 가르친 것도 아니고, 연탄 나르도록 가르친 것도 아니고, 밥을 퍼주도록 가르친 것도 아닙니다. 저는 최선을 다해서 성경을 충실하게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제가 기도했던 그림은 이 아이들이 그런 말씀을 가지고 자기자리에서 밥도 퍼주고 해외선교도 나가고 북한도 돕고 눈물 흘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제가 길렀던 아이들 중에 박창수라고 토지공개념 하면서 평생 사는 녀석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아이들이 나올 때 너무 기뻤어요. 복음에 충실하면서도 현장 감각을 가지고 있지요. 그걸 목사인 내가 나서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성경을 충실하게 가르치고 그것을 삶의 자리에서 배우는 아이들이 삶으로 살아내고 하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청년사역을 30년 해오며 보니 한 번도 안 된 적은 없습니다. 우리는 밖에 나가 빈손으로 되돌아온 적이 없습니다. 아이들이 늘 왔고, 제자들교회할 때도 그 조그만 교회에 청년들이 많았습니다.

 

사람들이 청년사역이 안된다고 자꾸 말합니다. 그러나 정말 본질과 내용이 너무 없기 때문에 아이들이 좌절하는 것이지, 아이들이 교회에 와서 , 세상과 다르구나느끼면 아이들은 정말 모든 걸 다 걸면서 숱하게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세상과 다르지 않고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이야기만 하면 되겠습니까. 그것도 대부분 너무나 우측에 치우친 이야기를 하지요. 아주 소수가 좌측에 있는 이야기를 하지만 교회의 이름으로 좌측에 있는 이야기를 하는 게 얼마나 한계 투성입니까. 저는 그런 면에서 교회가 충실하면 청년들이 틀림없이 돌아온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제가 강남 한복판에 와 있지 않습니까. 처음에 와서 아이들 강단에 섰는데 좌절했어요. 30년 목회를 했던 목사로서 아이들은 마인드가 완전히 딴 데 있는 것이 절망이 됐습니다. 어쨌거나 아이들에게 성경을 부지런히 가르쳤지요. 자기들끼리만 드리는 예배를 멈추게 하고 장년과 같이 예배를 드리게 했습니다. 설교를 같이 듣게 했어요. 요즘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날 만큼 사랑스럽습니다. 아이들이 교회에 원하는 것은 교회만의 고유한 아름다움인데, 교회는 자꾸 세상을 흉내 내려고 합니다.

 

교회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을 바로 잡아낼 수 있는 교회의 색깔과 아름다움이지요. 그런데 교회는 계속해서 어줍지 않은 세상 흉내를 냅니다. 교회가 인문 사회과학 공부하면서 세상을 흉내 내고, 아니면 아주 보수 골수적인 희한한 생각만 하면서 사회로부터 더 멀어지니까 청년들이 누가 오겠습니까.

 

청년들이 교회에 왔는데 , 여긴 정말 다르구나. 세상이 갖고 있는 가치와 너무 다르구나하면 틀림없습니다. 제가 청년사역을 오래 하니까 사람들이 저에게 묻습니다. “목사님, 요즘 세대들 소망이 있습니까? 정말 생각이 다릅니다.” 저는 30년 청년사역을 했던 사람으로서 늘 그런 분들에게 이야기 합니다. 우리는 잘해도 동양에서 몇 등하는 세대 아니냐, 우리는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70년대 80년대를 지나왔다, 그래봤자 우리 세대는 기껏 동양에서 몇 등 아닌가. 그런데 지금세대들을 한번 봐라. 전 세계에서 1등하는 애들이 나오고 있다. 복음에서만 그것을 못하고 있는데, 왜 그런 문제의식을 안 갖고 아이들이 뭐 안 되는 것처럼 생각하느냐. 지금 아이들을 만나면 다르다. 정말 음악에 그렇게 필이 꽂히고 영화에 필이 꽂히고 세계적인 한류가 흘러가는 것처럼, 복음에 필이 딱 꽂히면 우리가 흉내 낼 수 없는 아이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남서울교회 청소년문화축제)  


역사학을 공부해서 보면 모든 나라의 역사가 그렇습니다. 업이 있고 다운이 있고 업이 있고 다운이 있어요. 저는 솔직히 30년 전부터 교회가 이렇게 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메시지가 전부 예수 믿고 잘사는 게 아니었습니까. 예수 믿고 좋은 대학 가고 영향력 있게 되는 것이 전부였어요.

 

예수 믿고 고난 받고, 예수 믿고 천천히 가고, 예수 믿고 돌아가고, 예수 믿고 약한 사람들의 벗이 되는 게 성경이 이야기 하는 건데, 왜 그렇게 예수 믿고 잘 사는 이야기만 했는지요. 예수 믿고 잘되는 이야기, 자식 잘되고 나 잘되고 병 낫는 이야기는 30년 전부터 고민했던 주제입니다. 그것의 열매가 이제 나오는 게 아닙니까. 그런데 다 지금 문제랍니다. 제가 볼 때는 30년 동안 그렇게 뿌려놨다는 거예요. 그리고 지금 열매를 거두고 있거든요. 이제라도 바로 뿌려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언젠가 하나님이 신실한 신앙의 결과를 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6. 질문을 좁혀서, 목사님께 개인적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목사님께서 내수동교회에서 성장하셨고 내수동교회에서 청년사역을 하셨습니다. 목사님과 내수동교회는 무엇이고, 목사님께 정신적 신앙적 토양이 된 멘토가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그때의 4년이 제 40년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돌아보면 돌아볼수록 너무 감사한 시간이죠. 거기 공동체에서 아주 신실한 형들을 봤습니다. 제가 이전의 모든 교회에서는 예수 잘 믿는다는 사람들을 만나면 겁이 났습니다. 이상하게 뭔가 도움 받고 싶지가 않고 너무 종교적으로 왜곡돼 있는 사람들만 보게 됐지요. 소위 기도는 많이 하는데 성격은 못됐고, 뭔가 신령하고 믿음이 좋은 것 같은데 남 판단하는 이런 사람만 보다가 내수동에 가서 처음으로 정말 남들을 위해서 희생하는 형들을 봤습니다. 복음을 몸으로 실천하는 많은 형들이 있었죠. 대부분의 교회는 자매들이 신실한데 거기는 형제들이 더했어요. 그 모습을 보면서 , 나도 형들처럼 믿어야지. 나도 형들이 만난 하나님을 만나야지.’ 했던 때가 내수동교회 시절입니다.

 

그리고 정말 좋은 목사님을 만났죠. 말씀에 서서 목회를 잔재주로 안하고 진정함과 말씀으로 목회하신 박희천 목사님. 그 어른 밑에서 있었던 4년이 제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겁니다. 박희천 목사님, 내수동교회의 신실한 형들이 제 멘토였습니다. 그리고 목회를 할 때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 저렇게 하면 성공한다 이런 것을 쫓아다녀본 적이 없습니다.


  

아는 분은 아실 텐데, 정치인에서 목회자로 턴(turn)한 계기를 말씀해 주십시오.

 

특별한 계기는 사실은 없습니다. 정치를 한번 해보려고 했는데 주님을 알면 알수록 제가 너무 무익하고 약하고 죄많음을 보고 절망하게 되는 거예요. ‘내가 무슨 남을 돕는 사람이 되겠냐.’ 이렇게 절망하고 있을 때, 하나님이 저를 신학교로 부르셨어요. 그래서 이런 불량품도 괜찮으면 목회를 해야 되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목회자로 왔죠.

 

사실 정치를 꿈꿨던 것은 방법으로 꿈꿨던 것이지, 정치가 생의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제 생의 목적은 예수를 위해서 사는 것이지요. 그래서 정치의 길을 선택해야겠다고 생각할 때도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정치를 하고 싶었던 거지, 정치를 해서 결과적으로 주님께 보탬이 되겠다는 뭐 이런 것을 생각했던 것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저는 주를 위해서 살되 정치라는 방법을 통해 주님께서 나를 부르신 것 같다고 믿었기 때문에 당시 완전히 소외되었던 통일이라는 주제, 북한이라는 주제를 공부하려고 생각했습니다.

 

신학교에 들어간 후 많은 친구들이 우리 전도사님은 180도 완전히 다른 길로 왔다, 정치를 원하다가 목회로 왔다 그랬을 때, 한 번도 그런 생각에 동의해본 적이 없어요. 정치나 목회나 이게 중요한 게 아니고 주를 위해서 사는 방법이 달라졌을 뿐이니까요. 주를 위해 살고 싶어하는 근간은 똑같았어요. 그래서 저는 아브라함 카이퍼나 라이놀드 리버처럼 좋은 정치가가 되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싶었는데, 하나님은 성경을 강해하고 목양을 해서 하나님을 섬기라 그러셨기 때문에 목표가 바뀌지 않고 도구만 달라진 것이죠. 하나님이 제 적성에 너무 잘 맞는 길을 주셨어요.

 

7. 마지막 질문입니다. 남서울교회 4년째 사역하고 계십니다. 어떤 비전을 실현하고 계시며, 미래 목회를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계십니까?

 

남서울교회가 좋은 교회로 드러나고 인정받고 하는 것은 지난 40년 동안 했기 때문에 더 이상 지향할 바가 아니라고 봅니다. 당회에서 장로님들한테도 늘 말씀드립니다. 이 교회를 건강하게 키워서 조국교회를 위해 마음껏 쓸 수 있도록 우리 교회를 내놓을 수만 있으면 좋겠다, 저보고 그 일을 하라고 우리 교회에 보내셨다. 그래서 남서울교회로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조국교회가 마음껏 쓰고 마음껏 기뻐할 수 있는 교회가 되도록 남서울교회를 내놓자. 남서울교회 좋다는 말을 듣는 것보다 좋은 많은 교회가 생산되도록 하자고 합니다.

 

제가 우리 부목사님들한테 늘 농담반 진담반 얘기하는 게 있습니다. 너희들 중에 운 없는 사람은 담임해서 나가고, 나머지는 다 개척해서 교회를 떼 나가라. 많은 건강한 교회를 분립 개척해서 교회를 낳는 교회, 그래서 우리보다 더 훌륭하고 우리보다 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많은 교회들이 우리 교회들을 통해서 나오기를 바랍니다. 교회가 무슨 정책을 하나 결정할 때도 할 수 있으면 조국교회를 살찌울 수 있는 결정을 하자는 말이지요.

 

우리교회 바로 옆에 땅이 하나 나왔는데 우리 교회하고 딱 똑같은 땅이에요. 200. 우린 460평이고, 460평 이 1층짜리 건물에 지금 아이들까지 한 4600-4700명이 모이고 있습니다. 완전히 북새통이죠. 저 땅이 생기니까 장로님들이 이거 헐고 저거 새로 7층만 올리면 모든 게 해결된다고 하셨어요. 제가 딱 부임해 왔는데 반반 딱 나뉘어서 그런 생각이 막 오가고 있었어요. 그래서 여쭸지요. “장로님, 여러분의 의견이 충분히 이해가 되는데 조국교회가 어떻게 생각할까요?” 이렇게 물으니까 반반 나눠서 의견이 있던 분들도 하나같이 다 가만히 계셨죠. “한국교회는 아무도 안 좋아할 겁니다.” 양쪽이 답했어요.

 

그래서 제가 이야기했습니다. 우리가 언제 조국교회를 기쁘게 할 수 없는 일을 했냐, 우리가 아무리 필요해도 조국교회를 살찌울 수 없으면 우리는 하지 않는다. 그리고는 본 건물을 헐어 짓지 않고 새 땅에 교육공간만 넣어서 아이들에게 유익한 공간을 만들자로 의견을 조율했어요.

 

교회의 정책이나 목표를 수립할 때 언제든지 한국교회를 섬기고 기쁘게 할 수 있는 결정을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장로님들하고 제일 기대하는 것은 사람을 잘 길러서 조국교회에 보내주는 것이에요. 좋은 목회자들을 길러서 조국교회 보내고, 좋은 성도들을 길러내서 파송하고 조국교회를 살찌우는 게 이제 우리 남서울을 향한 주님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세 가지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하나는 개인적으로 평생 몸부림쳐왔던 본문 강해집을 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후배들을 섬기고 싶어요. 두 번째는 남북 70년이나 서로를 원수같이 대하는 이 어리석은 나라에 평화가 정착되고 자유로운 왕래가 일어나고 주님의 때에 통일까지 가는 북한 사역에 힘쓰는 것입니다.

 

그렇게 북한 사역을 다 해서 진짜 하고 싶은 것은 세계 선교입니다. 제가 하나님 앞에 늘 사모하는 것이죠. “하나님, 그 바톤 우리에게 주십쇼.” 저는 계속 기도합니다. “우리가 전 세계 교회를 섬길 수 있도록 세계 선교를 우리가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쇼.”

 

솔직하게 말하면 현재는 세계 선교 우리가 못합니다. 왜냐면 능력도 너무 안 되고 볼륨이 안 됩니다. 그런데 북한이 있습니다. 북한보다 더 좋은 선교자원들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북한이 있고, 중국이 있습니다. 북한과 중국을 끼고 이분들과 함께 세계로 가면 조국교회가 선교에 정말 크게 역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 일을 하고 싶은 겁니다. 그래서 민족주의자로서 통일을 생각하는 게 아니고 세계 선교의 지름길이라고 봅니다. 그런 일에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남서울교회를 이끌어가려고 합니다.


  

( 인터뷰 정리 : 목사월드 정 진 목사)

 

* 귀한 시간과 말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화종부 목사님 약력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총신대학교 졸업

영국 에딘버러대학 교회사 석사


내수동교회 대학부 전임

옥스포드 한인교회 담임목사

제자들교회 담임목사

현) 남서울교회 담임목사

현) WEC 이사장

현) GBT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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