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준21>2017세미나 강사인터뷰-임성빈총장님(장로회신학대학교)

추천 : 4  |  비추천 : 0  작성자: 관리자  |  2017-06-05 10:47

<4차산업혁명시대를 맞는 한국교회의 대응>

"한국교회 위기의 근원은 신앙의 문제다."

"목회자의 통찰력으로 시대를 읽어라."

"목회자의 경건의 능력과 사회적 소통"


  

(장로회신학대학교 임성빈 총장님)


1. 그동안 기독교윤리학자로서 한국교회 개혁을 위해 여러 대담과 학술토론, 저서들을 통해서 대안을 제시해 오셨습니다. 한국교회 문제의 총체적인 원인을 윤리적, 사회적, 신학적, 역사적 측면에서 어떻게 볼 수 있는지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저는 한 사람의 신앙인의 입장, 신학자의 입장에서 교회의 위기는 곧 우리 신앙의 위기라고 생각을 합니다. 교회의 위기라는 것은 한마디로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다는 말이죠. ‘교회답지 못하다는 말은 사실 교회가 사회적 역할을 제대로 못한다는 뜻도 있지만, 제일 근본적인 문제는 교회가 교회에 오는 사람들에게 신앙의 진수를 제대로 나누지 못하고 있으며, 그러므로 그들을 올바른 신앙으로 양육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역할이라는 측면에서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다는 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본질적인 문제와 과제가 연결돼 있습니다. 예배와 교육, 선교, 봉사, 친교 이런 면에서 기능을 제대로 못하는 것이 교회의 교회답지 못함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이러한 기능적인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이죠.

 

, 그것은 신앙의 문제라고 생각되어집니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연계가 돼야 하잖아요.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다는 것은 곧 교회의 머리가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말이고, 교회가 그리스도의 뜻대로 행동하지 못한다는 게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되는 것이죠.

 

결국은 교회를 이루는 우리 신앙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신앙인답지 못한 것과 직결되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론은 인간론, 구원론과 직결되고, 성화론과 직결이 된다고 보여집니다. 그래서 해답은 우리 자신이 신앙인다운 신앙인이 되어 가는 게 해결과제일 것입니다.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주님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뢰와 충성이 온전히 예수님을 향한 신뢰와 충성으로 좀 더 순도가 높아져간다면 그만큼 우리는 신앙인다운 신앙인이 되어갈 것이고, 신앙인다운 신앙인이 되어가는 만큼 우리의 교회도 교회다운 교회로 더욱 성화되어 갈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특별히, 신학교 총장님이시기 때문에 여쭤보겠습니다. 교회문제의 뿌리는 신학교에 있지 않습니까?

 

교회를 이룰 때 우리 개개인이 다 신앙인다운 신앙인이 돼야 교회가 교회다워지는 것이지만, 현상적으로 봤을 때 교회리더의 위치에 있는 섬김이로서의 교역자의 책임은 막중하다고 할 수 있죠. 목회자들이 제대로 신앙인으로서의 모범을 보이고, 그렇게 신앙을 가르치고, 또한 삶의 모범적 모델로서 살아갈 수 있었다면 좋은 영향력들을 많이 미쳤을 터인데, 어찌 보면 그렇지 못했어요.

 

오늘날 한국교회가 교회답지 못하다는 얘기를 듣는 것은 1차적으로는 교역자들의 책임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죠. 또 교역자들이 그렇게 책임을 못한 데에는 신학교가 상당한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목회자들의 기본적인 신학형성이 신학교를 중심으로 정리되고 이루어지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그것을 제대로 못한 만큼 신학적인 문제가 목회현장에서 일어났다고 한다면, 그 책임이 신학교에 있다는 데 대해서 변명할 의도가 추호도 없습니다.

 

총장님, 시스템적인 문제인데요. 실천신학이 약하다는 부분도 있고, 일방적인 서양신학을 수용한 부분도 있고, 뭔가 교회가 괴리가 많다는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 않을까요?

 

교회와 신학교가 괴리감이 있다 하는 것은 옛날부터 계속적으로 내려오는 우리의 지속적인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신학교에서도 이 문제를 가지고 고민들을 많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예컨대, 총신대도 7년제 커리큘럼이 다시 개편됐다는 얘기를 들었고 저희도 커리큘럼의 개편을 위해서 지속적인 노력을 해오고 있어요.

 

저희는 과정별 특성화를 요구하고 있어요. 신학교라는 것은 두 가지 목적이 같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성상 하나는 대학교, 하나는 신학교. ‘대학교라는 것은 일반 학문적인 수준과 기준에 부합되는 사회적 지도자를 양성해 내야 될 목적이 있고, 대한민국에 있는 교육기관으로서 우리가 감당해야 될 하나의 책무입니다. 신학교라는 것은 특별히 이곳이 교단 신학교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교회 그중에서도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에 속한 교회들을 잘 섬길 수 있는 지도자들을 양성해야 되는 책무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사회지도자와 교회지도자를 함께 양성해야 될 책무가 신학대학교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둘 사이에 일종의 긴장관계가 있을 수 있어요. 너무 한쪽으로 사회지도자양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신앙적인 면이 약화될 수 있고, 교회지도자라는 것을 너무 좁게만 해석하면 사회와의 소통 측면에서 약화될 수 있는 게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신학대학교의 목적은 이 둘의 조화를 이루는 것인데요, 그렇기 때문에 신학대학교에는 신학대학원만 있는 게 아니고 대학교와 신학대학원과 대학원이 있는 것이지요. 대학교는 사회를 섬길 수 있는 지도자 양성이 우선적인 목적이에요. 그리고 신학대학원은 본격적으로 교회를 섬길 지도자를 양성하는 곳입니다. 대학원은 교회와 사회를 함께 섬길 수 있는 좀 더 통합된 리더십을 양성하면서, 학문적으로 좀 더 고급 지도자를 양성하는 대학원과 목회지도력에 쓸 전문화된 지도력을 양성하는 대학원이 분리되어 있어요.

 

그래서 이 과정별 특성화를 이루어야겠다고 생각해요. 대학은 일반적인 사회지도자를 양성할 수 있게 일반교양과 기본적인 기독시민으로서의 소양을 구축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1차적 목적이죠. 그리고 신학대학교는 교회를 제대로 섬길 수 있는 목회친화적인 커리큘럼이 필요한 거예요. 이론적인 것을 포함해서 실천신학 같은 것들이 여기 집중적으로 배치되어야 하는 거죠. 또 대학원은 학문적인 리더로 키워야 될 소수의 탁월한 학문성을 추구하는 그룹이 있고, 목회신학적으로 뒷받침하여 더 전문적으로 목회를 할 수 있도록 전문화가 필요한 거죠.

 

옛날보다는 특성화가 강화되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래서 이런 특성화들이 개별화가 아니라 사실은 하나의 목표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구현이죠. 저희 학교의 교육이념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선포와 그를 통한 하나님 나라의 구현입니다. 우리가 대학과 신대원과 대학원을 운영하는 모든 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뤄라” “이 땅에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 끝까지 증인이 되라하는 창조명령을 수행하는 청지기, 섬김이들을 양육하기 위해서 하는 거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선포가 우리 목적이 되어야 하고, 그것의 열매는 하나님나라라고 할 수 있어요. 신학대학교의 역할이나 사명을 얘기할 때는 그런 것들을 함께 얘기하고, 때로는 따로 얘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장신대가 이제 기독교와 사회대학원이라는 것을 시작해요. 이것은 평신도들도 일반 자기 전공분야에서 하나님 나라 일꾼으로서 일을 하는데 거기에 신학적인 뒷받침이 필요한 분들을 위해 평신도들도 함께 섬길 수 있는 대학원이죠.

   

 

2. 현재 한국교회가 포스트모더니즘 영향권 안에 깊이 묻혀 있고, 4차산업혁명 시대의 문턱에 놓여있습니다. 아직 목회자들이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분석과 정의를 못 내리고 있는 상황에서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 몰려오고 있지 않습니까? 앞으로 예측되는 현상과 교회의 대응에 대해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포스트모더니즘의 부상과 4차산업혁명의 도래, 이런 것들의 특징이 세상의 변화죠. 세상이 변화하는 속에서 우리가 가진 불변적 신앙과 문화를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살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공통된 과제입니다. 변하는 세상 속에서 불변의 말씀을 가지고 살아가는 신앙인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의 문제입니다.

 

포스트모던을 얘기하고 4차산업혁명을 얘기하려면 종교개혁을 생각해야 하죠. 루터의 종교개혁이 왜 일어났는가. 그것은 결코 진공 속에서 일어난 게 아니잖아요. 어떻게 보면 중세에서 근대로 전환하는 시대에 종교개혁이 일어난 거죠. 중세에서 근대로의 변화라는 것은 과학과 문화의 변화가 있는 거예요. 중세적인 전근대 문화가 근대문화로 전환할 때에 종교개혁이 일어난 거고, 1차 산업혁명이 일어나는 시점에 종교개혁이 촉발했다고 볼 수 있죠. 진공 상태에서 시작된 게 아니에요.

 

그 당시의 로마 카톨릭은 옛날 중세의 세팅 안에 있었어요. 농경시대 관점에서는 영주들 위주의 이익을 중시했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두 제도가 있었죠. 그 하나의 축이 카톨릭교회였고, 또 하나가 귀족들이잖아요. 이런 것들이 위그노들이나 개신교도들에 의해서 무너져요.

 

우리가 시대 변화를 볼 때는 넓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교회 안에서만 포스트모더니즘과 4차산업혁명이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 전 세계가 바뀌고 있는 거예요. 변화 안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표현할 수 있을까,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말씀을 어떻게 다음세대와 동시대 사람들에게 나눌 수 있을까, 어떻게 신앙인답게 살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죠.

 

그러려면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올 때 한 번 개혁됐어도 또 말씀에 따라서 내가 끊임없이 개혁되어야 하는 겁니다. 이런 근본적인 개혁의 자세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시대상을 함부로 판단하고 함부로 정죄하지 않도록 굉장히 조심해야 돼요.

 

하나님의 말씀은 불변하지만 그 말씀이 해석되고 적용되는 장은 계속 변화하고 있습니다. 근대적인 세팅에서 적용되던 어떤 기준이 이제 포스트모던이라고 하는 새로운 문화 속에서는 제대로 작동을 안 한다는 거죠.

 

예컨대, ‘권위라고 하는 것이 어떤 사람들한테는 상당히 필요한 것 같이 보이지만 지금 젊은 세대들은 다 싫어하거든요. 왜 그렇게 싫어하나 봤더니, 젊은 세대들은 권위라고 하는 그 자체를 억압이라는 단어와 동의어로 느낍니다. 그렇기 때문에 권위적이라고 하면 조작적이라고 느껴지는 거죠. 그래서 상당히 부정적으로 생각을 하게 돼요.

 

노무현 대통령의 예를 들어 정치적인 함의를 다 빼고 문화적인 해석을 하면, 노무현 대통령을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들은 왜 좋아하고 싫어하는 분들은 왜 싫어할까요. 그 이유가 딴 게 아니라 싫어하는 사람들은 권위적이지 않아서 대통령답지 않아서 싫어하는 것이고, 좋아하는 사람들은 권위적인 대통령답지 않아서 좋아하는 거예요. 권위에 대해서 생각하는 게 달라요.

 

그러면 총장님, ‘절대진리에 대한 부분은 어떻게 설명을 해주실까요?

 

삼위일체 하나님, 예수 외에는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할 이름이 없다이런 것들은 절대진리라고 믿죠. 그런 것이 포스트모던 사회에 왔다고 해서 변할 수는 없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에요.

 

그렇지만 그 신앙을 어떻게 표현하는가는 매우 다양할 수가 있는 거예요. ‘절대진리말고 인간들이 만들어놓은 제2, 3의 명제들을 해석을 달리 한다고 해서 이단취급을 하듯 한다면, 갈등은 점점 더 심화될 것입니다. 물론 포스트모던의 문화를 모르는 사람들은 표현의 다양성을 이해하기가 굉장히 어렵죠.

 

그러나 물론 포스트모던은 약점이 있어요. 포스트모던의 장점은 거짓권위는 다 무너져요. 폼 잡으려고 하는 것은 다 부숴요. ()근대와 근대에 있어서 관습으로 이루어졌던 권위는 다 깨지는데, 문제는 절대진리마저도 다 부정을 하는 쪽으로 가는 거예요. 포스트모던의 과잉으로 가면 그렇게 되는 거죠.

 

모든 문화는 다 장단점이 있어요. 양면성이 있으니까요. 포스트모던에도 장점과 단점이 있고, 반대로 전근대도 장점과 단점이 있고, 모던(Modern)도 장점과 단점이 있어요. 신학적으로 분석을 하면 진리만이 절대적으로 선하고, 모든 문화와 인간의 손길이 덧붙여진 것에는 인간중심의 죄성이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경계는 늦추지 말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해는 해야 되죠. 포스트모던만 마귀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묻고 싶은 것은 모던은 진리였냐는 것이죠. 사실 근대 사상이 자유주의를 가져오게 한 훨씬 더 파격적이고도 근본적인 도전이었잖아요. 또 모던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어찌 보면 전근대인 거예요. 그건 중세시대나 통할 얘기들을 지금 와서 하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런 면에서의 문화적인 예민함과 분별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한국교회가 정화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겠네요.

 

거짓권위는 걷어내야 되는데, 이제 목욕물 버리다가 아기를 같이 버린다.”는 말을 생각하며 그것을 조심해야죠. 그래서 영성이 더 중요하고 경건의 능력과 기도가 더욱 더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대에는 경건의 능력과 영성과 말씀에 대한 강조가 매우 필요하죠.

 

그리고 4차산업혁명도 마찬가지예요. 과학의 발달에 적응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자꾸 세상에 대해서 적대적으로 종말론적으로 해석을 하잖아요. 이런 건 조심해야죠.

 

이런 변화에 대해서 말하자면,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약화될 우려가 있어요. 인간이 도구화될 수 있는 거죠. 그리고 기계보다 못한 인간이라는 부류가 많아질 거예요. 이게 다 공리주의적인 인간관이죠. 생산성이 떨어지고 제대로 못하면 저런 사람 필요 없어.”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만들어진 인간을 어떤 외모나 생산력이나 이런 기준에 따라 보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이해하는 게 필요하죠. 좀 더 본질적으로 봐야 하는 거예요. 하나님과의 관계로서의 형제와 자매 속에 하나님의 형상을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으로 인간들을 서로 바라보는 것이 오히려 더 중요해집니다.

 

또한 이럴 때일수록 자꾸 격차가 심해지잖아요. 새로운 변화를 이용할 수 있는 사람과 이용 못하는 사람으로 나누어져요. 결국 4차산업혁명의 핵심은 인간중심론인 거예요. 왜냐하면 인간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 이것을 활용해야 된다는 것이죠. 따라서 인간에 대한 존중과 주체적 능력에 대한 개발이 더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공리주의적 시각으로 인간을 판단하지 않도록 극복해야 하죠.

 

아마 사회적 양극화가 더 심화될 수 있을 거예요.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눈으로 보는 거예요. 그럴 때 교회가 소외되는 분들을 어떻게 품을 수 있는가 생각해야 합니다.

  


  

4차산업혁명이 부화가 되지 않았잖아요. 예측단계지, 사회 도처에서 어떤 현상으로 나타날지에 대한 것은 아직 미지입니다. 그러면 실업자 문제 등 현상학적으로 나올 수 있는 부분을 좀 구체화해서 말씀해 주시고, 교회가 받을 영향에 대해서도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제가 볼 때는 지금 딱히 결론을 얘기하기는 좀 이르다고 생각해요. 방향성을 얘기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 이런 4차산업혁명에 대해서 너무 묵시론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마치 인간이 알파고에 졌을 때 느끼는 그런 종말론적인 해석으로 치우쳐도 안 되고, 반면 너무 낙관적으로 어려운 노동 안 해도 되니 다 인간생활이 좋아진다는 해석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결국은 모든 변화와 세계화라고 하는 것이 불가피한 거예요. 우리가 하고 싶다고 해서 하고, 안 하고 싶다고 해서 안할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역사의 흐름이에요. 영어로 얘기하면 Unavoidable 불가피한 거예요.

 

두 번째, 이것은 완전히 모호해요. 어떤 사람에겐 무지하게 좋고 어떤 사람한테는 정말 위협이에요. 문제는 위협받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거예요. 점점 더 그럴 거예요.

 

그러니까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위협받는 사람들을 품고 부정적인 것을 어떻게 줄여나갈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춰야 해요. 부정의 요소가 무엇일까요. 이것을 좀 더 분명히 알려면 목회자들이나 신학자들이 너무 섣불리 판단하면 안돼요.

 

일차적으로 그 분야의 전문가는 그 분야의 제사장으로 세운 사람들이에요. 신앙인 가운데 좋은 과학자들이 많거든요. 그럼 그런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돼요. 목사님들은 성경을 많이 알지만, 그분들은 사회변화에 대해 더 많이 알아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목사님들은 교회에서 깊이가 있으시고 저는 신학교에서 상대적으로 깊이가 있죠. 교회 일반 회중이나 교회 목회에 대해선 그분들이 훨씬 더 깊고 넓은 면이 있고, 저는 신학교에서 상대적인 지식이 있을 수 있어요. 그렇지만 경제, 문화, 과학 이런 분야에서는 또 다른 제사장들을 많이 보내셨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한국교회가 이런 분들을 활용해야 된다고 봐요. 대화도 많이 하고 배워야 해요. 교회는 학습공동체들이 되어야 되죠. 그런데 종전에 하던 똑같은 방식이 아니라 평신도 제사장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격려하면서 내보내야 돼요. 하나님의 나라가 교회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신학교에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전 우주가 하나님의 나라가 펼쳐져야 될 영역인데, 지금 최전선에서 분투하고 있는 우리의 평신도 제사장들을 최대한 활용해야죠.

 

4차산업혁명도 과학자들이 할 수 있는 게 있고, 기업인들이 할 수 있는 게 있고, 정치인들이 할 수 있는 게 있고, 행정부가 할 수 있는 게 있고, 교회가 할 수 있는 게 있어요. 하나님의 영역 주권이 있잖아요. 4차산업혁명 뿐만 아니라 통일, 대사회적 책임 등에 대해서 목회자 몇 명이 너무 큰 얘기를 할 게 아니에요. 그런 의미에서 한국교회가 매우 겸손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저도 큰 맥락에서만 얘기를 하는 것이고, 교수님들이 더 강론으로 들어갈 수 있고, 각 영역의 제사장들이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각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봐요. 우리 목사님들은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데에 참 중요한 역할이 있죠. 그 다양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나아갈 제사장들을 양육하는 거잖아요.

 

목사님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잘 전해 주시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을 주시면 그걸 가지고 이들이 나가서 각자의 영역에서 하나님 나라를 읽어갑니다. 다시 이분들이 모였을 때는 이분들 얘기를 좀 듣는 것이 필요해요. 어떤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지, 전투 영역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를 모두 듣고 같이 고민하며 다시 말씀과 기도로 격려해서 또 나가게 하는 것이죠. 그래서 지금은 기독교경영학회, 한반도평화연구원 같은 평신도 전문인 단체들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3. 마지막으로 이번 <한미준21> 세미나에서 강의하실 주제와 내용을 간략히 소개해 주십시오.

 

저는 종교개혁500주년과 한국교회 과제를 주제로 강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목회자와 사회 사이에 갭(Gap)이 크게 생기지 않도록 인식의 폭을 넓힐 수 있는 내용이 될 것이고, 앞에서 말씀드린 바를 더 심도 깊게 이야기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좋은 말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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