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의 염원인 평화통일에 답하라”

추천 : 0  |  비추천 : 0  작성자: 관리자  |  2017-06-13 10:01

통일, 교회와 상관없는 정치적인 것

한국교회는 예수님께서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에서 벌이신 하나님나라운동을 오늘 우리의 상황에서 새롭게 벌여야 한다. 그것은 8천만 민족의 소원이며, 아픔인 분단의 현장이다. 한국교회는 이 곳에서 민족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말해야 한다. 그런데 보수적인 한국교회가 반통일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것은 김일성과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세습, 공산주의와 사회주의가 반기독교적이라는 관념이 머리 속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평화적인 민족통일은 교회와 상관없는 정치적인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문제가 있다.

그러면서도 한국교회는 각종 행사와 공예배에서 북한동포와 민족통일을 위한 기도를 드린다. 그리고 북한교회 재건 및 북한동포 지원을 위한 헌금도 드린다.

그만큼 평화적인 민족통일과 남북한 민족의 화해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도는, 실천은 없고, 허공을 치는 기도이며, 의미 없는 헌금이다. 이렇게 드린 헌금은 어디에 쌓아 놓았는가. 북한선교를 위한 헌금은 분명 목적헌금이다. 그런데 이 헌금이 누가 어떻게 지출했는지에 대해서 모른다. 알면서도 침묵한다. 오히려 남북한 화해와 평화통일을 위해 행동하는 교회와 사회단체를 향해 비판을 쏟아낸다. 무조건 북한이 싫은 것이다.

문제는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북한의 도발에는 강경하게 대응하고, 한편으로 대화를 통해 남북한의 긴장을 완화하겠다고 한다. 외교부장관 지명자인 강경화 후보도 북한동포에 대한 인도적인 지원은 인간의 보편적 가치라며, 도와주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 사랑과 용서를 말하는 그리스도인들만, 정부의 이같은 입장을 전혀 이해하지를 못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이것을 북한 김정은에게 무조건 퍼 주는 행위라고 비판한다. 이해가 안가는 것은 아니다. 과거 남한이 도와준 달러는 핵개발과 일용할 양식은 북한군의 양식을 위해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과거와 달리 남북한 민족의 화해와 평화통일에 대한 여건이 조성되어가고 있다. 이제 한국교회는 통일이후 북한선교를 하겠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민족의 화해와 평화통일의 주체자로서 나서야 한다. 민족화해와 평화통일의 한복판으로 들어가야 한다. 독일의 통일을 위해서 독일교회가 있었다는 사실을 한국교회는 깨달아야 한다. 

독일교회는 동서독으로 분단된 상황에서도, 서로 교류하며, 독일통일을 위해서 어떻게 봉사 할 것인지에 대해 함께 논의했다. 그리고 동독교회를 적극 지원하며, 정치적으로 고난당하는 사람들을 후원했다.

한국교회도 남북한 민족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위해서 봉사해야 한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은 한국교회가 가장 시급하게 벌여야 할 운동이 바로 민족의 화해와 평화통일운동이다. 올해는 분단 72주년, 6.25 한국전쟁 67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관념 때문에 남북대화와 북한지원, 민족화해와 평화통일에 대해서 매우 인색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문제는 한국교회가 3.1만세운동이나, 민족해방과 대한민국 정부수립 등 역사적인 사건들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보이면도, 평화적인 민족통일과 민족화해에 대해서만큼은 방관자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 민족통일을 간절히 바라는 뜻있는 목회자와 평신도, 그리고 신학자들은 민족분단의 한복판에 있었던 기독교가 이제는 가던 길을 멈추고, 분단극복과 평화적인 민족통일의 한복판으로 들어가 봉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김순경 박사는 자신의 저서 <민족통일과 기독교>(한길사)에서 “세계분단의 중심에 세계교회가 있었다. 세계교회는 세계분단 극복을 위해서 말하고, 행동했다”면서, “한국교회도 민족분단의 중심에 있었던 만큼, 이제는 교회가 한민족의 염원인 민족통일과 분단극복에 위해서 봉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교회, 평화통일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야

민족화해의 한복판으로 들어가라

한국교회는 분단극복에 대해 남의 일처럼 “강 건너 불구경 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것은 한국교회가 가진 것이 너무 많아 내려놓을 수 없다는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러면서도 한국교회는 예배시간마다, 아니 각종모임에서 평화적인 민족통일에 대해서 기도하며, 민족통일의 전위대인 것처럼 포장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통일이후 북한선교정책도 수립했다.

그러면서도 진보적인 교회나, 사회단체, 통일단체가 북한동포돕기와 대화에 나서면, 가차 없이 용공, 좌경, 빨갱이로 몰아붙인다. 보수적인 교회들은 자신들이 벌이는 평화통일운동은 옳고, 진보적인 단체들이 벌이는 평화통일운동은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개 교회와 교단가 세운 북한선교정책은 통일 이후, 북한에 남한의 교파주의를 그대로 이식시키겠다는 것 밖에 이해되지 않는다.

즉 남북통일의 문제는 정치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교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것은 국민 또는 교회 대부분의 소리라는데 문제가 있다. 통일의 문제는 전문성을 요하는 것이기 때문에, 종교단체인 교회가 관여할 수 없다는 논리도 편다. 또한 교회가 통일문제에 관여하면, ‘국론분열’을 가져다가 준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교회 내부에서 우리의 과제는 교회를 지키고 선교하는 것이 사명이기 때문에 정치, 경제적 차원을 떠나서 통일을 논하는 것은, 교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교회는 “예수를 믿게 하고, 천당에 가게하면 된다”는 것이다. 오늘 ‘북한선교’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는 교회는, 제 힘으로 통일하자는 의지의 표현이 아니다. 어떤 과정을 통해서든 통일 이후, 그곳에 상륙하여 교회를 세우자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이것은 한국교회가 민족사에서 떨어져 자기 게토에 감금되어 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사실 한국교회는 역사와 유리된 채 교회의 게토화에 모든 힘을 기울여 왔다. 통일문제는 교회가 아닌 누군가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리고 통일 후 그곳에 가서 많은 교회를 세우는 것이 오늘 한국교회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분단 72년을 맞은 한국교회의 이 같은 사고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렇게 한국교회가 평화적인 민족통일과 민족화해에 대해서 방관자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정치적 구조악 때문이다. 해방이후 정부는 국민들이 통일문제에 대해서 관여하지 못하도록 했다. 통일을 이야기하는 단체나, 개인들을 무조건 붙잡아갔다. 용공 및 이적단체로 몰아붙였다. 평화적인 민족통일에 간여할 기회가 전혀 주어지지 않았다. 반공과 통일을 철저하게 이용해서 독재정권을 정당화했다. 여기에다 한국교회는 반통일적인 정부의 철저한 협력자였다. 

한국교회와 목회자들은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독일 통일의 중심에 독일교회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제도상으로 어떤 종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앞에서 한국교회의 통일선교정책은 전면 수정되어야 한다. 북한이 명목상의 종교를 내세우고는 있지만, 이들 종교는 평화적인 민족통일에 대해서 답할 수 있는 처지에 놓여있지 않다. 북한의 인민 모두는 독재자 한사람을 위해서 희생을 당하고 있다. 이렇게 희생당하는 북한동포를 구원하기 위해서라도, 한국교회는 평화적인 민족통일과 민족화해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


통일에 앞장선 독일교회를 교훈 삼자

독일은 분단된 상황에서도, 동독과 서독의 교회는 하나의 교회로 유지되었다. 동서독의 교회는 분단을 강요당하면서도 일치감치 강했다. 때문에 동독과 서독 정부는 교회의 교류를 막을 수 없었다. 두 정권이지만 하나의 교회로 머무를 수 밖에 있었다. 서독은 교회기구를 통해 계속 동독 국민을 물질적, 정신적으로 지원했다. 분단이후에도 베를린을 통하여 수많은 동독의 국민들이 자유를 찾아 서독으로 유입됐다.

이 뿐만이 아니다. 서독정부는 교회기구를 통하여 동독에 감금되어 있는 많은 정치범들을 위해 막대한 돈을 지불하면서, 구했다. 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했다. 완전히 밀폐된 상태서 분단이 고착화되었다. 1천만 이산가족이 가족의 생사조차 확인하지를 못하는 비극 속에서 울고 있다.

무엇보다도 6.25전쟁이 준 상처는 씻을 수 없다. 남북한민족은 해방이후 한민족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면서도, 자기주체를 재확인할 새도 없이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어야만 했다. 문제는 이 전쟁이 누구를 위한 전쟁이었느냐는 것이다. 북한 해방군이라고 내세운 소련은 탱크 등 막대한 무기를 북한에 제공했다. 이러한 사정을 미루어 볼 때 한반도에서의 동족상잔의 비극은 당연했는지도 모른다.<역사 앞에 민중과 더불어>(안병무 저, 1986년 12월, 한길사 참조)

1945년 해방 이후부터 한민족은 서로 다른 민족에게서 볼 수 없는 적대관계 속에서 살아왔다. 그 결과 모든 것이 기형화되었다. 정치를 비롯한 종교, 교육에 이르기까지 분단 상태가 정치적으로 이용되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그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북한 정권은 한사람을 위하여 전 인민이 희생을 당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1인의 정권유지를 위해 핵무기를 비록한 미사일 개발 및 실험발사도 마다하지를 않는다.

북한의 핵개발과 관련, 남한의 보수적인 인사들도 남한의 핵보유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교회 역시 여기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래도 간간히 들여오는 한반도의 비핵화의 목소리는 기쁜 소식이다. 여기에다 자유이주민들을 지원하고 있는 단체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교회가 남북한 평화조약 체결을 위한 국제 캠페인을 미국, 영국, 독일, 스위스, 일본, 중국, 홍콩 등에서 벌인 것은, 무기경쟁에 돌입한 남북한의 상황에서 매우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모처럼 한국교회가 국제사회에 남북한의 정전과 분단체제의 실상을 알리고, 화해와 평화를 위한 여정을 연다는 의미가 있다.

여기에는 한국교회가 정전협정의 당사자인 미국을 움직여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기대하겠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그럼에도 한국교회의 평화통일운동에 뜻을 같이하는 일부 교단의 목회자와 평신도는, 남북한 통일의 문제를 국민부터 설득하는 것이 우선이며, 국민을 위한 평화적인 통일에 대한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중심적 역할을 교회가 감당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역사와 유린된 채 자기 게토에 감금된 교회

안병무 박사는 자신의 저서 <역사 앞에 민중과 더불어>에서, “민에 의한 민족통일! 이것만이 진정한 통일의 길이다. 우리는 민족통일운동을 전개할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고 있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교로 하여금 통일운동의 전선에 나서야 한다는 결단을 하게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과거나, 지금이나 평화적인 민족통일과 분단극복이, 교회와 상관없는 정치적인 일로 생각해 왔다. 그 이유는 선교의 개념이 너무 협소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통일의 문제, 분단극복의 문제가 기독교와 문관한 누구인가가 하는 일이고, 통일 후에 남한의 교회가 북한에 많은 교회를 세우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교회가 바로 역사의 한복판에서 밀려나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문제는 한국교회가 지난 수년간 보수, 진보를 떠나 모두가 북한동포돕기를 비롯한 한민족 서로돕기, 남북한교회 교류, 한국대학생선교회의 북한에 젖염소보내기, 월드비전의 북한 국수공장 설립, 대한예수교장로회 열린총회의 북한 어린이돕기, 기독교대한감리회 서부연회의 북한동포 땔감지원 등을 활발하게 펼쳤다.
정부차원에서 조성된 개성공단이 폐쇄되고, 금강산여행이 중단된 상태에서 남북한 교류의 길은 갈수록 멀게만 느껴진다. 여기에다 북한정권의 핵실험 등은, 평화적인 민족통일의 길을 험난하게 만들고 있다. 여기에 맞서 미국의 남한에 사드 배치 등은 이웃나라들과의 국제적인 문제로 야기되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움직임이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으며, 평화적인 민족통일의 길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민족의 고난을 함께했던 한국교회는 한반도의 비핵화를 촉구해야 한다. 또한 같은 언어와 문화, 그리고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한민족의 통일에 대한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기여해야 한다. 특히 한국교회는 ‘북한선교’와 ‘남한선교’를 떼어 놓고 말해서는 안 된다. 선교는 북한만도 아닌, 남한만도 아닌, 200여개국에 흩어져 사는 한민족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한민족선교로 전환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맘몬과 바벨을 노래하는 관념적이며, 이데올로기적인 신학과 신앙에서 벗어나, 예수님께서 처철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에서 성취한 나눔과 섬김, 그리고 사랑과 화해의 신앙과 신학을 실현해야 한다. 그리고 호화로운 성전의 하나님을, 한민족의 하나님, 우주의 하나님으로 고백해야 한다.      


<발췌: 기독교한국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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