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목회정보 > 김기홍교수의 명설교분석
김기홍교수의 명설교분석
찰스 피니
조회 1442 추천 0 비추천 0 2015-09-15 08:38 작성자 : 관리자

찰스 그랜드슨 피니(1792-1875)19세기초반에서 중반까지 미국의 2차대각성을 일으킨 위대한 설교자였다. 그가 부흥회를 하면 개인은 물론 가정도 직장도 사회도 변했다. 수많은 선교회, 학교, 고아원, 모자원, 구호단체가 생겼다. 금주운동, 절제운동, 교도소정화운동등이 일어났다.

그는 처음에 법률가로 삶을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못가서 설교자로 방향을 전환한다. 그러한 법률가적인 소양이 평생토록 그의 설교와 사역을 이끌어간다. 그의 글을 직접 읽어보면 그 과정이 선명하게 설명된다.

 

성장하면서 나는 우리 집에서 기도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성경도 내 나이 29세 때 법률에 나오는 모세오경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사서 읽게 된 것이 처음이었습니다. 성경을 읽을수록 나는 내가 죄인임을 점점 더 느끼게 되었습니다. 겉으로는 냉담한 척했지만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어느덧 간절히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구원은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값없이 주신 "선물"임을 깨닫고서, 이제 죄를 끊고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한 결정을 내린 후로는, 별로 선하지 못한 의뢰인들의 법적 탈출구나 만들어 주는 일에는 더 이상 관심이 없어졌습니다. 변호사 일을 계속하는 것이 내키지 않았던 것입니다. 돈을 많이 벌 생각도 없었고, 세상적인 즐거움과 재미는 그것이 어떤 것이든 흥미를 잃어갔습니다. 반면 죽어가고 있는 이 세상에 그리스도의 구원이 있음을 알리는 일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없어 보였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영혼의 가치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나는 또 한 번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소송 의뢰를 맡은 변호인으로서, 그분의 탄원을 사람들에게 호소하는데 나의 일생을 드리기로 말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과 말씀 의지하기

피니는 종종 기도하기 위해 숲 속으로 들어갔다. 어느 날 숲 속에서 정성을 다해 하나님께 사죄의 확신과 구원의 증거를 달라고 기도한다. 그러나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그러자 그에게 네가 나를 찾을 때에 내가 응답하겠고라는 성경구절이 떠올랐다.

그때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닫는다. 이미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셨는데 응답을 달라고 간청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거짓말하는 분이 아니다. 그러므로 찾는 자에게 응답하겠다고 하셨으면 이미 응답해 주신 게 아닌가!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자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던 모든 죄의식이 사라졌다. 그리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평화가 들어왔다. “나는 마음이 벅차서 나도 모르게 일어났다. 내가 과연 하나님께로부터 구원을 받았는가하는 따위의 의문은 생기지 않았다.

오직 가슴이 뜨거워서 내가 구원을 받았다면 이 복음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리라고 힘주어 다짐했다.” 그러니까 피니의 신앙체험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신뢰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말씀에 대한 그러한 믿음은 그의 여생을 통해 계속 놀라운 능력을 공급해주었다.

그는 자신의 설교하는 자세를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내가 맡은 그리스도의 소송에서 이기고자 하였고, 설교 내용에 그 길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눈에는 그리스도의 소송에는 능력있는 대변인이 참으로 드문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제까지 내가 보아온 목사들이 그리스도의 의를 호소했던 것처럼 변호사가 자기 소송 의뢰인의 무죄를 변호한다면, 단 한 건도 승소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 묵상할 때면, 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고자 노력했습니다. 성령님을 의지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으로 생각되는 한 제목을 택하곤 했습니다. 그런 후에 그 설교를 준비하면서 많이 기도했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에게 나아가 설교로써 넘치도록 쏟아놓곤 했습니다. 그러한 나의 설교는, 설교 내용이나 감상하며 설교자에게 칭찬이나 던져 주던 나태한 회중들에게 강력한 찔림이 되었습니다. 나는 설교를 통해 죄인들을 하나님 앞으로 이끌어 오고자 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께로 나아오거나, 격렬한 반대를 보였습니다.

 

인간도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피니는 신앙은 인간이 행하는 것이라고 설파한다. 신앙은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요 인간의 의무라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도 인간으로 하여금 믿게 하시는 것도 사실이다. 인간이 악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신의 영으로 영향을 주셔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이 하나님께 순종해야만 한다. 그러면 믿음은 당연히 일어나고 부흥은 오게 된다. 하나님은 인간이 가진 흥분하기 쉬운 속성을 이용하신다. 그래서 흥분을 일으켜 순종하게 하신다. 인간은 본래 너무도 게으르기 때문에 흥분해야만 순종한다.

그렇다고 흥분된 감정이 곧 신앙은 아니다. 그것들이 신앙을 유지하도록 갈망하게 한다. 흥분해야만 인간의 의지는 하나님께 순종하게 된다. 그러므로 인간의 마음이 바르게 흥분하게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들이 사용되어야 한다. 이것이 피니의 입장이다.

그래서 설교할 대 변호사가 배심원들에게 끈질기게 질문을 퍼붓듯이 죄인들을 사냥개처럼 공박했다. 그의 주도하는 집회는 항상 시끄럽고 야단법석이었다. 그는 구도자의 좌석을 앞부분에 따로 마련했다. 그래서 모두가 그리로 향해 기도하게 하였다.

이러한 방법들을 반대자들은 너무도 인위적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그는 50만 명이상의 영혼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했다고 고백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확실한 신뢰, 그리고 인간 쪽에서의 간절한 마음에서 나오는 준비, 이것이 그의 부흥의 비결이었다.

수사학과 법률을 공부했기에 피니는 설득력 있는 설교자가 될 수 있었다. 그는 단순한 언어로 일상적 경험에서 온 비유를 사용하였다. 설교 방식은 대화체였다. 원고 보고 설교하는 것을 싫어하였다. 학생들에게도 즉흥적인 설교방법을 권하였다.

하지만 그의 설교들이 보여주는 요점이 많은 것을 볼 때 개요를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많은 내용들을 미리 준비한 개요를 보면서 자유롭게 즉흥적으로 말했다. 하도 간결하게 적었기에 요점은 작은 종이면 설교가 준비되었다.

 

죄 범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

3:16

 

죄는 가장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죄만큼 많은 대가를 요구하는 것은 없습니다. 용서 받았든 받지 못했든 죄의 대가는 무한합니다. 용서받은 경우 죄 값은 대속자에게 주어집니다. 반면에 용서 받지 못한 경우 죄인의 머리에 주어집니다. 죄는 어디서나 보입니다.

(중략)

이 사랑의 성격을 주목해 보세요. 본문은 하나님이 이처럼 세상을 사랑하셨다고 강조합니다. 그 사랑은 자신의 외아들을 내 주어 죽게 할 정도입니다. 얼마나 놀랍고 얼마나 특별합니까? 이 표현 속에는 그 사랑의 크기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사랑을 단순히 선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선한 분이시다. 그러니 아무 것도 걱정 안 해도 된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거룩한 삶에 아무 영향을 줄 수 없습니다. 이 사랑의 능력을 체험하려면 이 사랑의 참된 성격을 이해해야만 합니다.

1. 이 사랑은 자기만족적이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 속에 있는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사람들 속에는 선이 없기 때문에 이런 사랑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처럼 자기만족을 위해서 사랑했다고 하면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2. 이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었습니다. 맹목적인 충동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그런 것으로 간주합니다. 인간은 기분에 치우쳐 맹목적인 감정적 충동상태에 빠집니다. 그럴 때 자신이 가진 모든 가치 있는 것들을 내 버리고 후회합니다.

하나님도 감정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나 감정만 가지신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부모의 사랑과 같다고 말해줍니다. 비록 그 자식이 반역적이고 고집이 세고 방탕하더라도 부모는 계속 자식을 사랑합니다.

3. 중보자이신 그리스도 편에서 보면 이 사랑은 형제애적입니다. 그는 버려진 사람들을 형제라고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형제로 또 어떤 면에서는 부모로 사랑하고 있습니다. 성부는 이 일을 위해 자기 친 아들을 포기 하셨습니다.

4. 이 사랑은 전혀 이기적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아도 하나님은 얻을 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그 사랑은 모든 피조물들에게만 이익을 줍니다. 오직 그 사랑으로 사람들을 구원하기를 기뻐하셨습니다. 그것이 천국의 축복을 한없이 가져다 줄 것입니다.

5. 이 사랑은 열정적인 것이었습니다. 냉담한 마음상태가 아닙니다. 추상적인 개념도 아닙니다. 아무 것도 끌 수 없는 불처럼 그의 영혼 속에서 타오르고 있습니다. 참으로 깊고 뜨겁고 진지한 그리고 영원한 사랑입니다.

6. 이 사랑은 철저한 자기 부인입니다. 성부는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내어주고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서 죽게 합니다.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합니다. 이 사랑이 자기부인이 아니라면 무엇이겠습니까? 이보다 더 자기부인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가 어디 있겠습니까?

7. 이 사랑은 보편적이 것이었기에 특별한 것입니다. 또한 특별한 것이기에 보편적입니다. 하나님은 각 개인을 특별히 사랑하셨습니다. 또한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차별 없이 사람들 모두를 공평하게 사랑하셨기에 각 개인을 지극히 사랑하셨습니다.

8. 이 사랑은 인내로 넘치는 것입니다. 끝까지 인내할 정도로 자기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자녀들이 천하에 악한 짓을 하고 심하게 반항합니다. 그래도 끝까지 두 손 벌려 받아들이고 회개에 이르게 할 사람이 여러분 가운데 얼마나 되겠습니까?

여러분은 자녀들을 신경질 나게 한 적이 없었다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나요? 이런 말 못들었어요? “내 자식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얼마나 참을성이 없는지요!” 부모들이 탄식합니다. “, 나는 어쩌면 이렇게 내 자식을 실족케 하고 죄짓게 할 수 있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안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참지 못하는 분이 아닙니다. 그의 사랑은 너무도 깊고 너무도 큽니다. 그는 항상 참으십니다. 그는 불행한 자식들을 참고 받아들입니다. 지혜로울 정도로 악한 자식들의 모욕을 참고 계속 축복하십니다.

9. 이 사랑은 조금도 방심하지 않습니다. 나쁜 의미가 아니라 좋은 의미로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해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세밀하게 배려합니다. 마치 진정으로 사랑하는 부부가 서로의 유익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누가 말하는 것처럼 복수심을 완화시키기 위해 죽으시지 않았습니다. 그는 율법의 요구를 따라 죽었습니다. 그의 고난 받은 삶과 속죄의 죽음으로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셨습니다. 이렇게 자비의 경륜을 따라 최고의 선을 이루셨습니다.

이러한 속죄가 행해진 지금, 모든 사람은 권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누구든 받아들이는 사람이 소유할 권리입니다. 죄인이 누구나 나와 요구하기만 하면 그의 보혈의 혜택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이 위대한 구원을 받아들일 모든 사람의 구주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구원을 인간들에게 적용시키기 위해 자신의 성령을 보내주십니다. 성령은 각 사람의 마음 문에 와서 두드립니다. 각 죄인에게 그들이 지금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얼마나 놀라운 사랑의 역사입니까!

이러한 구원은 믿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믿음은 구원에 이를 유일한 길입니다. 장소의 변화가 인간 마음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단순히 천국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데려간다고 우리를 구원하실 수 없습니다. 단순한 믿음 외에는 길이 없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믿는 게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자신의 구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지금도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영혼을 자신의 생명과 사랑으로 채워주시기 위해 내려오십니다. 그리스도로 하여금 자신을 지배하게 하세요.

예수께서는 지금도 당신 마음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적용

피니의 훌륭함은 철저하게 하나님과 말씀을 의지하면서도 인간으로 할 일을 절대로 소홀이하지 않는 점이다. 그가 앞에 한 말을 상기해보라. 지금까지 목사들이 그리스도를 변호한 것처럼 한다면 절대로 그리스도가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이기려고 설교를 준비했다.

다시 말하자면 그리스도를 위한 변론이 설교가 이기려면 우선 그리스도를 의지해서 준비할 것이요 인간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도 논리적 합리적 그리고 감정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또한 그는 예배와 설교 전후의 분위기 형성도 말할 수 없이 중요하게 여겼다.

그렇다면 우리도 그의 방법을 따라서 준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당신은 이번 주일 예배시간에 그리스도를 위한 변론에 이길 준비가 되었는가? 예배분위기까지 그러한가? 그들의 영혼이 회개하고 변화할 것을 확신하고 있는가? 그렇게 될 때까지 준비하라.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조회
26 <청중을 감동과 함께 현장에 있게 만들었던&... 관리자 2015.09.15 0 1611
25 <적극적으로 그리고 감동으로 이야기한>... 관리자 2015.09.15 0 1499
24 < 인간중심적 설교자> 포스딕 관리자 2015.09.15 0 1809
23 <실존적 연결의 설교자> 폴 틸리히 관리자 2015.09.15 0 1460
22 <신정통주의자> 칼 바르트 관리자 2015.09.15 0 1435
21 찰스 피니 관리자 2015.09.15 0 1442
20 <설교의 황태자>찰스 스펄전 관리자 2015.09.15 0 108
19 성경을 현실로 이끌어 들였던 설교자<제임스... 관리자 2015.09.15 0 67
18 스텐리존스 관리자 2015.09.15 0 71
17 <청중을 향해 성육신하기를 설파했던>새... 관리자 2015.09.15 0 82
16 빌리 그래이엄 관리자 2015.09.15 0 112
15 <불같은 열정의 설교자> 윌리엄 부스 관리자 2015.09.15 0 62
14 <자신의 설교 중에 그리스도의 운행하심을 느... 관리자 2015.09.15 0 99
13 <생각하게 하는 설교자> 조지 버트릭 관리자 2015.09.15 0 76
12 <감동적인 대화의 설교자>드와이트 무디 관리자 2015.09.15 0 127
 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