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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홍교수의 명설교분석
<신정통주의자> 칼 바르트
조회 1511 추천 0 비추천 0 2015-09-15 08:39 작성자 : 관리자

칼 바르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신학한 사람 중에는 없으리라. 지교회의 담임목사로 있으면서 전 세계적인 신학혁명을 일으킨 사람이다. 아마도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신학자라고 불러도 문제가 없겠다. 소위 신정통주의의 창시자이다.

그가 태어난 1886년은 유럽이 자유주의 신학으로 충만했던 시절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보수적인 목사였다. 그의 아버지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바르트는 자유주의를 따라간다. 베를린 대학에 들어가면서 당시 대표적인 자유주의 신학자 아돌프 하르낙의 영향을 받는다. 튀빙겐과 말부르크 대학에서 계속 신학을 공부한다.

그 후 호전적인 자유주의자로 목회를 시작한다. 그러나 금세 그는 흔들리게 되었다. 우선 설교할 것이 없었다. 그러면서 자유주의자들이 독재자들을 지지하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윤리가 틀렸으면 신학도 틀린 것이기 때문이다.

1918년 그의 로마서 주석이 발간된다. 19212판을 출간하면서 유럽의 신학계를 뒤집어 놓는다. 이 주석의 논지는 하나님으로 하여금 하나님 되게 하고, 인간은 자신이 신이 되려하지 말고 다시 인간이 되기를 배우게 하라였다.

당시 자유주의자들은 이성과 과학의 발전으로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보았다. “이제 곧 유토피아가 온다. 가난도 병도 없어진다. 죽음까지도 정복된다.” 그러나 이런 낙관주의는 두 차례의 전쟁으로 완전히 깨진다. 인간은 여전히 죄 속에 있었다.

그리하여 바르트는 정통신학의 위대함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그는 성서비평을 배운 자유주의의 제자였다. 성경은 인간이 쓴 오류투성이의 책이었다. 그리하여 오직 성경을 대신 예수 그리스도를 진리의 토대로 삼은 새로운 정통을 시작한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어디서 알게 되는가? 오류 많은 성경을 통해서 만나게 된다. 성경이야말로 그에게 신기한 세상을 열어주었다. 그러니까 성경은 그대로 하나님 말씀이 아니라 실존적으로 믿어질 때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이다.

 

그의 설교

이러한 애매한 신학에도 불구하고 그의 설교는 복음적이었다. 자유주의의 입장에서 보면 근본주의적 설교였다. 바르트는 설교를 대단히 중요시하였다. “설교를 통해 말씀하는 분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이다.

설교자가 청중의 삶을 변화시키는 말을 하려면 그 자신이 먼저 그러한 삶을 체험해야만 한다. 설교자는 회중에게 성경말씀을 하나님 자신이 그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으로 해야 한다. 설교의 한 가지 목적은 오직 인간의 구원이었다.

설교준비를 위해 바르트는 몇 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첫째 먼저 성경 본문을 선택하고 그 말씀을 자신의 주인으로 받들어야 한다. 설교자자신의 생각이나 욕구를 따라 성경 본문을 다루지 말아야 한다. 둘째 본문을 원어로 읽어 보아야 한다. 셋째 본문을 여러 번역본으로 읽어 보아야 한다. 그리고 나서 자신의 설교문을 작성해야 한다. 그는 설교 내용을 모두 기록했다.

그의 설교는 대부분 성경 본문을 설명하고 이를 삶에 적용시키는 주석들이었다. “설교자는 반드시 성경본문이 제시하는 방향을 따르고 이를 현 시대에 연관시켜야만 한다. 성경 본문은 길이 어디로 뻗어있는가를 보여준다. 우리는 현재라는 시점에서 그 길을 걸어 나가야만 한다.”

다음의 설교는 앞부분 즉 전체 설교의 40퍼센트를 지면상 생략한 것이다. 그가 얼마나 전통적인 신앙을 전하려고 하는지 읽어보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중간 중간에 있는 소제목들은 필자가 편의상 첨가한 것이다.

 

은혜로 받은 구원 (2:5)

(전략)

 

한밤중에 말을 타고 얼어붙은 콘스탄스 호수를 건넌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셨나요? 그는 자신이 악명 높은 호수를 건너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습니다. 맞은편에 도착했을 때에야 사람들로부터 듣습니다. 그 순간 말에서 떨어지고 맙니다. 너무도 무섭고 놀라웠던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하늘이 열리고 땅이 밝아질 때 느끼는 감정입니다.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는 말씀의 의미를 알 때입니다. 바로 그 순간 우리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그 사람과 동일한 존재가 됩니다.

이 말씀을 들을 때 우리는 놀라서 뒤를 돌아보며 말합니다. “아니, 내가 어디 있었나? 죽음 바로 위에 있지 않았나! 그리고 나는 무슨 일을 했나? 얼마나 어리석게 살았나? 그런데 그 가운데서 기적적으로 구출되어 안전하게 되었구나!”

어떤 분은 물을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그런 위험 속에 살고 있나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죽음 바로 옆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 주와 우리의 구원을 보세요. 우리 대신 사형 선고를 받고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보세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렸다고 알고 있습니까? 바로 우리를 위해, 우리의 죄 때문에 우리의 고통을 지고 계십니다. 그는 바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루시는 방법입니다.

그는 이 암흑에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도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는 사람은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는 말씀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이미 구원 받았다

그러나 갑작스런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생명에 대한 지식입니다.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우리는 이미 콘스탄스 호수 맞은편에 도달해 있습니다. 두렵긴 하지만 안심할 수 있습니다.

그 두려움은 하나의 여파일 뿐입니다. 이 기쁜 소식으로 인해 하늘은 열리고 땅은 밝아집니다. 우리가 어두움 속에서 죽음의 깊은 심연 위에 있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그 위에 있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얼마나 큰 위안입니까!

나는 그동안 어리석게도 그 죽음의 심연 위에서 살아왔습니다. 이제는 다시 그곳에 가지 않을 것입니다. 나의 죄와 나의 갇힘과 나의 고통은 현재 것이 아니라 과거 것의 불과합니다. 그것들은 나의 현재나 미래에 속하지 않고 과거에 속했습니다.

나는 이미 구원 받았습니다. 이게 사실일까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그가 우리 모두를 위하여 고통을 당하고 죽으셨다는 사실을 이해하세요. 그는 우리의 죄와 우리의 갇힘과 고통을 제거해 주셨습니다.

그는 우리 모두의 대장으로 적들을 물리치고 승리를 거두셨습니다. 우리의 싸움을 이미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단지 그를 따르고 함께 승리의 기쁨을 누리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는 그를 통하여, 그의 안에서 구원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죄는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며 우리의 감옥은 활짝 열려져 있고 우리의 고통은 종결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참으로 위대합니다. 주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셨다는 말씀의 위대함을 부인한다면 이는 곧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자유케 하실 때 우리는 참으로 자유로워집니다.

 

거저 받았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은혜로구원 받은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구원 받을 자격이 없다는 점을 말합니다. 우리는 결코 스스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며칠 전 신문에서 인간이 곧 인공 달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기사를 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구원은 만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자신이 구원 받은 것에 대하여 자만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단지 겸손한 가운데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물로서만 그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이것은 우리 자신으로부터 시선을 돌려 하나님을 바라보고 또한 이 진리가 계시된 십자가 위의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진리는 믿음 가운데 항상 새롭게 받아들여져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믿는다는 무엇을 의미하나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바라보고 거기 우리의 삶을 위한 진리가 있다는 사실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이 진리에 반항한다면 얼마나 비극적입니까? 사실 우리는 은혜로, 오직 은혜로만 구원 받았다는 말을 듣기 싫어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무런 빚이 없고, 우리는 다만 주신 것을 어린애처럼 감사하게 받아야 한다는 사실에 반감을 가집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자신에게서 시선을 돌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치 달팽이가 껍질 속에 움츠러들 듯이 우리 자신의 껍질 속에 움추러듭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하나님 믿기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삶의 모든 것들을 순수하고 아름답게 꾸며줍니다. 자유로운 참된 삶과 근심 없는 마음과 내면의 무한한 기쁨, 그리고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과 크고도 확실한 소망의 출발점이 됩니다.

 

그 힘으로 살라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어디에 서 있습니까? 아침은 이미 찾아왔습니다. 눈을 감고 있어도 태양은 어두운 삶을 비추고 있습니다. 귀를 막아도 하나님은 하늘에서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계속 생명의 떡을 공급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감옥 안에 남아있기를 좋아해도 문은 활짝 열려있습니다. 우리가 영혼의 집을 버려놓으려 해도 하나님은 깨끗이 정돈하십니다.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우리가 받지 않아도 여전히 이 말씀은 진리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 놀라운 유익을 원하지 않습니까? 왜 우리는 말씀을 믿지 않나요? 왜 열려진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지 않나요? 왜 우리는 귀를 막고 눈을 가리고 있나요?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이 모든 일은 우리 안에서 변화가 일어나도록 충분한 열심으로 갈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전능하시고 자비롭다는 사실,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는 사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주셨다는 사실은 우리의 행위와는 관계없이 참된 진리입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사실들을 믿고 받아들여야 내 것이 됩니다.

자신의 진리로 시인하고, 마음과 입술로만 아니라 행위와 삶 전체로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그것이 진리임을 인식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전 존재가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는 거룩한 진리에 잠기도록 하는 것이 우리 기도의 주된 관심사가 되어야 합니다.

이 기도가 헛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이 기도를 올릴 때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있습니다. 이 기도는 결코 헛된 것이 아니기에 하나님의 진리가 오늘도 밝게 빛나기를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이 말씀을 믿게 해 달라고 구하십시오. 그러면 이에 대한 믿음을 얻게 됩니다. 찾으십시오. 그러면 발견하게 됩니다. 이 문을 두드리세요. 그러면 여러분 앞에 활짝 열릴 것입니다.

 

비판과 적용

바르트의 설교는 기본적인 교리에 있어서는 분명히 복음적이다. 그도 동정녀 탄생과 예수의 육체적 부활을 선포했다. 하지만 그 사실들의 역사성은 애매한 말로 부인하였다. 사진으로 찍으면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현대 과학을 믿는 사람으로 기적은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와 인간 이성의 한계를 분명히 보고 거기 대항하였다. 하지만 그 역시 신정통주의자로서 성경의 초자연적이고 영적인 차원에는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일은 성경을 영감 받은 말씀으로 그대로 받아야 가능하다.

그처럼 분명한 복음적인 이해를 가지고 설교해야 하리라. 그는 은혜로 구원 얻는다는 교리에 아주 분명히 서 있다. 이러한 설교를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종교개혁과 복음주의 원리를 확실하게 이해한 후 설교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는 있다. 그는 육체의 부활을 문자 그대로 믿지 않았다. 천국도 지옥도 그러하였다. 그의 설교에서 말하는 구원은 외형적으로 정통신학의 것과 같았다. 하지만 과학의 입장에 서서 기독교의 초자연성을 부인하는 그가 말하는 구원의 내용은 절대로 정통신학의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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