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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홍교수의 명설교분석
<적극적으로 그리고 감동으로 이야기한> 노만 빈센트 피일
조회 1654 추천 0 비추천 0 2015-09-15 08:42 작성자 : 관리자

한국 신자들에게도 잘 알려진 노만 빈센트 피일은 1989년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클리퍼드 피일은 마을 감리교 목사였다. 어머니는 따듯한 성품로 가정을 편안하게 했다. 자녀들에게 하나님 위해 큰 일 하겠다는 비전을 품게 하였다.

피일은 아버지의 사역 속에서 그리스도의 능력을 늘 상 보았다. 마을에서 가장 못되었던 깡패 하나가 예배 중 제단 앞에서 무릎 꿇고 회개할 때 아주 가까이서 보았다. 아버지는 하나님의 종으로써 그에게 영웅이었다.

그는 체구가 작아 운동도 하지 못했다. 자신이 인정을 받으려면 머리나 혀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어려서부터 인식했다. 그래서 작문과 화술을 발전시키는 데 전념하였다. 그러나 그는 지나칠 정도 소심하고 수줍은 사람이었다.

그는 1920년 오하이오 웨슬리대학을 졸업하고 보스톤 대학에서 신학과 윤리학을 공부했다. 설교할 때 너무 떨리는 상태를 극복하느라 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뉴욕 브르클린에서 첫 목회를 시작해서 급성장시킨다. 1925년 킹스 하이웨이 교회에서는 36명이 3년 만에 천명으로 늘었다. 시라큐스로 옮겨 성공적으로 목회한다.

1932년 맨하탄의 마블협동교회를 담임하면서 문제를 발견한다. 1500명이 앉을 자리에 250명뿐이었다. 당시 미국은 경제공황이었다. 절망이 도시를 지배하고 있었다. 거기서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발전시킨다.

그러나 2년 동안 별다른 결과를 얻지 못했다. 자신의 설교를 면밀히 검토한 뒤에 자기가 주로 지적 설교를 하고 있었음을 발견한다. 설교방식을 대중적으로 바꾸면서 예화를 잘 적용하여 대화체로 말씀을 전하기 시작한다.

설교 외에도 많은 책을 저술했는데 <적극적 사고방식>3백만 부가 팔렸다. 라디오와 텔레비전에도 시간을 많이 내었고 강연도 수없이 많았다. 1993년 죽는다. 그의 시대에 그만큼 유명하고 논쟁의 한 가운데 있었던 설교자도 드물리라.

 

그의 설교

그는 쉽게 설교한다. 청중이 이해할 수 없는 말이나 사상은 사용하지 않는다. 설교는 짧아 보통 25분가량 걸린다. 청중 각 그룹마다 나름대로의 분위기를 가졌는데 메시지를 거기 맞추어야 한다고 보았다. 설교자는 회중을 감동의 감정으로 감쌀 때까지 지속적으로 사랑을 뿜어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늘 즉흥적으로 말했다. 설교를 읽거나 거기 매이면 청중과의 감정이입이 안 된다고 여겼다. 또한 순간적 영감을 중요하게 여겼다. “나는 단순한 하나님 뜻의 대행자에 불과하며 효과적인 표현을 주시리라 믿습니다. 생기 있고 밝고 적극적으로 말해야 합니다. 상황에 맞추어 청중과 밀접하게 대화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는 조직적인 사람이어서 여행하는 동안에도 설교를 생각했다. 자신이 선택한 주제에 대해 떠오르는 생각, 예화들을 정리했다. 목요일에는 본격적인 준비가 시작되어 금요일, 토요일에도 계속되어 주일 아침 강단에 올라가는 순간까지 계속된다.

설교 개요를 강단에 가지고 올라가지 않는다. 암기하지도 않는다. 대신 말하고자하는 세부적인 진행을 마음에 떠올리는 방법을 사용한다. 아름답고 극적인 예화와 생생한 실례를 사용해서 회중의 욕구에 직접 적용하려고 하였다.

설교의 진행은 늘 논리적이었다. 문제를 제시하고 그 중요성을 보여준다. 그 문제를 청중과 연관시킨다. 예화를 그 문제에 적용시킨다. 청중에게 지식을 전달하기보다 자신감을 고취시키는 일에 관심을 더 쓴다. 적용은 단순하고도 급박하였다.

다음의 설교는 원래 길이의 2/3정도이다. 저가 청중을 하나하나 바라보면서 자연스럽게 그러나 절박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그려보면서 읽어보자.

 

삶을 기뻐하라

4:4, 15:11

 

삶의 기술에서 최고의 전문가께서 말씀하십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살아있는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우리가 살아있는 것을 어떻게 기뻐해야 할지와 그로부터 오는 결과도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

기쁨이 생의 궁극적 목적이란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되기 원하시는 모습 즉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삶의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취할 능력도 있습니다. 예수는 기뻐하는 자세가 사람을 쓸모 있게 만드는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려주십니다.

(중략)

어떻게 해야 살아있는 것을 기뻐할 수 있나요? 대답은 예수의 교훈 속에 있습니다. 네 자신을 벗어나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은 자기중심의 결과로 병들어 있습니다. 자신보다 더 위대한 무엇을 위해 자신을 버릴 때 기쁨으로 충만해질 것입니다.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기위해 싸우십시오. 혜택 받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싸우세요.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싸우세요. 선한 사람들을 위해서도 싸우세요. 이러한 싸움은 우리를 기쁘게 하고 갈등에 빠지더라도 기쁨으로 노래하게 만듭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두 사람의 웅변가는 헨리워드 비쳐와 웬델 필립스였습니다. 이들은 노예 폐지론자들이 뉴욕과 보스톤 거리에서 돌로 맞아죽는 그 당시에 노예제도 폐지를 위해 싸웠습니다. 자유를 위한 싸움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그리하여 노예제도는 폐지됩니다. 전쟁이 끝난 어느 날 밤 웬델 필립스가 어떤 도시에서 강연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그 도시에 있던 비쳐가 그의 강연을 들으러 갔습니다. 모임이 끝난 후 두 사람은 만나 함께 호텔로 돌아갔습니다.

필립스는 천천히 걸으며 침대에 누운 비처에게 물었습니다. “오늘 밤 나 어땠어?” “그보다 더 훌륭한 연설은 들은 적이 없어.” 필립스가 다시 묻습니다. “나는 생명이 없는 것처럼 느꼈어. 말하면서 아무런 행복을 못 느꼈어. 뭔가 내게서 사라져가고 있어. 자네는 내 친구니 왜 그런지 좀 말해줘.”

비쳐는 말합니다. “정말 참 좋은 연설이었어. 아름답고 장엄하고 예술적이었어. 그런데 자네는 더 이상 무엇인가를 위해 싸우고 있지 않는 거야. 그러니 기쁨이 자네 연설에서 사라지는 거야.” 싸움이 곧 선한 싸움이 행복을 줍니다.

만일 당신이 행복하지 않다면 자신의 공동체를 떠나 보세요. 청소년 범죄와 싸우는 단체를 찾아보세요. 인종차별과 싸우는 단체를 찾아보세요. 세계 전역에 기독교를 전하려는 싸움에 참여해 보세요.

전혀 두려움을 갖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야구와 더불어 평생을 보낸 브랜치 릭키를 들어봅시다. 뉴욕 타임즈 기자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50여년을 야구와 더불어 살아왔습니다. 그 기간 중에 겪었던 가장 큰 두려움이 무엇이었는지 말해주십시오.” 그는 눈동자를 빛내며 대답합니다. “가장 큰 두려움이요? 나는 아직 그런 것 가져본 적이 없어요.” 오늘날도 이처럼 살아있는 사람이 있어요.

저는 배벌리 켈리라는 친구와 서커스 구경을 간적이 있습니다. 그보다 더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함께 서커스를 보면서 그에게 물었습니다. “자네 얼마동안 서커스 했나?” 25년이랍니다. “그럼 자넨 자기 직업을 좋아하나?” 제가 물었어요. “물론이지, 노만. 노동하는 것보다 백배는 낫지.” 자신이 사랑하는 것이면 그 어떤 것이라도 훌륭한 것이라고 말하겠습니다.

항상 자신만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은 불행합니다. 제가 플로리다에서 만난 사람은 특별히 그랬습니다. 운전수가 24시간 돌볼 간호원 3명과 함께 그를 대형차에 싣고 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에게 별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가 요청해서 잠깐 보기 위해 갔습니다. 만나서 그가 한 첫 말이 무엇일까요? “나는 병자입니다.” 대화하는 동안 그 말을 되풀이 합니다. 그의 의사가 제게 한 말입니다. “그는 분명히 병자입니다. 그러나 치료할 약이 없어요. 목사님이 그를 그 자신으로부터 끌어낼 수만 있다면 분명히 좋아질 것입니다.”

이 사람을 어떻게 도울 수 있단 말입니까? 마침 호텔 현관에서 의자를 잡아당기고 있는 한 노파를 보았습니다. 의자가 너무 컸어요. 그 병자 옆에 앉아 있다가 말했습니다. “저기 가서 저 부인 좀 도와주시지요. 그러면 기분이 좋아질 겁니다.”

그가 말합니다. “목사님이 나보다 더 젊습니다. 목사님이 도와주시지요.” 저는 도와주라고 고집했습니다. 그는 신음 소리를 내면서 마지못해 일어나 그쪽으로 갔습니다. 돌아온 뒤에 물었습니다. “어떻습니까?” “내가 그 일 때문에 기분이 아주 좋다는 걸 아시지요?” 그가 대답합니다.

그런 다음에 그에게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10:39) 그가 말합니다. “그 말씀을 태어난 이래 줄 곧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해하겠습니다.”

지난겨울 제가 그 호텔에 다시 들어갔습니다. 한 사람이 똑바로 서서 힘찬 걸음걸이로 성큼성큼 걸어왔습니다. 나의 팔을 잡을 때에야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았습니다. 너무나 달라졌던 것입니다. 건강이 흘러넘쳤습니다.

간호원들 다 어디 갔나요?” 제가 물었습니다. “이제는 간호원이 필요 없어요. 전 이제 완전히 건강합니다.” 그의 대답입니다.

이것이 예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려고 애쓰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있는 것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부터 벗어나서 다른 사람에게, 어떤 위대한 운동에 자신보다 더 큰 무엇에 우리 자신을 바쳐야 합니다. 예수는 그 이상의 것을 가르쳐주십니다.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21:7)

내면이 패배의 희생제물인 사람은 결코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두려움의 희생제물이고 온종일 염려만 하고 지낸다면 당신은 기쁨으로 충만해질 수 없습니다. 항상 자신의 실패를 합리화하려고 한다면 당신은 절대로 행복할 수 없습니다.

위대한 삶의 최고 전문가인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이 자신을 지배할 수 있다면 당신은 자신의 삶을 기뻐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누구나 예수를 의지한다면 자신을 지배할 수 있습니다.

가이드포스트 잡지는 브롱스에서 조그만 슈퍼를 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웃의 모든 사람들이 사랑하는 점잖은 노인이었습니다. 어느 날 밤 깡패가 와서 돈궤에서 650전을 훔치고는 주인인 그 노인을 총으로 죽였습니다.

아들인 밀턴 코헨이 아버지의 시체를 발견합니다. 젊은 아들의 슬픔은 곧 극심한 증오로 변합니다. 그는 맹세했습니다. “반드시 그 깡패들을 찾아내어 죽이겠다.”

그는 경찰에 지원했습니다. 장기간 훈련 받은 뒤에 임관됩니다. 권총을 들고 밤마다 브롱스 거리를 배회합니다. 21개월 동안 가슴에 증오를 불태웠습니다. 그의 아내는 젊고 멋진 자기 남편에게서 꺼져가는 불빛을 바라보며 슬픔에 잠깁니다.

어느 날 저녁 그는 한 사람을 체포합니다. 본능적으로 그가 바로 자기가 죽이겠다고 맹세한 바로 그 깡패임을 직감합니다. 그는 두려움으로 떨고 있는 눈을 향해 총을 겨눕니다. 그러나 방아쇠를 당길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음성이 들리는 듯했기 때문입니다. 경찰봉으로 깡패의 손에서 칼을 떨어뜨리고 경찰서로 끌고 갔습니다. 그리고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녀석을 체포했어.” 아내에게 말합니다. “그러나 총을 쏠 수가 없었어.” 머뭇거리다 말합니다. “아버지의 손이 그 총 위에 있었어. 당신은 알거야. 내가 왜 그랬는지.”

당신은 이제 당신 아버지의 아들로서 자격이 있어요.” 더듬거리며 아내가 말합니다. “당신은 이제 자유로워졌어요.” 자유롭게 산다는 것은 위대합니다.

생애 내내 괴로움을 주는 그 무엇인가가 당신에게 있을지 모릅니다. 인생은 두 적대 세력이 항상 싸우는 전장입니다. 이기는 사람, 자신을 초월하는 사람, 자신의 정신을 지배하는 승리를 얻는 사람은,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기뻐하게 됩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 살아있으세요. 살아있는 것을 기뻐하십시오.

 

적용

논지를 향해 감동적인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주제를 설교체로 설명하지 않는다. 어려운 문어체로 또는 어려운 말로 하지 않는다. 감동적인 이야기로 말한다. 이야기 전에 또는 후에 주제를 말한다. 그리하여 단계적으로 논지에 이르게 한다.

청중은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듣다보면 논지에 도달하게 되고 가슴이 벅차 돌아온다. 그래서 감동 가운데 논지만이 살아서 기억되게 된다. 또한 그렇게 계속 듣다보면 적극적인 신앙인으로 의식이 만들어진다. 부정적인 내용은 하나도 없다.

많은 설교자들이 감동적인 예화만 많이 나열하면 감동이 오는 줄 안다. 주고자 하는 주제는 약한 데 말이다. 강한 주제들을 감동적인 예화를 통해서 전달하면서 설교의 목적을 향해 밀고 나가는 게 피일의 탁월한 방법이다.

누구나 부담 없이 기쁘게 들을 수 있고 또한 듣고 싶어 하는 설교를 만들려면 이 방법을 훈련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내용을 전개하고 발전시키면서 문어체의 말을 피해야 한다. 주제들을 감동적인 이야기로 적용하게 만들라. 감동적인 이야기가 끝나면 설교도 끝나게 하라. 그의 설교를 잘 살펴 흉내내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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