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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진목사 칼럼

정관진목사님은 2007년부터 목사사이트 운영자로 활동하며
많은 미자립. 개척교회를 지원하여왔고 현재는 목사월드 공동대표,
미아리 평안교회 담임목사로 사역하고 계시다..
지금 그 사람은
조회 1520 추천 0 비추천 0 2017-03-10 20:24 작성자 : 개혁이

 

세월이 참 빠르다.

동녘에 해 뜰 때 어머니 날 낳으시고

어여뿐 아가야 네 인생 시작 됐네..

이 노래를 목청껏 부르며 인천 용동 우물가를

헤집고 다닐 때가 어제 같더니,

세월이 흘러흘러 이젠

서산에 지는 석양이 아름다워지는 연세가

되고 말았다.

 

요새는 잠도 잘 안오고 자다가 깰 때가 많다.

지난 시절이 그리워지고

스쳐 지나간 사람들이 생각이 난다.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40 여년 전이다.

정말 어려운 시절이었다.

한 끼의 식사를 위해,

호구를 위해 어떤 일이라도 할 때였다.

 

인천 주안에 가면 북인정

동네 뒤에는 공단이 있었다.

이름 하여 5공단이다.

 

70년대,

한창 산업화가 이뤄질 때 구로공단이 생겨나고

각 도시에 공단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먹고 살아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에

.공단을 찾아 간다.

군 입대를 앞둔 시기였으니 제대로 취직을

할 수 없어 무작정 공장을 찾아 간거다

 

00 산업이라는 곳에 취직이 된다.

라디오 전축 뚜껑을 만드는 공장이었다.

일당 500원 이었으니 기막힌 일당이다.

일본에서 프라스틱 원료를 수입해 와서 착색기에 넣고

돌리는 그런 부서에 배치가 된다.

 

그 시절  공장에서 근무하는 이들에게 붙여진

이름이  “공돌이였다.

 

공장 근로자 비하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나는 공돌이가 된 것이다.

여러 개의 원료를 착색기에 넣고 일정시간 돌리면

원료가루가 빠져나와 얼굴은 물론

팬티까지 새까맣게 된다.

 

원재료가 얼마나 독한지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다.

마스크를 착용한것도 아니니 환경이 엉망이다.

지금 같으면 난리가 났겠지만. 날 써준 회사에

고마워서 군소리 없이 순종하고 있었다.

두달쯤 됐나,

이렇게 원료 착색기에 붙어 살다간 죽겠다.

싶어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였다.

 

충무과에 맘에 드는 아가씨가 하나 있었다.

참하게 생긴 아가씨였다.

내 마음속엔 그녀가 자리 잡고 있었다

힘든 노동이지만, 그녀를 볼때 즐거웠고

한공간에서 같이 숨쉬고 있다는게 행복했다 .

저이와 결혼하면 얼마나 좋을까

혼자, 상상하며 싱글러브를 하고 있었다

 

언감생심 공돌이가 여직원을 넘 볼수 있나

그 당시 직원들과 공원과는 차이가 많이 났다.

옷부터가 차이가 난다.

직원들의 옷은 곤색 비로도 옷을 입었고

공원들은 누런 모자에 누런 옷을 입었다.

 

어느 날이다.

착색기 원료통에 원료를 배합하고 있는 데,

그만 아까운 원료를 실수하여

반통 정도 쏟아버린 거다.

그때 내 나이가 21살 때이고 반장이 27살이다.

반장이 실수한 나에게 욕을 하며

주먹으로 머리를 때리는 것이었다.

요런 호로 새끼야 ! 정신 못 차려

이 원료값이 네 한달 월급보다 많아야 ! “

 

 

 

그 때 만해도 나는 혈기 방자했고

로칼에서 가래침 쫌 뱉고 다녔다

반장의 거침없는 욕과 주먹세례에 반사적으로

나의 완 펀치가 반장의 턱을 강타하였다

반장은 산더미처럼 쌓인

야외 전축 껍데기 위로 우당탕 꽝 하고

꼬꾸라 진다 .

펀치가 작열하였고,

무릎 꿇리고 싹싹 빌게 하였다.

 

그때 ,

그 광경을 바라보는 이가 있었다.

총무과장과 내 마음의 여인 그녀가 거기 서서

나를 보고 있었다.

공장 시찰차 나온 거였다.

총무과장이 말리는 바람에

주먹을 멈추었고 난 그날로 사표를 쓰기로 한다.

공돌이 사표랄 것이 뭐 있나?

그냥 그만두면 그만이지

 

마지막 점심

점심시간에 식당에 밥을 먹으러간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데

내 뒤에 그녀가 붙어 줄을 선다.

밥을 타서 자리에 앉으니

그녀가 내 앞에 앉는다. 난 신경도 안쓴다.

그날따라 계란 후라이가 나왔다.

내 식판에는 계란이 한알

그녀의 밥위에는 계란이 두 개나 얹어 있었다.

여기서 공돌이와 직원의 차이를 볼 수 있다

그때다 앞에 앉은 아가씨가 내를 보며

미소를 짓는다 .

계란 더 드실래요? ”

한마디 대화도 없었는데 내게 말을 거는 거다

어라 왠일이래 ?

달라고 하니 계란 두 개를 왕창 주는거다

만세 !만세 !난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때 그 기분은 지금도 잊을 수없다

자기딴엔 반장을 줘 패고

무릎 꿇려 빌게한 모습이

멋있게 보였던 모양이다.

2달 반 동안 착색기로 인해 억울했는데

그만 두기전 본전은 뽑아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식사후

넝쿨 나무아래서 그녀가 여직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 온몸이 새까맣고 눈만 반짝이는

내가 그녀들 앞에 선다.

그리고 그녀 에게 딱 한마디 하고 돌아 섰다.

미스 허 오늘 저녁 상록수다방으로 8시까지 와

그 말만 하고 돌아 선거다.

 

그날 저녁 ,

친구들과 청청매 앞 선술집에서 한잔 걸치고

820분 쯤 상록수 다방을 올라가니

그녀가 다방 한 귀퉁이에 앉아 있었다.

 

좋았다. 행복했다.

우린 그렇게 사귀게 된다.

수인선 협궤열차를 타고

군자역에서 오이도 까지 팔짱끼고 걷고

돌주리 산정에서 수평선 너머 가는 낙조를

바라보며 사랑을 나눴다.

 

내가 멋있었단다.

자기를 지켜 줄 수 있는

든든한 멋진 사람이라나

2년 정도를 사귄 것 같다 .

근데 헤어지게 된다.

내게 희망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지막 만나는 날 그날 눈이 펑펑 내리던 날

그녀가 이런 질문을 한다.

 

앞으로 뭐하고 살거냐고?

소망이 없었기에 할 말이 없었다.

군대 가서 말뚝이나 박을까?

성의없는 대답에 실망 했는지 헤어지자는 거다.

퇬짜를 당한거다 .

 

알았다고 대답 하고 쿨하게 돌려 보낸 후

난 몇 일 동안 병이 나고 말았다.

밥이 넘어가질 않는다

사나이 가슴이 쓰리고 정말 아팠다 .

 

세월이 40년이 흘렀다 .

그녀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 증이 든다

혹시나 하여 그녀의 이름을 구글 검색창에

적어본다 .

그녀가 거기에 있었다.

20살 어린 나이의 내 기억의 여인이 아니라

중후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어느 도시 부녀협회 회장을 하고 있었고.

지역 신문에 인생스토리,

회장 소감 이 실려 있고,

사진이 게재 되어 있었다.

밝은 모습 잘살고 있는 모습을 보니

한없이 기쁘다.

 

지난 시절이 주마등처럼 흐른다.

그녀는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군자 돌주리 산에서 수평선 너머 가는 낙조를

바라보던 그때를 생각하고 있을까 ?

꿈이였어 백일몽을 꾼거야.

건강하게 행복 하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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